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작정하고 말 꺼냈다…’지금, 우리’의 역사 담은 <노숙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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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골 때리는 연극…한 마디로 역사 이야기다”
 
24일 개막하는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노숙의 시>에 대해 이윤택 연출이 이같이 설명했다. 지난 23일 혜화동 30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다. 이윤택이 예술감독을 맡은 연희단거리패(대표 김소희)는 이날 <노숙의 시>의 1막을 언론에 공개하고, 이어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서푼짜리 오페라-나는 깡패입니다> 등 하반기 라인업을 소개했다.
 
<노숙의 시>는 이윤택 연출이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 <동물원 이야기(Zoo story)>를 새롭게 각색한 연극으로, 1950년대에 태어난 ‘무명 씨’와 직장과 가족을 잃고 노숙 중인 중년남자 ‘김씨’가 펼치는 2인극이다. 명계남이 무명 씨를, 오동식이 김씨를 연기한다.
 
원작이 있기는 하지만, <노숙의 시>는 사실상 재창작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윤택 연출은 두 주인공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제각기 다른 형상으로 일그러져온 개인들의 역사를 녹여냈다. 극적인 서사 전개는 없지만, 두 남자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군부독재 시절 탄압당한 기자들, 강제로 타국으로 쫓겨나 십 수년을 고독하게 살았던 사람들, 두려움 속에 침묵을 지켰던 소시민들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명계남, 오동식 배우의 명 연기가 현대사의 한 순간 순간들을 강렬한 아우라로 되살려냈다.
 
극에는 1952년생인 이윤택 연출과 명계남이 실제 겪은 일화들도 담겼다. 스트라빈스키, 핑크 플로이드 등 극중 간간히 흘러나오는 음악도 두 사람이 젊은 시절 즐겨듣던 곡이다. <백석우화> 등에 출연해온 배우이자 부대찌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오동식의 이야기도 극에 담겼다. 

 
“갈수록 연극이 엔터테인먼트화되고 재미있는 것만 보려고 하는 흐름이 있더라. 나라도 무거운 담론을 꺼내야 되지 않을까 싶어 작정하고 만들었다. 드라마나 극적 구성 필요 없이 그냥 따발총처럼 (대사로) 쏘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이윤택 연출은 연극계에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좀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노숙의 시>를 구상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하숙집 안주인’, 적폐세력 또는 평범한 소시민이 가진 비겁함을 의미하는 ‘검둥개’ 등 현대사에 얽힌 직접적인 비유와 상징들이 극에 담겼다.
 
이 작품은 또한 이윤택 연출이 동세대에게 보내는 헌사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세대가 참 대단한 세대라는 생각을 했다. 전쟁통에 태어나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생존을 위한 줄타기를 해온 세대인데, 요즘 다 실직하고 집에만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격랑의 시대를 참을성 있게 헤쳐온 전후 세대의 영광과 오욕을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1973년 대학교 때 처음 출연했던 데뷔작이 <동물원 이야기>였다. 그 때는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연기했는데, 그 때의 충격이 나를 지금까지 배우로 오게 했다. 지금 그때처럼 처음 연극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신이 난다”
 
명계남은 <노숙의 시> 원작과 얽힌 기억을 회상하며 각별한 소감을 밝혔다. 이윤택 연출이 그를 가리켜 “명계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성과 화술을 해낸다. 연기를 하지만 연기를 뛰어넘는 실재성이 묻어나온다”고 말한 것처럼, 명계남은 배우 단 둘이 이끄는 무대에서 묵직한 존재감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와 함께 연기를 펼친 오동식은 이번 작품이 <백석우화>보다 더 힘들었다고 전하며 “이윤택, 명계남 선생님과 저의 실제 기억이 담긴 연극이라 시간이 지나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노숙의 시>(~9.17 30스튜디오)에 이어 연희단거리패가 하반기에 공연할 공연은 총 8개 작품이다. 먼저 이윤택이 연출하고 김미숙, 오동식, 윤정섭 등이 출연하는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9.21~24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1.22~12.17 30스튜디오)이 펼쳐진다. 연희단거리패가 브레히트 서거 50주년을 맞아 2006년 초연했던 공연으로, 그 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 각종 연극상을 휩쓴 작품이다.
 
이어 10월에는 이승헌이 연출하고 안윤철, 홍민수, 이혜민 등이 출연하는 <서푼짜리 오페라-나는 깡패입니다>(10.5~15 30스튜디오)와 김소희가 연출하고 김하영, 이현준, 김승현이 출연하는 <두개의 달>이 무대에 오른다. 이어 11월에는 종로구 아이들극장에서 펼쳐지는 가족극페스티벌 작품으로 <미운오리와 인어공주>(11.9~19), <눈의 여왕>(11.22~12.3), <스쿠루지>(12.15~31)가 예정돼 있다.
 
연말에는 <길 떠나는 가족>(11.16~17 코엑스 오디토리움>이 무대에 오른다. 화가 이중섭의 삶을 재구성한 연극으로, 이윤택이 연출하고 윤정섭, 김소희, 오동식이 출연한다. 다음으로는 젊은 연출가 이채경이 연출하고 김소희가 출연하는 모노음악극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12.20~31 30스튜디오>가 펼쳐질 예정이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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