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 상상력으로 팀 버튼 색깔 지운 <찰리와 초콜릿 공장>
작성일2013.06.17
조회수15,852
말 많고 탈 많았던, 2013년 영국 공연계의 최대 야심작 뮤지컬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의 프리뷰 막이 드디어 올랐다. 많은 공연 관계자들과 관객들의 과분한(?) 관심에 호응이라도 하듯, 꼬마 찰리의 뮤지컬 나들이는 첫 프리뷰 직전 무대 안전상의 이유로 5일간 공연을 연기하며 그 발걸음에 뜸을 들였다.
뮤지컬 <마틸다>의 원작 동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 로알드 달(Roald Dahl)의 원작, 아카데미 영화제 감독상(<아메리칸 뷰티>, 1999)과 올리비에 어워드(뮤지컬 <카바레>, 1996)의 연출상 트로피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샘 맨데스 연출, <빌리 엘리어트> 등을 비롯,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아니, 지구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뮤지컬 안무가 피터 달링의 안무 등 화려한 스텝진의 구성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뮤지컬 버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과 함께 최근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뮤지컬 <마틸다>의 공전의 히트, 그리고 무엇보다도 팀 버튼과 조니 뎁 콤비에 대한 관객들의 강렬한 기억을 떨쳐내기 위한 부담감도 컸을 것이라 짐작한다.


뮤지컬 슈렉의 전용 극장이었던 로얄 드두리 레인 씨어터(the Theatre, Royal Drury Lane)는 일찌감치 꼬마 찰리의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손에 초콜릿 봉투를 들고 극장에 들어가는 관객들의 설렘은 작은 카카오 열매 한 알이 덩그러니 박혀 있는 무대 커튼이 열리기 시작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하며 절정을 보였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마치 꼬마 찰리의 가족이자 형제인 것처럼, 공연 내내 탄식과 함성, 응원을 보내며 평범한 서민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함께 따라가고 있었다.
“Empty. It’s absolutely empty.
Charlie, imagination makes everything possible!”
공연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팀 버튼의 매혹적인 영상과 기발한 상상력을 기대하는 관객들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컴퓨터그래픽 만이 가능할 것만 같은 초현실적 장면들을 어떻게 무대에서 실현시킬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찰리와 초콜렛 공장>은 영화와 무대의 중간에 서서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들을 조심스럽지만 현명한 방법들로 취사선택하여 풀어나간 느낌이다. 마치 3D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 영상 활용과 첨단 장비들의 집합체와 같았던 무대 장치들은 영화 버전의 스펙터클에 대한 기억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공연 예술만이 갖는 고유의 장점들을 함께 조화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림자극, 가면극과 같은 연극적 장치들의 활용과 다양한 연출적 아이디어들로써, 각종 첨단 장비로 채울 수 없는, 공연이라는 예술 장르만이 갖는 특성을 함께 아우르려 했다. 특히, 가장 화려한 무대와 조명으로 대미를 장식할 것만 같았던 초콜릿 공장 내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소위 ‘빈 무대’로 활용된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는 세계적인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이 일찍이 빈 무대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한 것과 같이, 샘 맨데스 역시 공연 예술만이 담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빈 무대의 연극적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함 대신 기발함을 선택한 안무는 다양한 연출적 아이디어와 어울리며 작품의 재기 발랄함에 보탬이 되었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단연 압권이었는데, 사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이 작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수십 명의 빌리와 마틸다를 키워 낸 영국 뮤지컬 계에서, 아역 배우들의 연기력은 이미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에, 윌리 역을 맡은 더글라스 호지의 노래와 연기에 상당한 아쉬움이 남았다. 토니 어워드와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래서 더욱 기대를 받았던 더글라스는 조니 뎁의 윌리와 자신만의 색깔 사이에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한다. 목소리를 비슷하게 내는 것으로 관객들이 갖는 조니 뎁의 윌리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려 하기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윌리라는 캐릭터를 보다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Any luck?” “Not today…..”
“I am glad with you. There is always tomorrow.”
뮤지컬 버전의 각색을 맡은 데이비드 그레이그는 팀 버튼의 사회를 향한 비판적 냉소를 제거하는 대신에 로알드 달의 1964년 작, 원작 동화에 충실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샘 맨데스 역시 영국의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 동안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찰리의 미국 색깔을 지우고 원작에 내재되어 있는 ‘영국적 특징’들을 되살리려 했다고 언급하며, 실제로 그가 배제하고 싶은 영화 버전의 특징을 ‘시니컬적’ 요소라고 단정지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찰리의 ‘영국식’ 뮤지컬 버전은 팀 버튼의 ‘미국적’ 해석에 비해 밝고 명랑하며 희망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다시 말해 영화 버전이 ‘어른을 위한 동화’에 가까웠다면, 뮤지컬 버전은 보다 ‘아이를 위한 동화’ 같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들이 공연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였던 ‘우리에게 언제나 내일은 온다’라는 희망적 메시지는 어린 관객들뿐만 아니라 어른 관객들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극장을 나서는 많은 관객들의 얼굴에서 골든 티켓을 발견한 마냥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글/사진: 조한준(University of Essex, East15 Acting School 연기 MFA 과정)
사진: 공연 홈페이지
뮤지컬 <마틸다>의 원작 동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 로알드 달(Roald Dahl)의 원작, 아카데미 영화제 감독상(<아메리칸 뷰티>, 1999)과 올리비에 어워드(뮤지컬 <카바레>, 1996)의 연출상 트로피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샘 맨데스 연출, <빌리 엘리어트> 등을 비롯,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아니, 지구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뮤지컬 안무가 피터 달링의 안무 등 화려한 스텝진의 구성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뮤지컬 버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과 함께 최근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뮤지컬 <마틸다>의 공전의 히트, 그리고 무엇보다도 팀 버튼과 조니 뎁 콤비에 대한 관객들의 강렬한 기억을 떨쳐내기 위한 부담감도 컸을 것이라 짐작한다.


뮤지컬 슈렉의 전용 극장이었던 로얄 드두리 레인 씨어터(the Theatre, Royal Drury Lane)는 일찌감치 꼬마 찰리의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손에 초콜릿 봉투를 들고 극장에 들어가는 관객들의 설렘은 작은 카카오 열매 한 알이 덩그러니 박혀 있는 무대 커튼이 열리기 시작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하며 절정을 보였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마치 꼬마 찰리의 가족이자 형제인 것처럼, 공연 내내 탄식과 함성, 응원을 보내며 평범한 서민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함께 따라가고 있었다.
“Empty. It’s absolutely empty.
Charlie, imagination makes everything possible!”
공연의 주요 관람 포인트는 이미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팀 버튼의 매혹적인 영상과 기발한 상상력을 기대하는 관객들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컴퓨터그래픽 만이 가능할 것만 같은 초현실적 장면들을 어떻게 무대에서 실현시킬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찰리와 초콜렛 공장>은 영화와 무대의 중간에 서서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들을 조심스럽지만 현명한 방법들로 취사선택하여 풀어나간 느낌이다. 마치 3D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 영상 활용과 첨단 장비들의 집합체와 같았던 무대 장치들은 영화 버전의 스펙터클에 대한 기억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공연 예술만이 갖는 고유의 장점들을 함께 조화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림자극, 가면극과 같은 연극적 장치들의 활용과 다양한 연출적 아이디어들로써, 각종 첨단 장비로 채울 수 없는, 공연이라는 예술 장르만이 갖는 특성을 함께 아우르려 했다. 특히, 가장 화려한 무대와 조명으로 대미를 장식할 것만 같았던 초콜릿 공장 내에서의 마지막 장면이 소위 ‘빈 무대’로 활용된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는 세계적인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이 일찍이 빈 무대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을 강조한 것과 같이, 샘 맨데스 역시 공연 예술만이 담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빈 무대의 연극적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함 대신 기발함을 선택한 안무는 다양한 연출적 아이디어와 어울리며 작품의 재기 발랄함에 보탬이 되었다.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단연 압권이었는데, 사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이 작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수십 명의 빌리와 마틸다를 키워 낸 영국 뮤지컬 계에서, 아역 배우들의 연기력은 이미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에, 윌리 역을 맡은 더글라스 호지의 노래와 연기에 상당한 아쉬움이 남았다. 토니 어워드와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래서 더욱 기대를 받았던 더글라스는 조니 뎁의 윌리와 자신만의 색깔 사이에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한다. 목소리를 비슷하게 내는 것으로 관객들이 갖는 조니 뎁의 윌리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려 하기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윌리라는 캐릭터를 보다 자신만의 색깔로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Any luck?” “Not today…..”
“I am glad with you. There is always tomorrow.”
뮤지컬 버전의 각색을 맡은 데이비드 그레이그는 팀 버튼의 사회를 향한 비판적 냉소를 제거하는 대신에 로알드 달의 1964년 작, 원작 동화에 충실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샘 맨데스 역시 영국의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 동안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찰리의 미국 색깔을 지우고 원작에 내재되어 있는 ‘영국적 특징’들을 되살리려 했다고 언급하며, 실제로 그가 배제하고 싶은 영화 버전의 특징을 ‘시니컬적’ 요소라고 단정지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찰리의 ‘영국식’ 뮤지컬 버전은 팀 버튼의 ‘미국적’ 해석에 비해 밝고 명랑하며 희망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다시 말해 영화 버전이 ‘어른을 위한 동화’에 가까웠다면, 뮤지컬 버전은 보다 ‘아이를 위한 동화’ 같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들이 공연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였던 ‘우리에게 언제나 내일은 온다’라는 희망적 메시지는 어린 관객들뿐만 아니라 어른 관객들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극장을 나서는 많은 관객들의 얼굴에서 골든 티켓을 발견한 마냥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글/사진: 조한준(University of Essex, East15 Acting School 연기 MFA 과정)
사진: 공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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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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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ej**님 2013.06.18
국내에도 내한한다면 좋겠어요~ 영화를 워낙 재미있게 봤던터라...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