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여러 사람의 능력을 끌어다 하나의 언어로 만드는 사람  가장 좋은 연출은 전지전능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은 모든 이들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내서 그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빛나게 해 줄 수 있을 때 연출이 다른 분야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고, 모든 분야를 잘 알아서 다 컨트롤 하는 연출도 있고요. 두 가지 경우 다 연출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여러 사람들의 능력을 잘 모아서 하나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터 브룩이 쓴 '빈 공간'이라는 책에, 연출은 항상 사기꾼 같은 존재라고 나와요. 자기도 가보지 못한 길을 여러 사람에게 안내하면서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죠. 앞이 낭떠러지일지도 모르는데 아는 척 하면서 길을 찾아야 하고 이 길이 맞다고 뒤에 따라오는 사람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 연출이기도 합니다.

 

배우를 무대에서 빛나게 해주는데 희열을  고교시절 버스를 타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도 이런 아침 버스를 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나 끔찍했어요. (웃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9시 출근이니까요. 물론 학창시절에 연극반 활동을 했었지만 아침 버스를 타기 싫어서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습니다. (웃음)


처음에는 배우를 했었는데 대학 졸업 공연인 <맥베스>에서 영화배우 김강우와 같은 맥더프 역을 맡았어요. 제가 여러가지 동선을 짜거나 아이디어를 많이 냈지만, 무대에서 봤을 때 (김)강우가 훨씬 멋있더라고요. '바로 저게 배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성향도 나를 통해서 무언가를 드러내 보이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무대 위에서 빛나게 해 주는 작업에서 희열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도 배우보다 연출이 더 맞고, 또 연출이 되어 자신들을 배우로 써달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많았고요. 졸업 후 2년 정도 PMC <난타> 연출부에 있었고 이후 대학로에 나와 조연출, 무대감독도 하며 제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변방연극제에 <환상동화>를 통해 첫 나의 작품을 선보이게 된 거죠.

 

장점을 발견 지금까지는 작품을 가지리 않고 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할 수 있었죠. 작품 의뢰가 들어오면 그 작품의 좋은 면만 보려고 굉장히 노력합니다. 고칠 부분이 많다면 작가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고쳐보자,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해보자, 라고 생각을 하죠. 아직까지는 스스로 '이 작품은 이래서 안 해'라고 할 거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경험한다면 또 하나를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부딪히면서 배웠던 것 같아요.

 

공연은 지속되어야 한다. 재연되는 공연이 결국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요. 공연을 하면서 이 작품이 내년, 후년에도 계속 갈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둡니다. 그래야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지요. 셰익스피어 극은 그 시대 최고의 흥행극이었어요. 귀족, 하층민 모두가 보았죠. 너무 마케팅적으로만 접근해서 오래하는 공연이 아니라, 정말 작품이 좋아서 오랫동안 공연되는 작품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편으로는 관객들과 타협하거나 상업적으로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 관객들과의 접점이 어느 부분에 있나,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누구하고도 잘 싸우지 않는다. 설득하는 과정,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입니다. 배우들이 하는 말, 그들이 하는 대로 많이 봐주고 배우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죠. 아마도 기본 성격이 좀 무뎌서 갖게 된 장점인 것 같습니다. 물론 날카롭게 흥분할 때도 있지만 공연 막바지에나 나오죠. 개개인의 능력이나 성향을 최대한 살릴 수 있기에 좋은 부분인 것 같습니다.

결정 늦어져  잘 싸우지 않다 보니 결정이 늦어질 때가 있어요. <프라이드> 팀도 그랬다는데, 연출이 무엇이라 금방 말하지 않으니 배우들은 자신들이 준비해서 보여준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걸 준비해야 하는지 헛갈린다고요. 사람들을 몰아치는 스타일이 아닌데 때론 그런 추진력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환상동화> 글 쓰는 것도 좋아했고, 나의 글, 나의 작품이 아니라면 연출가로 데뷔하기 쉽지 않은 이유도 있었기에 직접 쓰고 연출한 첫 작품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인 것 같아요.

<표류> 대학 졸업 후 한때 무대에 대한 회의가 든 적이 있었어요. 무대에서 진짜 판타지가 있을까, 더 이상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라는 굉장히 짧은 생각의 고민들이 있었을 때 필립 장띠의 <표류>를 보고 무대가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있는 공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언어든, 잘 짜여진 희곡이든, 또는 마술적인 경험으로든 무대란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작품입니다. <환상동화>도 <표류>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바이러스 걸린 앵무새 <카르멘> 공연에서 원래 계획은 마술로 앵무새를 만들어 객석으로 날리는 거였는데, 분양 받은 앵무새가 바이러스성 질병에 걸려 계속 설사를 하더라고요. 공연 중이라 새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저와 조연출이 박스에 새를 옮겨 극장(LG아트센터)에서 구로까지 가서 응급처치를 받았어요. 결국 새가 날지 못했고, 수정된 부분에 따라 여러가지 대체 상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예상 못한 배우 부상 <카르멘> 때 여러가지 일들이 많았는데, 1막 후 내려오는 막에 차지연 배우가 머리를 맞았어요. 자기 잘못도 아니었고 여러가지 사인들이 엉키면서 일어난 일이었죠. 다행히 그날 공연은 했지만 다음날엔 뇌진탕 증세로 계속 배우가 구토를 하더라고요. 크리스마스 공연이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차지연 배우가 무조건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엠블란스 대기 시켜놓고 낮 공연을 했습니다. 강원도에 있던 더블 캐스트 바다 배우가 급히 올라와 저녁 공연을 하고요. 공연 취소까지 생각해 두고 있었는데 다행히 큰 문제 없이 끝나긴 했지만 그런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힘들죠.

 

<모차르트!> 재연 초연도 봤지만 이번이 천재 모차르트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모차르트의 머리 속, 그 안의 우주와 같은 세계가 자신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모차르트가 꿈꾸는 건 누군가를 위한 연주가 아니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서 음표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어떻게 하나, 그런 천재의 모습이 이번 공연에서 잘 보였던 것 같아요. 무대 미술적으로, 또 전술적으로도 잘 드러났고 또 박효신도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공연을 다른 이들과 편안히 공유할 수 있는 모습이 좀 더 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전도'일 수도 있겠는데. (웃음) 지금도 일부 좋아하는 관객들을 위한 공연이 많다고 불만이 있을 수 있는데, 좋은 작품이라면 자신의 것으로만 하지 타인과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 공연을 사랑하는 법 아닐까요.

때로 저 역시 다른 공연장에서 관객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일반 관객들도 이런 느낌을 받으면 어떨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공연을 많이 보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모두가 그 공연에 대해 느끼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떨 때는 무리를 이룬 관객들의 느낌이 너무 세게 느껴지는 것이죠. 인터미션 때 서로 이야기도 나누면서 '정말 이 사람은 공연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모든 관객들이 공연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현실적으로 어떻게 내보일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시인과 무사'라는 극단을 만들어 <환상동화>를 올렸을 때도 시적인 감수성을 가지면서도 작품에 대해 칼을 갈아서 잘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가 이 작품을 썼는데, 이 작품이 좋은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은 못 알아줄까, 한탄만 하면 안 됩니다. 뜬구름 잡지 말고 현실적인 방법들에 대한 고민들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또한 작품을 선보였을 때 욕 먹을 각오도 해야 합니다. 학교 다닐 때나 어렸을 때는 글 잘 쓴다, 연기 잘한다, 칭찬 많이 받았겠지만 현장에 나오면 '왜 이렇게 못하냐'고 자기 재능 때문에 욕을 먹거든요.

그런 각오를 가지고 잘 버틸 수 있는가, 없는가도 역시 중요합니다. 제가 연출을 계속 하는 것도 쭉 버텨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땐 저보다 재능 많고 훨씬 똑똑한 사람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서로의 꿈이 달랐고, 결과적으로 버티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현장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정리: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사진: 플레이디비DB, 쇼노트 제공

댓글

댓글1

  • gladd** 2015.02.25

    킹키부츠 짱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