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해 뭘 선택하나요?' 장애, 성, 죽음... 금기에 대해 <킬미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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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받고 주저했었다. 소재의 민감성, 그로 인해 잘못 표현하면 굉장히 오독되어질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대본을 앞에 두고 주저한 이는 오경택 연출 뿐만이 아니다. 아버지 제이크 역으로 출연 중인 배수빈도 "일주일 간 망설였다."고 하고, 함께 아버지 역을 맡은 이석준 역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연극 <킬미나우>,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날 죽여줘, 지금'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의 연극 <킬미나우>가 지난 5월 1일 프리뷰를 시작한 후 4일 작품 전체를 언론에 공개했다.
 

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 작으로, 장애를 가진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장애, 성(性), 안락사 등 그간 수면 위에서 공론화하기를 주저했던 소재들을 덤덤히 펼쳐내고 있는 것이 특징인 작품이다.

조이 역의 윤나무, 오종혁과 제이크 역의 이석준(왼쪽부터)
 

제이크 역의 배수빈, 그의 연인 로빈 역의 이지현,
제이크의 동생 트와일라 이진희, 조이의 친구 라우디 문성일(왼쪽부터)

 

열연을 끝내고 기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배우들은, "분명히 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각색자 지이선 작가의 말에 십분 공감한다는 뜻을 전했다.
 
"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 역에 접근하기 시작했을 때 큰 벽에 부딪혔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해답 하나는, 이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의 아들일 수도, 누구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그냥 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출발해 아버지의 역할에 충실했다. 어찌보면 출연 캐릭터들이 다 장애인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작품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닿아 있지 않나, 싶다."(이석준)
 
이석준이 맡은 아버지 제이크는 염색체 이상으로 신체, 언어적 장애를 지닌 아들 조이를 평생 곁에서 헌신적으로 돌보는 인물이다. 함께 제이크로 분하고 있는 배수빈은 "다른 배우가 무대에 선 모습을 보면 너무 배 아플 것 같아 뛰어들었다."면서도 작품에 임하는 어려움을 드러냈다.

"맨 처음에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게 이 작품을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해 아들을 키우면서 제이크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텍스트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또 내 자식을 키워가는, 그리고 부모님이 날 키워주신 이야기라는데 방점을 찍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먹고, 입고, 씻는 등 일상의 많은 것들을 타인의 도움을 받아 지속하고 있는 아들. 그렇지만 성인의 문턱을 넘으며 새롭게 성(性)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를 분출하는 조이 역에는 지난해 완전체로 컴백한 그룹 클릭비의 멤버이자 <그날들> <프라이드> <서툰사람들> <공동경비구역 JSA> 등 뮤지컬, 연극으로 탄탄히 무대 경험을 쌓고 있는 오종혁과 <로기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등에서 호연을 펼친 윤나무가 번갈아 나서고 있다.
 
"너무 하고 싶어서 공연 제작사 대표님과 같이 소속사를 설득했다. 어떻게 하면 장애인분들에게 불편하지 않은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표현 속에 감정들을 같이 녹여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중간에 엄청 힘들 때 석준 선배가 기능적인 면, 기술적인 면에 대해 너무 고민하지 말고 감정에 집중하라고 조언을 해 주셨고, 그런 노력을 더 하려고 했다."(오종혁)
 

윤나무 역시 조이로서의 표현 방법이 아니라 그의 상황, 감정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는 뜻을 더했다. "심각한 장애를 가진 캐릭터이고, 연출님과 함께 자료들도 찾아보았지만, 어떤 모델이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 스펙트럼이 넓었다. 드라마에 빠져들수록 조이는 어떤 마음일까에 대해 더 고민이 많았다. 조이의 마음, 그 친구가 다른 가족, 다른 친구들을 바라보는 시선 등은 어떨까, 등에 대해 더 염두하고 연습해 왔다."
 

<킬미나우>는 부자(父子)들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빠와 조카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한편 사랑에 실패해 상처 입은 트와일라, 제이크와 진심과 사랑을 나누지만 그의 몰락을 지켜봐야 하는 공허한 유부녀 로빈, 그리고 '태아 알콜 증후군'으로 태어나 어려서 버림받고 집 없이 떠돌아 살았지만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타인의 상처를 보듬을 줄 아는 조이의 친구 라우디 역시 우리 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자신이자 이웃이다.
 
"나(로빈)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점자 지쳐가고, 주변의 간병인들이 더 아파져서 곤란을 겪는 일이 많기에, 이 작품은 소수가 아닌 보통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모든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이지현)
 
"대본이 너무나 잘 되어 있어 그걸 충실히 따르려고 했다. 트와일라 입장의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이진희)
 

오경택 연출은 "원작은 굉장히 영상적인 시선으로 쓰이고 있어 장면 변화도 많고 속도로 빨라 이를 연출로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킬미나우>. 그는 이 작품이 우리들이 같이 고민해봐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직관이 섰고 그렇게 구현했다고 말했다. 주저하지 않는 전개, 그 사이에 흐르는 섬세하고 절절한 감정들에 이미 많은 관객들이 사로잡히고 있는 듯 하다.
 
연극열전6의 두 번째 작품인 <킬미나우>는 오는 7월 3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만날 수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남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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