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무대의 8가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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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벤허>의 무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해상 전투, 전차 경주 장면 등 동명의 고전 영화가 보여줬던 스펙터클한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실감나게 구현됐기 때문이다. 탄탄한 스토리, 강렬한 넘버와 어우러져 뮤지컬 <벤허>의 매력을 배가시키고 있는 무대! 이 무대를 만든 서숙진 디자이너에게 제작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직접 들어봤다.  

상징적 표현보다는 현실적인 무대로
<벤허>의 시대적 배경은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던 서기 26년경이다. 뮤지컬 <벤허>는 이 시대의 의상, 건축 양식을 충실히 반영한 리얼리즘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무대에서는 실제 사물이나 풍경의 특징적인 부분들만 뽑아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벤허>는 현실감을 충실히 살린 무대로 몰입감을 더한다. 벤허 가문의 저택과 시저의 궁전, 콜로세움 등 수많은 배경이 세트로 제작되면서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의 천장에는 세트구조물들이 빼곡히 들어차게 됐다. 서숙진 무대 디자이너는 “도면만 40~50장에 이를 정도로 세트가 많다. 다른 작품에 비해 30% 정도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로마인은 레드&골드로 럭셔리하게
로마 시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디테일한 설정 중 하나가 바로 ‘컬러’다. 시저나 빌라도와 같이 권력의 최상위층에 있는 인물들은 붉은 색과 금색 계열의 의상과 세트로 화려하게 표현했다. 다만, 로마의 장군이자 벤허의 양아버지인 퀀터스는 권력자이지만 벤허를 보듬는 따뜻한 인물인 점을 반영해 다른 로마인들과는 다르게 대리석 색에 가까운 베이지를 메인 컬러로 설정했다.
 
무대 프레임 양쪽에 자리잡은 거대한 조각상은 천장을 짋어지고 있는 듯한 모양새로 관객들을 반긴다. 프로시니엄 아치(proscenium arch)로 불리는 이 무대구조물은 객석에 처음 발을 디딘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고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몰입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에너지 넘치는 남성의 모습으로 거칠게 표현된 이 조각은 삶의 무게를 짊어진 인간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전차 경기 신의 말들처럼 조각의 표면이 군데군데 뚫려 있다.
 
둥글게만 보이는 원형경기장이 사실은 평면이라고?
<벤허>의 무대에서는 ‘투시도법’을 활용해 입체감을 더한 구조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미술수업 시간에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투시도법’은 3차원의 사물을 2차원의 평면 위에 표현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벤허가 검투 경기를 벌이는 콜로세움 세트가 이 투시도법을 이용했다. 멀리서 보면 원형 경기장 벽면을 실제처럼 구현한 곡면 세트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완벽한 평면이다. 곡면으로 제작되면 무대 천장이나 좌우 공간에 세트를 보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투시도법과 더불어 콜로세움 표면에 붙은 울퉁불퉁한 장식들도 입체감을 더하는 요소다.   
 
앙상블의 멋진 깃발 군무가 펼쳐지는 시저의 궁전도 같은 원리의 시각적 효과가 적용됐다. 시저의 의자 양 옆에 선 기둥은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데, 이 때문에 객석에서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해상 전투신, 실제 크기 배 들여올 뻔
스크린에 영상을 투과해 배의 외관을 표현하고, 실제 세트는 배의 일부분을 단면도처럼 표현했다. 애초 왕용범 연출의 의도는 실제 크기에 가까운 배를 제작하는 것이었지만, 무대 양 옆에 거대한 배 세트를 보관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지금도 무대 양 옆은 갑옷과 칼, 방패, 거대한 세트로 빼곡하다) 서숙진 무대 디자이너는 “배에는 연극적인 요소들을 적용하고 싶었다. 대본을 보니 배의 회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노를 젓는 리듬, 북을 치는 리듬이 중요하더라. 전체 배가 다 나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일부분만 확대해 표현했다”며 디자인 의도를 설명했다.  
 
전차 경주 장면의 ‘말’이 삼선 슬리퍼 재질이라고?
전차 신에 등장하는 거대한 로봇 말 8마리는 모두 가볍고 탄력성이 좋은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소재로 만들어졌다. 흔히 보는 삼선 슬리퍼의 소재이기도 한 EVA는 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선택됐다. 철제 장식물을 말의 외관에 붙이는 방안도 고려됐지만 무게가 문제였다. 무거워질수록 말의 다리가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기 때문. 수많은 테스트 과정을 거친 결과 가장 안정적으로 무대를 운영할 수 있는 선에서 말의 다리가 움직이는 속도를 정했다고 한다. 향후 재공연시 극장 환경이 바뀌게 되면 말의 움직임도 달라질 수 있다.
 
전차 경주의 말, 배우가 직접 조종한다고?
두 가지 이유다. 먼저 배우가 자신의 연기와 노래에 가장 잘 맞는 타이밍에 말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로는 자동화 무대는 공연 중 오류 발생시 멈추기 어렵다. 배우가 말을 직접 조종할 수 있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멈출 수 있다. 연기의 완성도와 안전을 고려했을 때 배우가 직접 말을 조종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조작도 어렵지 않은 편이어서 배우들은 테크 리허설 기간을 거치면서 충분히 숙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대와 영상의 찰떡궁합 싱크, 어떻게 맞출까?
뮤지컬 <벤허>에는 실제 세트와 스크린에 쏘아진 영상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시각적인 짜릿함을 주는 장면들이 있다. 영상과 무대의 싱크가 정확히 들어맞는 만큼 무대디자이너와 영상디자이너의 궁합도 좋은 지 물어봤다. 서숙진 무대 디자이너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송승규 무대 디자이너가 창작진 중 막내인데 서로 격없이 티격태격하며 지낸다. 무대 디자이너는 영상 안에서 최대한 완성도를 높이고 나를 비롯한 다른 스태프들은 영상과 무대의 조화를 맞춘다” 
 
배우 얼굴과 몸 위로 빔프로젝터를 쏜다고?
<벤허> 공연에는 총 7대의 빔프로젝터가 사용된다. 2층 객석 난간 중앙 부근에 한 대, 무대 좌우 객석을 향한 앰프 하단에 각각 한 대 등 무대 안팎에 골고루 배치돼 있다. 영상이 많이 쓰이는 대극장 무대를 볼 때 마다 궁금한 점 하나. 거대한 스크린에 빛을 쏘는 빔프로젝터는 어디에 달려있길래 배우의 얼굴이나 의상에 영상의 일부분이 닿지 않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영상을 제작할 때 실제 무대에서 배우가 서는 위치를 고려해 사람 모양의 그림자를 넣어 놓는다. 배우가 서는 위치에만 빛이 쏘아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는 무대에 설 때 미리 약속된 정확한 위치에 서야만 한다. 만일 동선이 어긋나 배우에게 빔프로젝터의 광선이 닿더라도 강한 핀 조명을 배우에게 내리쬐면 영상의 빛을 지울 수 있다. 더 강한 빛으로 약한 빛을 삼키는 원리다.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자문 : 서숙진 무대 디자이너
사진 : 쇼온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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