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삼화



어느 선배 연출가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대답을 할게요. ‘연출가는 인격과 인덕과 인복을 최대한 키우고 그 다음은 운명에 맡겨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굉장히 공감했던 말이에요. 물론 연출에게 요구되는 것에는 분석력과 문학성, 미술적인 감각 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런데 그분께서 ‘인’을 강조하신 것은 결국 연출이란 팀을 이끌어가는 선장이고, 그래서 사람과 함께 하는 것들이 가장 힘들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거든요. 연기나 무대디자인에도 기본적인 소양과 자질이 있어야겠지만, 제가 그쪽으로 약하니까 무대디자이너가 따로 있는 것이고, 제가 연기를 못하니까 배우가 있는 거잖아요. 사람 인(人)자의 아래 획처럼 다른 사람들을 받쳐주는 역할을 연출가가 잘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연극동아리 출신인데, 동아리를 할 때부터 배우보다는 연출가가 하는 일이 더 궁금했던 것 같아요. 근데 연출을 하기에는 제가 너무 평범한 것 같아서 엄두를 못 내고 포기했어요. 그리고 직장생활을 했죠. 3년 정도 직장에 다녔는데 어느 순간 저를 보니 퇴근시간만 기다리고 월급날만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적당히 살면 되는데,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런 생활을 저는 못 견디겠더라고요.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뻔히 보이고 숨이 막혔어요. 그래서 스물 여덟에 직장을 그만두고 이쪽 일을 하게 됐죠.

예전에는 지금처럼 연출을 업으로 삼고 살게 될지 상상도 못했어요. 이쪽에 연도 없었고, 전공을 한 것도 아니었고, 연극반에 기웃기웃하면서 공연 몇 번 한 것이 다였으니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운명적이었던 것 같아요. 엄두도 못 냈던 것, 감히 넘봤던 것이 정말 내 것이 되었으니까(웃음). 그런데 그 3년의 직장생활이 없었으면 연출을 하지 못했을 거에요. 3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연출을 잘하든 못하든 이 길은 내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으니까 용기를 낼 수 있었죠.




사실 특별한 기준은 없어요. 다만 연극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작품들도 바뀌어가죠. 연출을 하던 초반에는 ‘왜 다른 매체가 아닌 연극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TV가 아닌 연극에서만 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20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고령화 가족>을 했을 즈음부터 좀 바뀌었어요. 그 즈음 제 연극을 본 고등학교 동창이 ‘내 삶도 힘들어 죽겠는데 공연장까지 와서 힘들어야 되니?’라는 말을 했어요.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물론 센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겠지만, 이제 마흔을 넘기고 저마다 사는 것도 힘든 친구들이 여기까지 와서 또 고민하고 불편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렇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다 그 다음부터 세고 어려운 이야기보다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게 됐죠. 내 나라, 내 땅, 지금 현재, 진짜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 거에요. 그리고 그 전까지는 주로 번역극을 했다면, 창작극도 많이 하고 싶어졌고요. 2013년에 <일곱집매>를 했는데 그게 정말 우리 엄마, 할머니들 이야기였죠.

그런데 여전히 (작품 선택이) 다 제 마음대로 되지는 않아요. 작가가 작품을 줘야 하고, 제작사가 작품을 저한테 의뢰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한동안 창작극을 하다 보니 요즘엔 또 다시 번역극이 하고 싶어요. 어느 작품이 우리나라까지 알려질 정도면 그 대본은 정말 완성도가 높은 것이거든요. 번역극은 대본 자체가 갖고 있는 완결성으로 인한 재미가 있죠.



일단 연출을 맡으면 제일 중요한 것이 작품을 사랑하는 거에요. 작품에 대한 마음이 삐딱하면 작품이 잘 나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죽어라고 작품을 사랑하죠.

그리고 저는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요. 물론 전체적인 방향성이나 분석 포인트는 공유해야겠지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기보다 그들의 생각은 어떤지 많이 물어봐요. 배우들이 저더러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히 얘기하는 연출’이래요. 제가 자칭타칭 ‘연기상 배출 연출가’인데(웃음) 그건 제가 제 생각을 하달하거나 찍어 누르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결국 관객과 만나는 건 제가 아니라 배우거든요. 그러려면 배우가 확신을 갖고 무대에 서야 하고, 연출가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배우한테 계속 그들의 생각은 어떤지, 잘 이해하고 있는지, 편한지를 물어봤고, 배우들이 스스로 믿음을 갖고 무대에 섰기 때문에 연기상을 많이 받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배우가 돋보이게 하는 연출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바람직한 청소년>



결국 아까와 같은 이야기인데, 저는 스스로 생각해도 조명이나 무대, 디자인 등 비주얼 쪽에 강하지는 않아요. 저는 배우를 누르는 디자인을 용납하지 않거든요. 배우를 보이게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보니 아무래도 배우들과 가장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게 되고, 드라마에 집중하게 되고, 끝까지 배우들을 붙잡고 이야기하다 보니 배우들이 빛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또 배우들을 빛나게 하도록 많이 노력하고요.

사실은 연출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여러 사람들을 다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하거든요. 옛날 연출님들은 배우한테 재떨이를 던지거나 무릎을 꿇렸다는데 저는 그게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렇게 기가 눌렸는데 어떻게 연기를 하겠어요. 연출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면 꼭두각시지 그게 무슨 배우에요. 연출이 방향성을 제시하되, 스스로 이해하고 소화해서 자력으로 무대에 서는 게 배우인 거죠. 그래서 저는 배우가 힘들어하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르고 달래주고(웃음) 물론 그러다 보면 저도 힘들고 지칠 때가 있지만, 그게 또 집단작업의 매력인 것 같아요. 사람하고 많이 부딪혀서 힘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한테서 저 역시 위안을 받거든요.



요즘엔 좀 덜한데 제가 연습 막판에 몰아치는 스타일이에요. 평소엔 대화 나누고 놀다가 막판에 일주일씩 밤샘을 하면서 몰아치거든요. 예전엔 정말 공연 전날까지 밤을 새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주위에서 ‘적어도 공연 일주일 전에 밤을 새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배우들이 시차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요즘엔 저도 좀 바뀌어서 적어도 일주일, 열흘 전에 밤을 새요(웃음). 적어도 이삼 일은 밤을 새면서 마무리를 하죠.



이것도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할게요. 아리안 므누슈킨이라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여성 연출가가 한 말이에요. 내 최고의 작품은 현재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그러니 제 최고의 작품은 지금 하고 있는 <잘자요, 엄마>죠(웃음). 물론 과거에 했던 작품들도 다 소중해요. 그건 자식들 중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는 질문에 답하는 것과 똑같을 거에요. 아리안 므누슈킨의 말에 제가 하나 덧붙인다면 내 최고의 작품은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고, 그보다 더 좋은 작품은 다음에 할 작품이 될 것이다, 에요.




아직도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 자체로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제발 잘 버티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연극을 하다 보면 소외감도 느끼고 보잘것없다는 생각도 할 거에요. 영화는 한 편이 개봉되면 천만 명까지 보는데, 연극은 많이 봐야 천 명, 이천 명이잖아요. 천 명만 봐도 감사한 거죠. 그래서 연극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위축될 수도 있고 소외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도 연극을 하겠다면 너무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죠.

그리고 본인이 잘 버텨나가야죠. 돈, 인기 같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런 것들에 연연해하는 사람이라면 연극을 하면 안 돼요. 배우는 영화도 하고 TV도 할 수 있지만 연출의 경우에는 매체를 넘나드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소위 말해 잘나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연극하는 걸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욕심 많이 부리지 말고 해나가야죠.



‘찾아가는 연극’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어요. 이 세상엔 연극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그래서 아마추어 연극들이 성행하는 거에요. 동호회도 엄청 많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공연을 만들어서 찾아가는 게 아니라 지방이든 시골이든 제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연극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사실 지금도 해마다 그런 작업을 한 편씩 하고 있어요. 5년쯤 됐네요. 올해는 장애인극단과 하려고 했는데 지원금이 떨어져서 못하게 됐어요. 직장인들과 하기도 했고, 2013년에는 소년교도소에서 했고요. 아마추어 분들과 할 때마다 연극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요. 연극이 가진 힘, 그 집단 작업이 가진 힘이 분명히 있어요. 일시적이라도 그들이 연극을 하며 받는 치유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그걸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게 소년교도소에서 연극을 같이 만들었을 때고요.

그래서 그 일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어차피 저는 연극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노인들이든, 어린 아이들이든, 장애인이든, 수형자들이든, 환자들이든, 제가 그들 안에 들어가서 연극을 함께 만드는 것이 제 노후계획이에요. 연극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힘, 그걸 제가 주축이 돼서 전파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나이 들면 지방에 가서 떠돌면서 살려고요. 슬슬 연극 의뢰가 떨어지고 뒷방 늙은이가 되간다 싶으면(웃음) 그때는 가방 들고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연극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 지속적으로 공연장을 찾아주는 관객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는 마음이 첫 번째고, 거기에 덧붙여서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그래서 매 순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아둥바둥하고 있는 것이고요. 배우들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해요. 배우들도 공연마다 컨디션이 좋고 나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관객은 그날 하루만 와서 공연을 보는데 무슨 죄냐'고 하죠. 그래서 어느 정도 공연의 평균적인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관객 분들의 발걸음을 늘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정리: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