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청춘이여, 무죄를 외쳐라!' <보도지침> 배우들과 함께 한 모의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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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써라', '이 기사는 쓰지 말아라', '이 기사는 신문 1단에 넣어라', '이 기사는 2단에 실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뿐 아니라 기자에게 기자로서의 역할, 의무, 신념을 앗아갔던 정부의 '보도 규제'.
1980년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법정 연극 <보도지침>의 배우 송용진, 이시후, 안재영, 강기둥이 법정 위가 아닌 옆에 선 배심원이 되었다. 팍팍한 세상살이, 돈 보다는 꿈을 좇고 싶은 나,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전혀 생각이 없는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인 나, 누가 유죄이고 무죄인지 '인생선배'가 되어 들어줄 터.


'힘내라 청춘!'을 외치는 플레이디비 배우와의 만남 2탄은 <보도지침> 배우들과 함께 하는 모의 재판이었다. 그렇다고 딱딱한 분위기였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 '단죄'가 아닌 '솔직히,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 고민 나눔 현장의 문은 "여기 누우셔도 된다."는 강기둥 배우의 말에 '빵' 터진 함박 웃음으로 열렸다.
 

반드시 해야 하는 건 효도, 안 해야 하는 건 범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건 결혼
 
첫 번째 안건은 오늘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3포 세대'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결혼에 관한 것.
 
"어렸을 때부터 독신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확실한 대학생이에요.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무게감도 있고, 나를 위한 자유도 좋거든요. 그런데 주변 어른들은 이런 저의 생각을 나무라시더라고요. 독신으로 살려는 나, 유죄인가요? 무죄인가요?"
 
네 명의 남자 배우들 중 미혼인 세 배우들도 사연자의 고민에 십분 공감의 뜻을 더했다.
 

이시후 : 저 역시 명절 때 집에 잘 안 가요. (일동 웃음) 제일 친한 친구가 3년 전에 결혼했는데 결혼하면서 저에게 "잘 생각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반드시 해야 하는 건 효도, 반드시 안 해야 하는 건 범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건 결혼이라고요.
 
저도 20대 때는 독신으로 살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2년 전부터 마음이 바뀌어서 결혼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고 이제 준비해 보려고요. 지금 여자친구를 2년간 만났는데 가장 오래 만난 사람이에요. 자연스럽게 어느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리 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강기둥 : 저희 부모님도 제가 결혼하길 원하시는데, 전 결혼보다는 2세를 더 원하는 것 같아요. 결혼에 대해 어떤 부정적, 긍정적 생각은 없는데 2세에 대한 소망은 있거든요. 나를 닮은 아이를 보고 싶달까? (웃음)
 
안재영 : 저 역시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독신이라는 뜻도 얼마든지 존중해야 하고요.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결혼하는 거고, 아니면 안 하는 거죠.


그런데 제가 2대 독자인데, 아버지가 '안'씨 시조세요. 너무 힘들게 사셔서 열 일곱 살에 자기 성을 등록하셨대요. 그래서 그 성이 2대에서 끊기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런데 그런 압박으로 결혼을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지 않은 걸 설득이 아닌 무조건으로 강요하면 그건 폭력이잖아요. 선택은 본인이 하는 거죠.
 

참여 배우들 중 유일한 기혼자, 예쁜 딸을 키우고 있는 송용진 역시 이들의 뜻에 동의했지만, 행복한 지금의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도 빼놓지 않았다.
 
송용진 : 저는 2013년 1월 서른 아홉 살 늦은 나이에 결혼했고, 2015년 7월에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어요. 20대 때는 결혼에 대한 개념도 아예 없었고 지금 아내와 7년을 연애하면서도 결혼 생각은 연애 후반기에 했어요. 결혼은 어차피 본인 인생이고 선택도 자신의 몫이에요. 확실한 건 결혼에는 많은 책임감이 따른다는 거고, 결혼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 낳기 전과 후의 가치관이 정말 많이 바뀐다는 거거든요. 개인적으로 결혼생활에 굉장히 만족하고 행복해요. 주변에 혼기 찬 여배우들이 결혼에 대해 제게 카운셀링을 많이 받는데 적극 하라고 하는 편이에요.

여기에 이들이 입을 모아 덧붙이는 건 "결혼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것. 타인의 강요 때문에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생각이 서기도 전에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 역시 위험하다는 게 이들 배심원들의 의견이었다.
 

우리가 진정한 비정규직, "꿈이 있는 사람은 얼굴에 웃음이 있어요"
 
두 번째 고민 역시 청춘들이라면 모두 안고 있을 '꿈'과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적성과 관계는 없지만 나름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그만 뒀어요. 그런데 처음 결심과 다르게 주변의 이야기들, 그리고 재정적인 상황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실보다 꿈을 택한 저, 유죄인가요? 무죄인가요?"
 

역시 이 고민을 깊게 나눌 수 있는 적임자가 있었으니 바로 배우 이시후. 공연계 드문 '정규직'이라 할 수 있는 서울예술단에서 작년, 38살의 나이로 나온 그는 "앞으로 겪을 시행착오를 외면하지 말기"를 바랐다.
 
이시후 : 예술단 활동하면 외부 작품에 제약이 좀 있었고 또 제 욕심대로 일이 잘 안 된다는 생각이 드니 판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7년을 지내다 38살 나이에 나왔죠. 아직도 부모님은 제가 예술단 나온 걸 모르세요.
 
이후 겪은 일들은 많이 힘들었죠. 1년 간은 퇴직금으로 버텼고, 여자친구가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게 고맙기도 하지만 신경도 쓰이고. 그렇지만 일어나는 일들을 다 받아들이셔야 될 거에요.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그건 남의 탓을 할 수가 없죠.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뭔가 조금씩 풀려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저도 하고 있어요.
 

송용진 : 저 역시 저금을 하기 시작한 게 30살 이후에요. 그 전까진 벌어서 살면 끝이었죠. 우리는 항상 비정규직이고, 공연 하면 3개월 계약직이잖아요. 그런데 열심히 하면서 버티고 있으면 기회는 몇 번은 와요.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더 늦기 전에 결정 내리신 건 잘하신 일 같아요. 어떤 희생이 따르겠지만 그 기간을 잘 버티시면 좋은 결과 있을 거에요. 꿈이 있는 사람은 배가 고파도 행복하고 얼굴에 웃음이 있거든요.
 
돈이 없어 도시락집에서 맨밥을 700원에 사서 사발면과 같이 먹으면서도 "꼭 성공하리라"고 다짐했다는 송용진. 안재영이 "두 개씩 묶여 있는 편의점 삼각김밥이 정말 좋았다"며 말을 이었다.
 

안재영 : 주변에 일반 회사 다니는 친구들 많은데 술 한 잔 할 때마다 "행복하냐?"며 서로 물어요. 그러면 전 언제나 "난 행복해."라고 하죠. 비록 항상 술은 얻어먹지만. (웃음) 버스비가 없어서 대학로까지 걸어 다닌 적도 있고, 통장에 5만원 있었는데 2만원은 버스카드 충전하고 나머지 돈으로 어떻게 며칠 간 밥을 먹을까 계산하며 지내기도 했거든요. 편의점에 두 개씩 붙어 있는 삼각김밥이 정말 고마웠어요. 그거랑 사발면 먹으면 끝나거든요. (웃음)
 
우리가 착각하는 건, 하고 싶은 걸 하면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하고 싶은 걸 취미로 해도 되고, 또 훗날 그게 큰 돈이 될 수도 있고. 중요한 건 내 스스로 선택한 목적을 위해 사는 것, 그렇게 살면서 행복을 느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강기둥 : <히스토리 보이즈> 함께 공연했던 최용민 선생님도 처음 연극 시작하셨을 때가 40살이셨데요. 그 전엔 심지어 한 회사의 CEO셨는데. 극장 갈 때는 운전사가 차로 데려다 줬는데, 극장 들어가서는 커피 타셨다고. (웃음) 막내니까요. (웃음) 꿈을 위해서 내가 채워야 할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보도지침>에 대한 참가자들의 궁금증도 즉석에서 풀어보았다. 무엇보다 <보도지침>이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특별한 시작에 대해 관심이 컸다.
 

"대본을 읽고 무조건 이 작품을 하겠다고 했어요, 어떤 배역이든, 개런티가 얼마든 상관 없다고요. 극 중 김주혁 기자의 대사 90%는 실제 인물인 김주언 기자의 말을 그대로 쓴 거에요. 최후 진술에서 "내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 부당한 재판이 없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게 확 꽂혔죠. 딸을 위해서, 또 배우로서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데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어요."(송용진)
 
만약 '역할 체인지'가 가능하다면 꼭 해보고 싶은 역할로 '최돈결'이 꼽히기도 했다.
"친구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된 (최)돈결 역을 기회가 된다면 해보고 싶어요."(이시후)
"가장 매력적이고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많고, 가장 극적인 인물이기도 하고요. 공연 보러 온 많은 남자 배우들도 돈결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송용진)
 

한 시간은 어느 때 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작품에 대해, 저마다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치열하게 주고 받았던 이날의 결론은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청춘 무죄!'.

"다가올지도 모를 어떤 불이익이라도 감수하고 시작한 작품"(송용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떤 상황에서건 우리가 서는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관객들에게 보답하는 것"(안재영)이라는 말이 다만 <보도지침>에만 국한되는 건 아닌 듯하다. <보도지침>은 오는 6월 19일까지 수현재씨어터에서, 플레이디비 배우와의 만남 '힘내라, 청춘!'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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