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발레계 스타, 유니버설발레단 황혜민-엄재용 "최고의 순간에 내려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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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자리일 때 떠나고 싶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엄재용 부부가 오는 11월 <오네긴> 공연을 끝으로 발레단을 떠난다. 지난 12일 황혜민, 엄재용은 은퇴 기자회견을 열어 그동안 프로로 활동한 소회를 전했다.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지금, 굳이 왜 은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황혜민은 “무용수들은 보통 사십 대 전후로 은퇴를 한다. 지금 제 나이도 그 정도가 됐고,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후배들을 위해 내려오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황혜민과 같은 무대에서 함께 은퇴를 하는 엄재용은 “유니버설발레단은 우리에게 특별한 곳이다. 영원한 고향, 집 같은 곳이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로서의 은퇴일 뿐 무용 활동은 계속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엄재용은 2000년, 황혜민은 2002년에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했다. 두 사람은 주역 파트너로서 멋진 호흡을 자랑하며 천 회가 넘는 전막 공연을 함께했다. 또한 동료에서 한국 최초의 현역 무용수 부부로 연을 맺었다.

오랫동안 두 사람을 옆에서 지도하고 지켜봐 온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은 “발레는 성인이 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레는 무용수의 삶 그 자체이다.. 그래서 무용수들이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은퇴이다. 은퇴는 삶 전체가 바뀌는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도 하다. 무용수의 삶은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두 예술가가 두 번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축복의 말을 남겼다.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오랜 세월 함께해준 두 예술가의 은퇴가 제 은퇴 때보다 더 아쉽다. 많은 눈물을 흘릴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 문 단장은 “저뿐 아니라 사랑하는 팬들과 발레단 동료 단원들과 직원들도 아쉬운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두 예에술가가 보여준 열정과 삶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황혜민은 엄재용과 했던 첫 무대 <2002 파리 21세기 에뚜왈 갈라>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막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온 해이다. 모든 것이 서툴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무대에 섰는지 모르겠다. 세계적인 무용수들을 보고 멍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무대에 같이 섰던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던 공연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제일 기억나는 일에 대해서는 "2003년에 <지젤>을 처음 했는데 중국무용수랑 파트너가 됐다. 문 단장님과 리허설을 했는데 상대 무용수를 쳐다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눈동자 색깔을 보고 교감을 나누라고 알려주셨다. 이 조언은 <지젤>을 할 때마다 늘 명심한다."고 이야기했다. 엄재용은 "문훈숙 단장의 마지막 공연에 함께 무대에 섰던 것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무용수들에게는 제일 큰 고비가 부상이다. 엄재용은 그런 부상으로 3번이나 당하고 수술했지만 재기에 성공했다.

“어릴 때는 회복 속도가 빨라서 크게 힘든 점이 없었다. 하지만 삼십 대는 재활을 하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대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관객들의 사랑 때문이다. 관객들이 보내주는 엄청난 환호와 박수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고 힘주어 말했다.
 
온전히 몸으로만 감동을 전해야하는 발레는 자기 관리가 철저할 수 밖에 없다.  십 년 넘게 제한된 삶을 살았던 이들이 고별 무대 후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삼십 년 동안 지금까지 이 머리 길이로 지냈다. 머리카락을 한 번도 짧게 잘라본 적이 없다. 무용수에게 머리카락은 소품과 같기 때문이다. 고별 공연이 끝나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탈색을 하고 싶다. 또 한가로운 평일에 브런치를 먹고 싶다.” (황혜민)

엄재용은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맛집 투어를 다니고 싶다”며 평범하지만 자유로운 일상의 기쁨을 누리고 싶음을 전했다. 동료에서 연인으로 또 부부로 함께 지내온 두 무용수는 2세 계획을 전하기도 했다.

이들이 함께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는 공연은 드라마 발레의 거장 존 크랑코의 <오네긴>이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지만, 그 중에서도 두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레퍼토리기도 하다.

"<오네긴>은 한 편의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력으로만 끌고 나가야 하는 작품이다. 저희의 감성, 경험, 관록 등 모든 걸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 선택했다. 그동안은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니 조급함만 컸는데, 이번주에 정식으로 연습을 시작하면서 갑자기 마음가짐이 편안하고 담담해졌다. 이게 작품이 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차분한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하겠다.” (엄재용)

“항상 무대에 설 때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진짜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가 됐다. 마지막까지 감동을 주기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다.” (황혜민)
 
마지막으로 황혜민은 직접 준비한 손편지를 낭독하며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한 "화려한 무대에 설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자신과의 싸움은 고독했다"고 고백하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황혜민의 인사말을 묵묵히 듣던 문훈숙은 단장은 “발레의 역사를 보면 전설적인 유명한 파트너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바로 황혜민-엄재용이 있다. 부부이자 파트너로서 오랫동안 무대 위에서 믿음, 신뢰, 배려의 파트너쉽으로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다.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성장하고 선두에서 이끌어왔던 두 예술가를 많이 사랑한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다시 무대에 서면 좋겠다. 또 두 부부의 재능을 물러 받은 예쁜 2세를 낳아 발레단으로 보내달라”고 전하며 아쉬움을 전했다.

두 사람의 고별 무대인 <오네긴>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11월 24일 금요일 개막 공연과 11월 26일 일요일 폐막 공연, 단 2회만 만날 수 있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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