동화 같지 않은 동화이야기 <인투 더 우즈, Into the Woods>
작성일201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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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로 80세를 맞이한 손드하임의 업적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영국전역에서 열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런던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리젠트 파크(Regent Park)에 자리잡은 야외극장, 오픈 에어 시어터(Open Air Theatre)에서 <인투 더 우즈>를 볼 수 있는 행운은 누구나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올해 초 전해진 <인투 더 우즈>의 공연 소식은 많은 뮤지컬 팬들을 설레게 했다. 2009년, 이 극장의 흥행작 <헬로 돌리!>를 통해서 이미 뮤지컬 연출 능력을 검증 받은 극장의 예술 감독 티모시 시더(Timothy Sheader)의 <인투 더 우즈>을 숲으로 둘러 싸인 야외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니! 이건 정말 말만 들어도 모락모락 뭔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조합이었다.
<인투 더 우즈>는 어쩌면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초심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공연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그림(Grimm) 형제의 동화들-신데렐라, 잭과 콩나무, 빨간 모자, 라푼젤-을 바탕으로, 손드하임 특유의 위트와 역설, 풍자, 깊은 통찰력 등이 섬세하게 새겨진 이 작품이야말로 ‘뮤지컬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뮤지컬’로 악명 높은(?) 손드하임의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좋은 출발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단지 ‘그래서 주인공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정도로 끝맺는 동화들을 재구성한 것으로 쉽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품 내면의 진실에 접근할 때만이 우리는 손드하임의 진가를 볼 수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작품은 신데렐라, 잭과 콩나무, 빨간 모자, 라푼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있는 베이커(제빵사)와 그의 아내가 숲속에서 겪게 되는 모험담이 중심이 된다. 이웃집 마녀의 저주를 받은 베이커의 아내는 아이를 갖지 못하고, 아이를 가지려면 마녀가 원하는 네 가지의 물건(잭의 우유처럼 흰 암소, 빨간 모자의 새빨간 망토, 라푼젤의 옥수수처럼 노란 머리카락, 신데렐라의 황금색 구두)을 가져와야 한다. 거기에 더해서 각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가지고 있다. 신데렐라는 왕이 주최하는 파티에 가고 싶어하고, 잭은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베이커와 그의 아내는 아이를 원하고, 마녀는 예전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원한다. 또 라푼젤은 세상을 보고싶어 하고, 빨간 모자는 식탐이 많다.
그런데 극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이 등장 인물들을 원래의 동화에 나오는 선하거나 악한 캐릭터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남들에게 적당히 비겁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적당히 위선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1막에서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의 소원을 이루고 난 후, 평생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삶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2막에서 드러나면서 작품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반전을 통해서 우리는 작품이 동화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동화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원이 이루어졌음에도 행복하지 못한 인물들은 공통된 큰 시련에 직면하면서 현실을 깨닫고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련에 대처하는 일련의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성숙하기 위한 각자의 깨달음과 노력들은 간결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손드하임의 가사와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음악을 통해 배가되는데, 특히 ‘혼자가 아니야(No one is alone)’라는 노래는 이러한 주제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극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베이커의 캐릭터를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처음에는 극중에서 가장 소극적인 캐릭터였다. 그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타인(아내)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내가 죽고 시련을 통해 성숙해 가면서 나중에는 어린 잭과 빨간모자를 책임지는 성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대본을 쓴 제임스 라파인(James Lapine)과 손드하임의 두 번째 창작물인 <인투 더 우즈>는 구조적인 면에 있어서 전의 그들의 합작품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와 꽤나 닮아있다. 하지만 <선데이>에 비해 <인투 더 우즈>는 2막의 전개 방식이 조금 느슨한 편이다. <선데이>의 경우 작품을 전체적으로 해석하는 데 있어서 2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에 비해 <인투 더 우즈>의 2막은 1막 만큼의 긴박감이나 잘 엮여진 플롯을 보여주지 못할 뿐더러,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도 조금은 산만한 편이다. 이러한 집중력의 아쉬움이 결국에는 어떤 관객들에게는 작품을 감상한다는 느낌보다 뭔가 작품을 교훈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극장 특유의 환경은 작품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날이 저물고 어둠이 숲으로 둘러 쌓인 무대를 잠식해가면서 커져 가는 무대의 깊이감은 작품의 극 진행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마치며
손드하임의 작품들은 양파와 같은 매력이 있다. 특유의 시니컬한 위트와 풍자뿐 아니라 짧고 함축된 가사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의미의 맛들은 알면 알수록, 느끼면 느낄수록 그 깊이가 진하다. 특히나 라파인과의 작업들은 손드하임의 진수를 맛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들이다. 비록 그의 작품들은 흥행성에 있어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어서 우리가 자주 접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희소성 또한 관객들이 손드하임에 열광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사진: Catherine Ash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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