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쏟아지는 좌석? <이블데드> 스플레터석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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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좀비 뮤지컬 <이블데드>는 개막 당시 좌석등급을 VIP, R, S석이 아닌 독특한 이름으로 구분해많은 화제를 모았다. 스플레터석, 이선좌석, 눈밭석, 창조주석, 벽타는석 등 개성 강한 좌석명이 뮤지컬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좌석이 있다. 무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이블데드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스플레터석이다. 좀비로 변신한 배우들이 객석으로 직접 내려와 관객들에 피를 묻히는 특별한 좌석이다 보니 객석의 반응도 무척 뜨겁다. 백문이 불여일견! 스플레터 석의 매력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 지난 6일 <이블데드> 공연장을 직접 찾았다.

 
 ▲ 이블데드 스플레터석 관람를 위한 준비물

“거 참, 피 맞기 딱 좋은 날씨네” 하늘도 오늘 기자가 좀비 뮤지컬을 본다는 걸 아는 걸까? 을씨년스럽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게 진짜 좀비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다. 스산해진 기분으로 <이블데드> 공연장 매표소에 들어서자 직원이 친절한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넨다. “짐은 물품보관함에 넣으시면 되고요. 우비와 덧신은 여기 있습니다.”

물품 보관함에 짐을 넣기 전 집에서 챙겨 온 준비물을 하나, 둘 꺼낸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인 온 몸이 마치 아이언맨처럼 새빨갛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만반의 준비를 해온 것. 피가 튀어도 괜찮을 흰 티와 반바지, 소중한 머리카락을 보호할 헤어캡, 피를 닦아낼 물티슈와 수건까지. 비장의 무기들을 하나씩 봉지에 넣어 공연장을 들어선다.
 
 ▲ 1위 공약으로 '살아있는 포토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배우 전재현과 안영수
 
 “피 맞을 준비 다 됐어요~” 무대 바로 앞 투명 비닐에 덮여 있는 장의자, 저 자리가 스플레터 석이란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 이후 처음 앉아보는 것 같은 이 의자에서 좀비들을 물리쳐야 한다니. 비닐 때문에 자꾸 미끄러지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공연 시작을 기다린다. 8시가 되자 천둥 소리와 함께 어두워진 극장. 오두막집으로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공포 한 스푼, 웃음 열 스푼이 들어간 1막이 끝나자 옆에 앉아있던 관객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좀비들의 습격이 시작되는 2막을 위해 준비에 들어간 것. 길지 않은 인터미션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기 위해 지하 1층에 위치한 화장실로 부리나케 올라가 준비한 흰티와 반바지를 입고, 우비에 헤어캡까지 착용한다. 다시 객석으로 돌아오는 동안 다른 자리 관객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부끄러우면 지는거야’ 마치 런웨이에 선 모델처럼 당당하게 제 자리로 들어선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2막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좀비로 하나 둘씩 변하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한다. ‘혹시 이제 시작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좀비들의 습격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걱정을 내려놓고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있는 순간, 불안하게 들려오는 셀리의 소환 주문. 드디어 좀비들이 깨어난 것이다.

붉은 조명이 쏟아지고, 숨어있던 좀비들이 무대에 등장하자 타이밍을 알고 있다는 듯 옆자리 관객이 우비를 덮어쓰기 시작한다. 답답해 잠시 벗어 두었던 우비를 부리나케 입는데… ‘아뿔싸’ 급하게 입다가 우비가 찢어져 버렸다. 급한 대로 바지라도 보호하겠다는 마음으로 우비로 바지를 가려보지만 정신은 이미 멘붕상태. 내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좀비들은 점점 내가 앉은 객석으로 다가오고… 최대한 튀지 않기 위해 그들의 눈을 피해 객석을 두리번거린다. 그 때 우연히 눈이 마주치게 된 좀비. 2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치타보다 빠른 속도로 갑자기 좀비가 기자의 자리를 덮치며 피를 흥건히 뿌려댄다. 깜짝 놀란 마음에 평소에 부르지도 않던 찬송가를 머릿속으로 되뇌어 보지만 아무 소용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

전쟁 같던 좀비들의 퍼포먼스가 지나가고 내 양손을 쳐다보자 스릴러가 따로 없다. 정신이 혼미해져 손만 만지작 거리는데 옆자리의 관객이 조용히 물티슈를 건넨다.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쓰라는 신호를 건네는 그 사람. 역시 좀비가 기승을 부리는 이 상황에도 인류애는 살아있다. 포에버.
 
▲ 기자의 <이블데드> 스플레터석 관람 전(좌)과 후(우)의 모습

에필로그 하도 소리를 질렀던 탓일까. 공연을 나오며 생수 한 병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른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들을 주섬주섬 꺼내는데… 잔돈을 받으려고 손을 내민 알바생이 의심어린 눈초리로 내 위아래를 훑어본다. 마치 112에 곧 신고라도 하겠다는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오늘 공연에서 피를 너무 많이 뿌렸네요”라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한 뒤 부리나케 편의점을 빠져나온다. 공연은 공연일 뿐, 오해하지 말자.
 
▲ 공연 관람 때 입은 흰 티셔츠의 근황
 
제이크 이훈진과의 미니 인터뷰

Q. 무대에서 내려와 직접 관객들과 마주하는게 부담스럽지는 않나?
관객들이 부담스러울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는 입장에선 재밌다.

Q. 관객들의 반응이 다양할 것 같다. 가장 인상에 남는 관객은?
인상에 남는 분들 정말 많다. 아무래도 피 맞는 것을 즐기시는 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한 번은 우비 없이 옷 위에다 피를 다 묻히고 가신 분을 우연히 지하철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정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Q. 공연을 하다 보면 관객들에게 피를 뿌리는 노하우도 생길 것 같다.
피 주머니를 꽉 잡으면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보통 한 사람만 집중 공격하는 편이다. 목 뒤에서 살짝 피 주머니 위쪽을 잡고 터뜨리면 관객들이 제대로 피를 맞을 수 있다.

Q. 스플레터 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준다면?
일단 보호장구를 많이 준비하셔야 한다. ‘피를 제대로 묻히겠다’라고 한다면 흰 티를 입고 오시는 걸 추천한다. 아무래도 배우로서는 관객들이 피를 맞을 때 환호성을 지르면서 즐길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열린 마음으로 스플레터석을 찾아주시면 좋겠다.


글 / 사진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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