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청·악랄 오가는 '천의 얼굴' 황정민, 연극 <리차드3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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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정웅인, 김여진 등의 무대 복귀로 화제에 올랐던 연극 <리차드3세>가 지난 6일 개막했다. 권모술수에 능했던 ‘꼽추왕’ 리차드3세의 이야기, 셰익스피어가 남긴 이 희곡을 <메피스토><더 코러스-오이디푸스> 등의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 이럴 줄 알았어

‘연기 구멍’이 없다. 황정민은 압도적인 대사량을 치밀하게 소화해 시시각각 능청과 악랄, 분노와 음흉을 오가며 그야말로 무대를 장악했다. 열등감에 악이 깃들어 폭주하는 모습이 어찌나 입체적인지 끝없는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연민이 느껴질 정도다.
 
오랜만에 연극에 출연한 정웅인은 피로에 젖은 왕 에드워드4세로, 김여진은 아들들을 잃고 애끓는 목소리로 리차드3세를 저주하는 엘리자베스 왕비로 완연히 분해 팽팽한 호흡을 주고받았고, 괴괴한 목소리로 “피로 얻은 것은 피로 잃고 말 것이다!”라고 저주를 외치는 마가렛 왕비 역 정은혜를 비롯해 모든 배우가 분명한 존재감으로 빈틈없는 무대를 완성했다.
 
의외인 걸?
묵직한 공연인 줄만 알았는데 웬걸, 의외로 웃음이 빵빵 터진다. 겉으론 어리숙한 척, 뒤로는 눈을 번뜩이며 사람들을 조종하는 리차드3세는 물론, 그의 눈치를 보다 바짝 엎드려 왕이 되어달라고 청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왁자한 웃음을 끌어냈다. “고구마를 100개 삶아 먹은 듯 답답하다” 등의 유행어도 적절히 녹아들어 경쾌함을 더했다.
 
1인 다역을 맡은 배우들의 변신도 쏠쏠한 재미다. 특히 김병희의 변신이 도드라졌는데, 그는 리차드3세에게 처참하게 맞아 죽은 후(헤이스팅스 총리 역) 충직한 암살자로 재등장해 독특하고 어눌한 말투로 웃음을 자아냈다. 아역 배우들의 천진하고도 의젓한 연기도 예상치 못한 웃음 포인트.
 
눈여겨 보자
비극성을 더하는 장엄한 음악을 비롯해 무대, 영상에도 눈여겨볼 지점이 많다. 앙상한 철제 구조물과 단출한 조명으로 이뤄진 무대는 뒤편 스크린에 투사되는 중세의 성벽, 죽은 자들의 시체 등과 어울려 음울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특히 무대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깊이와 입체감을 더해가는데, 계단식 무대의 위층 왕좌에 앉아있던 리차드3세가 마지막에 무대 아래로 푹 떨어지는 모습은 그의 정신적, 육체적 몰락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서슴없이 악행을 저지르다 꿈에서 죽은 혼들을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그의 심경 변화가 다소 급작스러웠으나, 인상적인 무대 활용이 이를 상쇄했다.
 
+ 황정민은 커튼콜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깊게 트인 무대 뒤쪽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오다 차차 허리를 펴고 배우 황정민으로 객석 앞에 서는 그의 모습은 많은 관객들의 머릿속에 남을 것이다.
 
연극 <리차드3세>는 오는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샘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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