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로맨스에 숨겨진 뭉클한 반전 <장수상회>
- 2016.05.12
- 김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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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이 다소 길게 느껴졌다. 프레스콜 진행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마저 생길 때 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배우 백일섭이 보였다. 다소 느린 걸음으로 등장하는 그를 위해 암전시간을 충분히 가진 것이다. 젊은 배우들처럼 민첩한 몸짓으로 무대를 휘젓고 다니지는 않지만 수 십 년 연기 경력을 가진 베테랑 배우들은 노련하고도 사랑스러웠다. 중견배우들의 매력이 빛을 발했던 연극 <장수상회>의 프레스콜 현장을 전한다.
“지난 5일 개막했는데, 연극이 끝나고도 자리에서 못 일어나는 관객이 있더라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연극이 너무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관객들이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은 연극입니다.” (성칠 역 이호재)
연극 <장수상회>는 노년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다. 연애초보 노신사 ‘김성칠’이 꽃집 여사장 ‘임금님’에게 반하면서 수줍게 시작하는 러브 스토리가 작품의 문을 연다. 하지만 노쇠해진 육체의 한계와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성칠과 금님은 힘겹게 사랑을 이어가게 된다.
지난 10일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는 약 30분 동안 일부 장면이 시연됐다. 먼저 성칠과 금님의 놀이공원 데이트 장면이 펼쳐졌다. 성칠 역의 백일섭과 금님 역의 김지숙은 동물모양 머리띠를 착용하고 등장했다. 큰 인형을 선물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수줍게 애정을 표현하는 둘의 모습은 백발이 성성한 분장이 무색할 만큼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자신을 할머니가 아닌 ‘여자’로 대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금님의 대사에서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 중 하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감정이 젊은이들의 전유물은 아니란 점이다.
“ 지금까지 봤던 어떤 작품보다도 대본을 읽었을 때 전율이 느껴졌어요. 전 결혼을 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훅 와 닿는 감정이 있었다고 할까요. 평생 남편 하나 없었는데 백일섭, 이호재 두 선배님과 연기하면서 남편을 둘이나 가져보네요.(웃음)” (금님 역 김지숙)
연극 <장수상회>는 명연기력을 자랑하는 중견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꽃보다 할배>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드라마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온 백일섭은 23년 만에 연극무대에 섰다. 백일섭은 장면 시연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년까지만 해도 아버지 역을 맡았는데 이번 작품에선 할아버지를 맡게 돼 내심 서운하다”며 농담을 건넸다.
백일섭과 함께 ‘성칠’역을 맡은 이호재는 70대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매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관록의 배우다. 그는 작품분석을 위해 동명의 영화를 봤냐는 기자의 질문에 “볼 기회가 있었지만 일부러 보지 않았다. 연극은 영화와 전혀 다른 장르다. 연극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풀어내려면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지난 2월 연극 <바냐 아저씨>를 통해 대학로를 대표하는 중견배우로서의 모습을 다시 확인시켜준 김지숙은 기자간담회 내내 옆자리의 백일섭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작품 속에서 알콩달콩했던 노년 커플의 모습이 이어지는 듯 했다. 백일섭과의 호흡이 어땠냐는 질문에 김지숙은 다소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꽃보다 할배>에서 백일섭 선배님의 까칠한 모습 보셨죠? 실제로는 그것보다 열 배는 더해요.(웃음) 처음에는 서로 너무 안 맞았어요. 아무래도 TV와 연극, 서로 다른 매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작품에 몰입하는 방식과 속도가 다르더라고요. 하지만 백일섭 선배님은 보면 볼수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어요. 그 매력에 푹 빠져서 호흡을 잘 맞추고 있어요.”
마냥 행복하기만 한 황혼의 로맨스물로 보이지만 가슴 찡한 반전이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연극 <장수상회>는 오는 5월 29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 :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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