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력 갑! 김선영 "10년 간 바뀐 게 없는 사회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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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응답하라 1988>의 선우 엄마 김선영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어린 딸 진주와 듬직한 아들 선우를 홀로 키우며 흥도 눈물도 많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녀를 보고 많은 이들이 웃고 또 함께 울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절절함 가득, 절실함 넘실대는 깊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지만 그녀의 진면목이 폭발하는 곳은 당연, 연극이다.

그녀가 3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는 소식이 반갑다. <뷰티퀸> <전명출 평전> <홍준씨는 파라오다> 등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로 배우로서 탄탄한 뿌리를 내리고 굵은 가지를 뻗어오던 그는,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경남 창녕군 길곡면>의 선미가 다시 될 참이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마트 계산원과 운전수로 일하며 가정을 꾸려가고 있던 한 부부가 예상치 못한 임신을 통해 그간 '제법 괜찮다'고 자위하던 자신들 삶의 처참함과 마주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 깊은 공감과 탄식, 때론 분노로 객석과 소통해온 이 작품을 10년 전 초연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놓지 않은 이유, 그리고 더더욱 삶이 힘겨워지는 우리들의, 노동자들의 퍽퍽한 삶을 반추하는 이 작품의 힘을 그녀는 또박또박, 열렬히 이야기했다.
 
3년 만의 연극 무대, 조바심과 믿음 사이에서  
 
3년 만에 다시 서는 연극 무대에요.
계속 드라마, 영화를 했는데 제가 좀 알려졌을 때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싶은 것도 있었고 경제적인 것도 키워야 했고. 예수정 선생님, 제가 제일 존경하는 선생님인데, 전화를 드렸어요. “선생님, 저 1년에 한 편은 연극 할 거에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괜찮아, 선영아. 연극이 너를 기다려줄 거야. 나도 예전에 (방송, 영화 등의) 섭외 다 컷트했는데 오히려 더 기회가 줄어들고. 지나 보니 그렇게 조급해 할 문제가 아니더라. 네가 연극을 안 할 것도 아니고.” 처음엔 저도 꼭 1년에 한 번은 해야겠다, 막연히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그 통화 후에 좀 기다리게 됐죠. 좋은 작품으로 서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그 좋은 작품이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었군요. 2008년 초연부터 꾸준히 서고 계세요.
내년이 초연한 지 10년이죠. 워낙에 좋은 작품이고. 이건 나이 들면 할 수가 없어요. (극 중에서) 임신해야 하고 하니까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어요. 그래서 너무 아쉬워요. 이제 다른 사람에게 물려 줘야죠.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연습장면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세요?
우리가 여러 작품들을 보고 골랐는데 딱 오는 건 없었지만 그 중에 괜찮겠다, 싶은 작품이었어요. (원작 배경인) 독일이 워낙 건조하니까. 그런데 막상 한국 사람들이 사는 걸로 각색하는 작업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돈 계산이라든지, 삶의 저변적인 것들이요. 그러면서 되게 치밀하게 세상에 대해서, 부부들이 살아가는 현실, 마트에서 일하는 둘의 삶에 대해 계속 얘기했어요. 당시엔 그들의 삶 보다 제가 더 가난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선택한 가난이고. 그들은 그들의 최대한의 노동력을 제공하는데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아이를 낳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공부하고 체화하면서, 아, 이런 질문은 (세상에) 던져 놔야 하는 거구나, 깨달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이걸 다시 하는데, 너무 화가 나는 거에요. 초연 한 지 10년인데, 10년 동안 집 값은 더 올랐고 임금은 오르지 않았어요. 더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극 중에서 이들의 월급을 가지고 돈 계산 하는 장면이 나와요. 몇 만원은 공과금 내고, 몇 만원은 기저귀 사고, 그러고 얼마 돈이 남아야 하는데, 돈이 안 남아. 마이너스에요. 완전 비극인거죠.
 
50년 전 독일, 10년 전 한국, 그리고 지금
노동자의 삶 달라지지 않아 비극적
 
원작인 <오버외스터라이히>는 1972년 독일에서 초연했어요. 45년 후인 지금, 그리고 배경도 다른 한국에서도 여전히 설득력 있는 작품이 되고 있고요.
50년 전 독일의 상황과 지금의 우리가 다를 바 없다는 게 완전히 비극이죠. 정체도 아름다운 정체면 문제가 아니에요. 노동이라는 것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 필수요소, 어쩌면 전부일 수 있어요. 1%를 제외하곤 다 노동을 하잖아요. 복지나 사회보장제도나, 사회가 얼만큼 노동자들의 삶에 기반이 되고 있느냐를 볼 때 50년 전 보다 더 나아져야 하잖아요. 제가 계속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차관이라도 와서 (이 공연을) 봐야 한다고, 어떻게 좀 해 보라고 해요. 입법부가 봐야 하지 않는가. 감정적으로 싸울 게 아니라 법의 문제니까요. 법을 바꿔야죠.
 
관람의 즐거움 외에 연극이 갖는 기능이 있지요.
무엇을 ‘안다’라는 것, 아픈 것을 아는 것도 기쁨이죠. 아픈 곳을 꺼내서 창으로 찌르자는 게 아니라, 무엇이 진실인지 알자는 거잖아요. 그걸 알면 너무 좌절하게 되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게 되고, 그게 아니라 진실을 기성세대가 직시하는 모습이 희망인 거에요. 그것이 기쁨이고 창조죠.
 
맡으신 ‘박선미’는 어떤 인물인가요.
1막 내내, 아이가 생기기 전에 보여주는 건 선미와 종철의 삶, 노동자의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거에요. 선미와 종철의 너의 꿈, 나의 꿈, 너의 성향, 나의 성향에 대해 나오지만, 그 바탕에는 그들의 경제적인 상황이 비춰지는 거죠. 선미는 비가 오는 창밖을 보기 좋아하고, 그런 좀 더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캐릭터지만, 결국 선미는 누구여도 상관 없어요. 선미의 얘기가 아니라 모든 선미들의 얘기가 바로 이 작품이에요.
 
남편 이종철 역의 배우 이주원도 초연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우리 남편(이승원 감독)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그 영화에서 3년 만에 저랑 붙는 장면이 있었어요. 리딩 한 두 번 하고 리허설 한 번 하고 붙어봤는데 파바박! 뭔가 화학 작용이 일어나는 거에요. 와, 그 때 느꼈죠. 외국에선 어떤 역을 맡으면 평생 그 상대와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는게 꿈이 됐어요. 나와 신뢰가 있는, 호흡을 읽을 수 있는 배우와 하는 게 엄청난 매력이 있구나, 느꼈죠.
주원이는 안 지 10년이 넘었으니까. 그렇게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배우와 같이 작품을 한다는 건 영광이고 나에게도 엄청난 시너지죠. 그런 배우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한 열 다섯 명 정도. (웃음)

이번 연극에서 임신한 예비 엄마로 등장하지만,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엄마’ 역을 유독 많이 맡으셨어요.
응팔(응답하라 1998) 했으니까? (웃음) 드라마는 아무래도 급박하게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고, 그래서 만들어진 이미지로 가는 게 편하죠. 그런데 그게 나중에는 독이 되죠. 저 배우 똑같은 거 하네. 제가 김혜자 선생님이 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소모가 될 거고. 그래도 나름 소속사나 제 입장에서는 뭔가 탈피하는 걸 많이 했어요.
 
그래도 고민이 많아요. 그 고민의 방향이 하루하루 다르죠. 어떤 날은 시켜줄 때 열심히 하자, 그러다 어느 날은 ‘난 엄마만 하게 되는 건가’,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많이 두려워하진 않아요.
 
 
나누고 베푸는 극단 운영하기도
정우성, 내년 공연 지원 나서

나누고 베푸는, 극단 ‘나베’의 대표이기도 하시죠.
제가 지었어요, 유치하지만. (웃음) 여건이 되니까 하는 건데, 그 여건이라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겠죠. 최소한의 경제적인 여유, 그리고 삶의 철학도요. 내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월세를 살 것인가 집을 살 것인가, 내가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 그 여건이라는 것은 계속 변하는데, 저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겠다, 하는 거죠. 글을 쓰고 만드는 사람이 내 남편이니까, 사람에 대한 인프라가 가능하니까 극단을 꾸리는 것도 있어요. 남편도 연극을 10년 가까이 했으니 자기 배우들이 있고 저도 같이 했던 배우들이 있고요.
 
극단 나베 <모럴 패밀리> 관람 후 인증샷을 남긴 정우성 (출처:정우성 인스타그램)

정우성 선배가 우리 극단 공연을 너무 잘 봤어요. 그래서 내년 3월에 드림시어터에서 다시 공연하는데 100% 스폰 대관을 해 주기로 했어요. 이런 활동이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어떤 문화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아마도 그 활동의 첫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해요.
 
극 중 부부의 재미있고 찰진 대사, 경상도 사투리는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같아요. 오랜 팬도 있지만 이 작품의 첫 관객이 될 분들께 한 마디 남긴다면요.
원본 독일 희곡에 그게 있어요, ‘반드시 사투리를 써야 한다’. 독일 수도에 살고 있지만 반드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된 거고, 우리 둘 다 (이주원, 김선영) 경상도 사람이니까. (웃음)

무엇보다 한 부부의 삶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신혼부부의 삶을 몰래, 그렇지만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죠. (웃음) 연극이 갖고 있는 선한 영향력이 이 작품에 정확히 있고, 저 뿐 아니라 주인영이라는 배우도 연극계에서는 저보다 훨씬 수려한 작품을 해온, 정말 좋은 배우잖아요. 무대는 배우 예술이에요. 좋은 배우들이 연극의 가치를 확실히 구현해 내는 작품이니 오셔서 보시고 생각하시고 우리와 함께 손 잡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삶 안에 예술은 반드시 있어야 하니까요. 반드시, 공기처럼.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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