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록키호러쇼>의 성공한 덕후” 송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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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배우’라는 표현만으로는 살짝 부족하다. 어느 무대에 오르든 탄탄한 실력과 든든한 존재감으로 자신의 인장을 또렷이 새겨온 배우, 무대 밖에서는 철두철미한 자기관리와 끝없는 도전으로 스스로를 발전시켜온 배우. 올해로 데뷔 18년차를 맞이한 송용진에 대한 이야기다.
 
그간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트랜스젠더(<헤드윅>), 천재 물리학자(<마마 돈 크라이>), 저승사자(<신과 함께>) 등 독특한 캐릭터들을 여러 차례 소화해온 그가 뮤지컬 <록키호러쇼>에서 또 한번 범상치 않은 인물로 분했다. 양성애자이자 외계인이며, 복장도착 성향과 인간 창조에 대한 야망을 가진 프랑큰 퍼터 박사다. 송용진은 너무도 기이한 이 인물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해냈고, 허리를 단단히 조인 붉은 코르셋과 망사 스타킹을 착용한 그가 무대에 나타나자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가 지난 시간 쌓아온 연륜이 새삼스레 돋보인 순간이었다.
 
Q <록키호러쇼> 객석 반응이 정말 뜨겁던데요. 전에도 이 작품에 출연하셨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객석 분위기가 어떤가요.
제가 <록키호러쇼>를 네 번째로 출연하는데, 이번 공연이 가장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9년 전엔 소극장에서 되게 영세하게 공연을 했는데(웃음) 이번에는 제가 느끼기에 퀄리티도 더 높고, ‘잘 빠졌다’는 말이 딱 어울려요. 그래서 관객 분들도 더 뜨겁게 반응하시는 것 같고요.
 
초반에는 관객 분들이 호응을 안 하시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작팀과 아이디어를 모아서 관객 분들의참여를 유도하는 영상도 만들었는데, 그걸 보고 많이 화답해 주시니까 재미있어요. <록키호러쇼>는 객석 분위기가 정말 중요한 공연이거든요. 객석도 시끌벅적하고, 참여도 많이 해주시고, 같이 고무장갑도 튕겨 주시니까(웃음) 너무 좋죠.
 
Q 무대에 처음 등장하실 때도 관객들의 호응이 열광적이어서, 공연할 맛 나겠다 싶었어요.    
제가 등장할 때뿐 아니라 무대에서 배우들이 뭘 할 때마다 객석에서 쫙쫙 반응이 와요. 관객 분들이 그렇게 해주시면 배우들이 에너지가 7밖에 없어도 15까지 낼 수 있어요. 전 매일 등장하기 전 ‘타임워프’ 때 무대 감독 자리에 가서 객석을 모니터해요. 그날의 분위기를 체크하고, 관객 분들이 (안무를) 잘 따라하신다 싶으면 자신 있게 첫 등장을 준비하죠. 공연에 따라 조용히 집중해서 봐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이 공연에서만큼은 마음껏 풀어지셔도 될 것 같아요.
 
제 대사 중에 ‘닫혀진 마음을 열어요, 열린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요’라는 말이 있어요. 이 공연의 주제가 ‘Don’t dream it, Be it’이기도 하고요. 우리 공연이 정말 열려있는 공간, 뭘 해도 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원래 외국에서는 관객들이 중간중간 대사도 치고 들어오는 게 이 공연의 전통이에요. 나중에 이 작품의 마니아들이 더 많이 생긴다면 그런 것들도 하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만큼 참여해주시는 것도 정말 고무적이고 기쁘고, 배우들이 다들 행복해해요.
 
Q 작품이 ‘잘 빠졌다’고 하셨는데, 이번 공연이 예전과 어떻게 다른가요.
옛날에는 정말 돈이 없어서 B급으로 공연을 했어요. 이 작품 자체가 1973년 50석짜리 공연장에서 시작됐어요. B급을 지향하기도 했지만, 돈도 없었던 거죠. 지금의 무대는 돈이 없어서 만들어진 B급이 아니라 일부러 세련되게 잘 만든 B급 무대에요. 규모도 더 커졌고, 작품의 컨셉과 잘 맞게 너무 잘 만들어졌어요. 무대가 잘 만들어졌으니 배우들도 마음껏 놀 수 있는 거죠.
 
Q 프랑큰 퍼터 박사는 워낙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인데,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프랑큰 퍼터는 극과 극이 충돌했을 때 만들어지는 캐릭터에요. 상당히 마초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양성애자이고 여성성도 있어서 망사스타킹과 코르셋을 입죠. 외계인이기도 하고요. 이쪽 끝과 저쪽 끝이 서로 부딪혔을 때 만나는 기괴함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한 대사 안에서도 목소리 톤을 순간순간 바꾸고 성격도 바꾸면서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보여주려고 했어요.
 
저는 이 작품의 마니아였기 때문에, 캐릭터 하나하나를 깊게 들어가서 표현하려고 했어요. 여기 나오는 캐릭터들은 다들 특정 세대나 문화현상을 대표하는 인물이에요. 예를 들어 스캇 박사는 당시의 비겁한 기성 세대를, 에디는 50년대 락앤롤을 상징해요. 프랑큰 퍼터는 70년대 글램록과 사이키델릭 문화를 상징하고요. 극중 프랑큰 퍼터가 에디를 죽이는 것도 다 의미가 있는 거죠. 아마 영화 <록키호러쇼>의 프랑큰 퍼터도 티렉스(T.Rex, 70년대 글램록의 대표 밴드) 보컬의 헤어스타일을 가져온 것 같아요. 영화에서 왜 팀 커리가 프랑큰 퍼터를 그렇게 연기했는지 등도 연구해서 메이크업에나 코르셋에 대한 의견도 내고,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었죠.
 
Q 애초에 이번 공연을 제작하는 데도 의견을 내셨다고 들었어요. <록키호러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아요.
회사 대표님이 컨텐츠개발을 고민하는 자리에서 같이 얘기를 하다가 <록키호러쇼>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드렸었죠. 저는 이 작품의 ‘덕후’에요. 말하자면 ‘성덕(성공한 덕후)’이죠. 그러니 이번 공연이 얼마나 신나고 즐겁겠어요. 매일 공연하러 오는 길이 덕심으로 가득한…(웃음). 한 회 한 회가 남다르게 소중하고, 한 회도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아요.

Q 늘 여러가지 활동을 동시다발적으로 하시면서(웃음) 부지런히 지내시잖아요. 요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요즘도 바빠요. 오늘은 오전에 <신과 함께_저승편>을 연습하다 왔고, 운동(복싱)도 계속 하고 있어요. 그리고 10년 넘게 했던 밴드 쿠바 활동을 작년에 마치고 지금은 새 밴드를 조직해서 준비 중이에요. <록키호러쇼>가 끝나면 작년부터 계획했던 단편 영화를 찍을 계획이고요. 예전에 만들었던 뮤지컬 <노래 불러주는 남자>를 단편영화로 만들려고 하거든요. 영화를 찍으면서 OST도 제작할 계획이라 그 준비도 하고 있어요. 워낙 하고 싶은 게 많고 꿈도 많아서 시간을 쪼개서 쓸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이제 애 아빠니까 애기랑도 놀아줘야 하고, 집안일도 있고요. 총각일 때보다 더 바빠요(웃음).
 
Q 지금처럼 열심히 살게 된 계기가 혹시 있었나요.
20대에 독립해서 혼자 가난하게 살다가 음악하는 친구들한테 배신을 당해서 이 일을 계속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20대 중후반이었는데, 그때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내가 이걸 해야겠다’라는 확신이 든 후부터는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그전까진 한량같이 놀러만 다니면서 살았거든요.
이제는 나이가 들면서 주변도 챙겨야 하고, 젊고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또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저만의 경쟁력도 고민하게 되고요.
 
Q 스스로 자신만의 경쟁력 혹은 강점을 꼽는다면요.
글쎄요…남들이 하기 힘들어하는 걸 잘한다는 것? 제가 연기해온 인물들 중에 멋있고 일반적인 남자주인공보다는 좀 센 역할, 하기 어려운 역할이 많았잖아요. 헤드윅이나 셜록홈즈, <마마 돈 크라이>의 프로페서 V도 그렇고요. 그렇게 좀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제 장점 같아요. 제가 배우 조니 뎁을 되게 좋아하는데, 한국의 조니 뎁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를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건 상상이 안 되지 않나요?
 
나이가 들면서 갖게 되는 또 다른 장점도 있어요. 배우들은 연기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자기 캐릭터를 보게 돼요. 나부터 시작하는 거죠. 그런데 공연을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전체 공연을 먼저 보게 돼요. 전체 공연 속에서 나의 위치는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연출가가 고민하는 것들을 잘 그려줄 수 있을지도 생각하게 되죠. 그런 것도 강점인 것 같아요.
 
Q 공연이나 영화, 음악 창작에 대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으세요?
기본적으로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무용 공연에서 얻기도 하고요. 언어가 사라졌을 때 표현되는 무대 예술의 매력이 좋더라고요. 저는 영화는 소설이고 무대 예술은 시라고 생각해요. 언어를 최대한 자제하고 음악, 움직임, 조명 같은 것들로 함축과 은유를 통해서 표현하는 작품들이 좋아요. 그래서 무용 공연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요.
영화는 닥치는 대로 다 봐요. 단편영화든 히어로물이든,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다 봐요. 요즘엔 애기가 있어서 극장에 갈 수가 없으니까 IPTV로 거의 하루에 한 편씩 보는 것 같아요.
 
Q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시함뮤(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 공연에도 참가하셨고, 대선 기간에 투표 독려 릴레이 버스킹도 하셨어요. 당시 ‘블랙리스트’ 논란도 있었는데 그런 활동을 하면서 부담은 없었나요.
제가 정치를 할 일은 없지만, 국민으로서는 (정치에) 관심이 있어요. 특히 아이를 낳고 나서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제 자식한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으니까요. 그 전에 당장 내가 미쳐버리지 않으려면(웃음) 세상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서 그런 활동들을 하게 됐어요.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내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그런 기분이 안 들더라고요. 그래서 광우병 시위 때부터 매일 촛불집회에 나갔고, 얼마 전엔 ‘시함뮤’ 공연이 없는 날에도 계속 시위에 나갔어요. 많은 분들이 부담되지 않냐고들 하시는데, 제가 불이익을 받아봐야 얼마나 받겠어요. 거리낄 것도 없고, 뭘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민으로서 제가 할 일을 하는 거죠.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옳다고 말하는 거에요.
 
Q 가끔씩 10년 후, 20년 후의 모습도 그려 보시나요?    
전 항상 10년 후를 생각해요.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그걸 위해 준비를 해요. 30대였을 때 제 꿈은 40대에 장편 영화를 찍는 영화감독이 되는 거였어요. 이제 단편영화로 그 준비를 시작해서 40대엔 장편 뮤지컬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배우로서도 계속 살아남아서 제 나이에 맞는 역할로 무대에 서고, 공연도 만들고, 그렇게 예술가로 계속 살고 싶어요. 멋있게 나이 드는 게 꿈이에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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