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 배우를 주목해!] 연극·뮤지컬 배우 김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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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깊은, 조곤조곤한, 차분한, 균형감각’ [2018년 이 배우를 주목해!] 시리즈의 세 번째 주인공 김바다 배우를 인터뷰하며 받은 인상이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그의 이야기는 굽이굽이 많은 주제를 넘나들며 꽤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런 방식이 부산스럽다거나, 초점을 놓치고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 곳곳에는 깊은 고민의 흔적이 있었고, 한 발짝 물러나 조망해보면 그 모든 것은 한 지점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더욱 깊이 자신을 알아가는 것, ‘삶’과 ‘연기’의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다.
 
김바다는 2015년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로 데뷔해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데뷔 4년째를 맞았다. 지난해 연극 <오펀스>로 두각을 나타낸 후 인기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출연했고, 최근작 <카라마조프>에서는 전과는 전혀 다른 어둡고 불안한 모습으로 인상을 남겼다. 차기작 <트레인스포팅>에서는 또다시 “아주 다른 결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예고한,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주목되는 김바다와의 인터뷰.
 
자기소개.
이름은 김바다, 법적 본명입니다. 성남 분당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의정부에 살고 있어요. 올해로 서른 한 살(1988년생)이 됐고요.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
초·중·고등학교 때는 그냥 평범한 애였어요. 엄청난 모범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큰 사고를 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늘 ‘왜 살지? 왜 공부를 해야 하지?’가 궁금했어요. 왜 공부를 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야 하는지, 그게 정말 행복한 건지. 몇몇 선생님들에게 물어봤지만 답을 얻진 못했죠. 그래서 혼자 많이 생각했어요.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창 밖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뭘 할까, 어디로 가는 걸까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너무 궁금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공연 티켓이 생겼다고 해서 따라갔어요. 뮤지컬이었는데, 공연이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배우들의 눈빛이 제가 그때까지 봤던 사람들과 좀 다른 거에요. 반짝반짝 살아있었고, 자신들이 원해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 후에도 계속 그 눈빛이 생각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가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저랑 형을 연주회에 많이 데리고 다니셨어요. 어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악기나 음악, 예술 쪽에 관심이 있었고, 그런 것이 (연기와도) 맞물렸던 것 같아요. 그곳이 과연 어떤 세상인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혼자 알아보면서 고민을 하다가 부모님께 그 쪽을 준비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처음엔 완강히 반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웃음) 허락을 받았죠.  
 
입시생활.
고3 지나고 재수를 했어요. 처음엔 호기심으로 (연기에) 발을 들였다면, 그때 연기학원에서 만난 선생님 때문에 정말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 분이 저의 롤모델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저를 솔직히 표현하는 걸 두려워했어요. 남 앞에서 울거나 힘들다는 얘기를 한 적도 없고, 그래서 차가워 보인다는 말도 들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니까 더 참고 표현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선생님은 그런 부분을 제가 느끼기에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깨뜨려 주셨어요. 사람 대 사람으로 저를 진솔하게 대해 주셨고, 때로는 쓴 소리도 해주셨고, 절 기다려 주셨어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모두 아름다워 보였어요.
 
그분 덕분에 일단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고, 그 사람을 연기할 수 있겠어요. 그 때 처음으로 연기의 기초적인 자세, 마인드를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아요.
 
배우가 된 후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은.
물론 10년 전에 비해선 나에 대해 많이 알게 됐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지금 서른 한 살의 제가 생각하는 건 조금이라도 ‘척’하지 말자는 거에요. 너무 기쁜데 참지도 말고, 너무 버겁고 힘든데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도 말고. 그런 ‘척’을 조금씩 줄이다 보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나다워지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단단해져야 돼, 이겨내야 돼, 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마치 루저인 것처럼. 근데 누구나 각자의 길이 있는 거잖아요. 물론 시종일관 부정적인 건 좋지 않지만, “난 이걸 이겨내야 해”라는 생각 때문에 그 순간 느끼는 상실감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순간엔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그 이후에 조금씩 단단해지면 좋을 것 같아요.
 
학창시절 가장 감동받았던 인생작.
영화 <빌리 엘리어트>. (컴퓨터) 화면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어요. 최근에도 뮤지컬을 너무 감명 깊게 봤어요. 작년 초에 런던, 파리로 2주간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여행을 결심한 것도 그 작품 때문이었어요. 되게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전 표현이 서툰 아이였어요. 빌리도 속으로는 발레를 하고 싶어하면서 “이런 건 여자애들이나 하는 거잖아, 난 안 해”라고 말하잖아요. 그리고 집에 가서 혼자 춤을 추고. 그런 모습에 되게 공감이 됐어요. 빌리가 체육관에서 발레로 아버지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도 너무 좋았고.
 
데뷔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매 작품마다 다른 이유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행히 다른 좋은 순간들 때문에 시소 타듯이 왔다 갔다 하면서 여태까지 잘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잘 까먹어서(웃음). 자고 일어나면 잘 까먹거든요. 그런 면에선 제가 좀 단순하더라고요.
 
최근에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좋아하는 일 하니까 행복하지 않냐고 근데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예전에 김연아 씨 인터뷰 중에서 되게 인상적이었던 게, 금메달 딴 직후 기분 좋지 않냐는 질문에 “아까 메달 받을 때 5초 정도 좋았다, 근데 지금 다시 연습하러 간다”고 대답한 거였어요(웃음). 실수 없이 연기를 하고 박수 받을 때는 좋지만, 오히려 고통스러운 순간이 더 많다는 거에요. 근데 그게 너무 현실적인 답변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잖아요. 오히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좀 버리면 더 행복할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최종 목표.
저는 배우를 오래 하고 싶어요. 배우가 제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배우를 할 수 있음에 되게 감사해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배우가 되면 너무 좋겠죠. 그리고 제 연기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기였으면 해요.
 
그런데 요즘 점점 느끼는 건, ‘배우 김바다’라는 영역이 소중하고 감사한 만큼 ‘사람 김바다’의 영역도 너무 소중하다는 거에요. 그 두 영역이 함께 잘 있어야 배우로서 더 즐겁고 깊이 있게, 고통도 버텨 가면서 잘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를 하기 위한 너무나도 좋은 장작과 재료가 삶에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배우가 되려면 우선 좋은 사람이 돼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 김바다’ 외의 영역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이 뭔지를 생각해요. 조심해야 하는 게, 배우는 다양한 직업과 사람을 연기해야 하는데 늘 비슷한 계통의 사람들만 만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그냥 ‘이럴 것 같아’하고 연기할 수도 있잖아요. 또 너무 이 일에만 몰입하다 보면 여기에서 오는 데미지가 너무 크잖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이게 마치 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웬만하면 여행도 많이 가고, 책도 많이 보려고 해요. 여행을 가서 가장 많이 하는 것도 사람들 구경이고요. 배우로서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엊그제도 혼자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예전엔 모르는 사람들과 말을 잘 못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짧은 만남으로 제가 그 분들의 인생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아주 일부분만 듣는 것만으로도 어떤 환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나를 자극하는 것들, 열어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해나가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꿈 같은 일이지만, 언젠가 다른 나라에 가서 6개월에서 1년 정도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요. 가능할까 모르겠네요(웃음).
 
최근 읽었던 책.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이에요. 동료 배우가 빌려줘서 읽고 있는데 소설이에요. 장르는 안 가리고 읽어요. 근데 자기계발서는 좀 꺼려지더라고요. 왜냐면 그 사람 인생에서 겪은 것들을 마치 정답처럼 얘기하는 것 같아서 좀 불편하더라고요. 물론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공연계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
너무 많아요. 절 데뷔시켜준 김태형 연출님도 진짜 은인같이 감사한 분이에요. 배우들 중에도 고민이 생기거나 할 때 술 한잔 할 수 있는 분들이 있고. <오펀스>를 같이 했던 형들과도 얼마 전에 조촐하게 술자리를 가졌거든요. 그런 인연도 참 소중하고 감사하죠. 가장 최근에는 <카라마조프>의 박소영 연출님이었던 것 같아요. 공동연출을 하신 허연정 연출님은 리딩작업을 같이 해서 얼마나 좋은 분인지 알고 있었는데, 박소영 연출님과는 첫 작업이었거든요.
 
<카라마조프>의 ‘스메르’라는 역할이 제겐 너무 어려웠어요. 전 살인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갖고 있지만 그걸 참고 이겨내는 방향으로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학대받았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이, 또 관객들이 스메르를 보고 공감하게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거에요. 작가가 쓴 결말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아니라, 배우로서 스메르를 어느 수위로 연기해야 관객들에게 적당한 불편함을 주면서 작품에 담긴 주제를 고민해보게 할 수 있을지가 어려웠어요. 평생을 학대받은 스메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도. 제가 몇 달의 연습 동안 그 마음을 어떻게 다 가늠할 수 있겠어요.
 
한 인물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혼돈과 고통, 특히 외로움은 배우의 숙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그 사람의 상처를 마치 기도하듯이 들여다보는 것. 그게 어떻게 보면 배우의 특권이지만, 하면 할수록 굉장히 어렵고 외로워요. 근데 박소영 연출님은 그 과정을 함께 해주셨어요. 제가 고민할 때 옆에 있어 주셨고, 항상 제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래서 <카라마조프>가 어둡고 심오한 주제를 다룬 작품인데도 그에 비해서 되게 즐겁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차기작.
연극 <트레인스포팅>이에요.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것 같아요. <카라마조프>의 스메르도 제가 여태까지 했던 인물들과는 좀 색다른 모습이었지만, 이번에는 세고 거칠기도 한, 아주 다른 결의 모습을 보여드릴 것 같아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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