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VS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원작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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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막 찻간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한 번 더 그녀를 보고픈 참기 어려운 욕구를 느꼈다. 그녀가 굉장한 미인이었기 때문도 아니고, 또 그녀의 자태에서 느껴지는 조촐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그의 옆을 지나쳤을 때 그 귀염성 있는 얼굴에서 뭔가 유달리 정답고 부드러운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돌아다보았을 때 그녀 또한 고개를 돌렸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 중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가 처음 만나는 장면의 문장이다. ‘러시아 문학의 거장’ 톨스토이가 1877년 발표한 이 소설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일에는 이를 무대화한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막을 올렸다. 흔히 ‘한 귀부인의 비극적인 사랑(혹은 불륜)’으로 알고 있는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원작을 바탕으로 작품을 더 깊이 즐길 수 있는 내용을 정리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어떤 이야기?
짧게 압축하면 <안나 카레니나>의 줄거리는 ‘한 귀부인의 비극적인 사랑’이 맞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은 훨씬 더 풍성한 서사를 담고 있다. 소설은 안나 카레니나의 오빠 스테판 공작의 집안 풍경을 비추며 시작한다.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우다 들킨 스테판은 아내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다 여동생에게 도움을 청한다. 오빠의 편지를 받고 달려온 안나는 올케를 다독여 부부를 화해시키지만, 정작 자신은 젊은 백작 브론스키와 서로 첫 눈에 반하고 만다.
 
또 다른 주요 인물은 스테판의 처제 키티와 신중하고 내성적인 귀족 레빈이다.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받지만, 내심 브론스키의 청혼을 기다리던 터라 레빈의 청혼을 거절한다. 좌절한 레빈은 시골에 틀어박히고, 키티 역시 브론스키가 안나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아 병을 앓는다.
 
이후 인물들의 관계는 각기 다르게 변한다. 안나는 남편에게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고백하고 집을 나온다. 시간이 흘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레빈과 키티는 마침내 결혼하고, 안나의 올케 돌리는 자신의 공허한 결혼생활에 슬픔을 느낀다. 한편 브론스키의 딸을 낳은 안나는 사교계로부터의 소외와 비난, 식어가는 브론스키의 사랑에 절망해 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
 
 <안나 카레니나>는 왜 걸작일까? 
▲ 0.1초 단위로 섬세하게 포착한 사랑의 순간들
톨스토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탄생하고 마침내 소멸에 이르기까지 미묘하게 변해가는 감정을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아주 짧은 순간 스쳐가는 눈빛에서 탄생하는 사랑, 이후 환희에서 공포로, 절망으로, 다시 또 기쁨으로 흐르고 이어지는 온갖 감정을 세밀화처럼 촘촘히 묘사해낸 거장의 솜씨가 감탄을 자아낸다.
 
▲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묻다  
톨스토이는 안나와 주변인물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교차해 보여주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남편을 용서했으나 공허한 결혼생활에 지쳐가는 돌리, 안나를 조롱하며 남몰래 혼외정사를 즐기는 귀부인들, 갈등을 겪으면서도 깊은 사랑을 쌓아가는 레빈과 키티 부부의 모습은 도덕적 잣대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랑의 이면을 보여준다.  
 
▲ 생생하게 펼쳐지는 당대 러시아의 사회상  
<안나 카레니나>가 담아낸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톨스토이는 총 1,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소설 곳곳에서 예술과 신앙, 경제와 철학, 교육과 정치 등 다양한 화두를 다룬다. 선거에 참여한 모스크바 귀족들의 복잡한 정치공학이나 러시아 지방의회의 역할, 공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을 몇 장에 걸쳐 보여주는 식이다. (이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이 쉽지 않다.) 이 장면들은 당대 러시아 사회의 특수성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모순과 고민을 담고 있다.  
 
알고 보면 더 공감되는 캐릭터 이야기  
안나의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안나는 겉보기에 남부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남편 카레닌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고아로 자란 카레닌은 정치적 야심이 꺾일 위기에 처하자 철저히 실리적인 이유에서 안나에게 청혼했고, 안나도 친척의 권유로 결혼에 응했다. 그녀에게 브론스키는 처음으로 진짜 ‘사랑’을 느낀 남자였던 것이다.   
 
▲ 안나는 왜 브론스키와 재혼하지 않았을까?  
안나가 마음만 먹었다면 카레닌과 이혼하고 브론스키와 정식으로 재혼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법적 부부’가 되었다면 사교계에서 ‘왕따’가 되지도, 자살을 결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나는 카레닌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세료자’에 대한 모성애 때문에 망설이다 이혼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훗날 그가 카레닌에게 이혼을 요청했을 때, 이미 카레닌은 모욕감 때문에 마음을 바꾼 뒤였다.
 
▲ 브론스키는 얼마나 부자일까?  
안나를 처음 만났을 무렵 군인이었던 브론스키는 안나와 함께 살게 되면서 연대를 나온다. 이후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과 재산을 기반으로 화려한 생활을 해나간다. 그 재산의 규모는 정확히 언급되지 않지만, 자선을 위해 병원을 짓는 것을 보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선 병원도 일시적인 관심사였을 뿐, 브론스키는 여행, 미술, 사냥 등으로 끊임없이 취미를 바꾼다. 그의 변덕스런 모습은 불로소득을 기반으로 했던 귀족 생활의 공허한 일면을 비춘다. 안나의 생활 역시 이처럼 무료했기 때문에, 사교계로부터의 단절이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  카레닌은 어떻게 되었을까?
공직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다가 안나의 외도와 가출로 큰 충격을 받은 카레닌은 이후 마음이 약해져 평소 친했던 백작부인과 그녀가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이비 선지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안나가 죽은 이후 그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데려다 키운다.
 
▲ 레빈과 톨스토이의 관계는?  
주인공은 ‘안나 카레니나’이지만, 등장인물들 중 작가의 분신으로 알려진 캐릭터는 레빈이다. 화려한 도시생활을 하는 브론스키와 달리 시골에서 직접 밭일을 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나가며 철학적 사유를 해나가는 레빈의 모습이 작가의 삶을 반영한 것이라고. 계속해서 삶의 의미를 탐구할 뿐 아니라 땀흘려 일하는 농민들을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는 레빈은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이제야 내 삶은, 내 온 삶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할 것이다”라고 중얼거린다. 이 순간 그가 얻은 깨달음에는 톨스토이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 담겨 있다.  

* 참고 및 인용 - <안나 카레니나>(문학동네, 박형규 옮김, 2010) 
 
글/구성 :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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