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극인들이 바라본 우리 시대 문제는?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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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고연옥 작가 등 우리 세대의 연극인들은 주로 거대 담론을 많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번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에 참여한 젊은 작가들은 그보다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을 통해서 또 다른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서울시극단 김광보 예술감독의 말이다. 서울시극단은 신진 예술인 양성 프로그램 ‘창작플랫폼-희곡작가’를 통해 발굴한 젊은 연극인들의 작품 네 편을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이라는 주제로 묶어 내달 중순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선보인다. 김경민 작가의 <너와 피아노>, 이보람 작가의 <네가 있던 풍경>, 김아로미 작가의 <나의 엘레닌>, 그리고 송경화 작가의 <체체파리> 등이다.
 
서울시극단은 이와 관련해 26일 제작발표회를 열고 <너와 피아노><나의 엘레닌>의 주요 장면 낭독회와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억압, 인간의 존엄성 등 각기 다른 주제를 담은 젊은 연극인들의 작품이 기대를 모았다.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의 첫 번째 작품은 김경민이 쓰고 김수희(극단 미인 대표)가 연출하는 <너와 피아노>(3.15~18)다. 이 연극은 비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학생 윤슬과 그를 혹독하게 지도하는 피아노 교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교사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윤슬이 배관공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사제 간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작품과 관련해 “선택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운을 뗀 김경민 작가는 “초고를 2015년에 썼는데, 그 때만해도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편협하게 비춰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번에 김수희 연출과 작업하며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됐다”며 ‘개인의 욕망’이라는 화두를 보다 솔직하게 담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아로미 작가가 쓰고 민새롬(극단 청년단 대표)이 연출하는 <나의 엘레닌>(3.22~25)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던 학생 승율과 과학교사가 지구로 돌진해오는 혜성 엘레닌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인간과 시대의 본질을 묻는다.
 
세 번째 작품은 송경화(극단 낭만유랑단 대표)가 작/연출한 <체체파리>(3.29~4.1)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애환과 인간성이 사라지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춘다. 송경화 작가는 “우리는 여전히 OECD 자살률 1위 국가다. 무엇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질문하다 보니 인간 존재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염원하며 작업 중”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를 <네가 있던 풍경>(4.5~8)은 이보람 작가가 쓰고 이은영(극단 어소사이어티 대표)이 연출하는 작품으로, 교생 실습 중인 주인공에게 집단 따돌림으로 자살한 친구 영훈의 어머니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보람 작가는 이와 관련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분위기는 잠시 무겁게 가라앉기도 했다. 최근 공연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투운동’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광보 예술감독은 “매일매일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황”이라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혹자는 연극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연극이 이번 계기로 리셋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하며 직접 미투운동에 나섰던 김수희 연출도 “연극계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문제가 터진 것이고, 그 중 가장 취약했던 사회문화계가 거기 반응하는 것이다. 결국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수희 연출은 “20대에는 연극을 하면서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많았는데, 40대가 되니 내가 아니라 다른 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얘기를 꺼내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이번 한 작품(<너와 피아노>)에 그런 생각을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이 모든 사안에 어떻게 대처하고 나아가야할지 다른 연극인들, 관객들과 함께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글/구성: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세종문화회관 홍보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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