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대던 남녀가 키스를? 거장 체홉의 숨결 빛나는 <14人(in)체홉>

  • like3
  • like3
  • share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여인에게 죽은 남편의 채권자가 찾아온다. 여인은 돈을 갚으라는 남자의 요구를 지금은 돈이 없다는 말로 일축하고, 화가 난 채권자는 점점 언성을 높인다. 서로를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이라 비난하다 급기야 총을 꺼내 들고 결투에 나선 두 사람. 그런데 잠시 후, 이들은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2013년 초연시 전석 매진되며 인기를 끌었던 연극 <14人(in)체홉>이 무대로 돌아온다. 그간 <프로즌><터미널> 등을 선보였던 극단 맨씨어터(대표 우현주)의 창단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희곡 작가 체홉의 단막극을 엮은 공연이다.  
 
초연 당시 <곰><청혼><담배의 해로움에 대하여><백조의 노래>를 공연했던 맨씨어터는 이번에는 <백조의 노래>를 제외하고 대신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를 엮어 총 4편을 선보인다. 위의 이야기는 이 중 <곰>이라는 단막극으로, 죽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려는 과부와 남편의 채권자가 티격태격 싸우다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지난 27일, 개막을 단 4일 앞둔 이 작품의 드레스리허설 현장을 방문했다. 무대에서 이석준, 정수영, 구도균이 <곰>의 리허설을 시작했다. 이석준은 최덕문, 이갑선과 함께 채권자 그리고리 스쩨빠노비치 스미르노프를, 정수영은 우현주, 서정연과 함께 남편과 사별한 옐레나 이바노브나 뽀뽀바를, 구도균은 권지숙과 함께 엘라나의 하인 루까를 연기한다.
 
이날의 리허설은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냈다.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윽박지르면서도 어딘지 순박해 보이는 채권자, 갚을 돈이 없다고 당당하게 소리치는 매력적인 여인, 틈틈이 두 사람을 가르며 나타나는 착한 하인 등 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호흡이 차지게 맞물리며 빠른 흐름으로 극을 이끌었다.
 
신기한 것은, 사납게 다투던 두 남녀가 잠시 후 사랑에 빠진다는 이 황당한 전개가 너무도 설득력 있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극이 진행되는 내내 따스한 인간미와 유쾌함이 무대에 넘친다. 이것은 거장 체홉이 가진 힘일 것이다. 맨씨어터의 대표로서 연출가 겸 배우로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우현주는 “체홉 선생님의 작품에 한 번이라도 참여했던 배우나 스텝은 그 경험이 워낙 특별해 마치 체홉과 특별한 관계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인간을 담아내는 체홉의 그릇이 워낙 크고 넓다 보니 개개인의 세계가 그 안에 모두 담기고, 모든 접근이 다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는 맨씨어터가 <14인 체홉>을 10주년 기념공연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곰>뿐 아니라 다른 세 작품도 연말 객석에 웃음과 온기를 담뿍 전할 예정이다. 심약한 남자가 예비 신부의 집에 찾아가며 벌어지는 헤프닝을 담은 <청혼>, 소심한 남편이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자선 강연을 하면서 털어놓는 속내를 담은 모노드라마 <담배의 해로움에 대하여>, 사랑에 빠진 남녀를 통해 결혼생활의 공허한 이면을 들춰내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등이다.
 
10년간 긴밀한 호흡을 다져온 맨씨어터 소속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앞서 언급한 배우들 외에도 김태훈, 이창훈, 박기덕, 이은, 하현지가 출연한다. 우현주 대표는 “넓지는 않지만 대극장의 기운을 가진 공연장에 맞춰 전보다 연극적 장치를 더 강화했다”고 귀띔하며 “연말에 보시기에 참 따뜻하고 즐거운 공연이 될 것 같다. 특히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이전에 하지 않았던 작품이고, 나머지 세 작품과는 완전히 스타일이 다른 작품이라서 마음을 열고 즐기시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공연은 오는 12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달 간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공연

#다른 콘텐츠 보기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