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만큼은 자유롭게 <네버 더 시너> 이율 & 정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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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유괴 살인사건이라는 무겁고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네버 더 시너>에 출연 중인 이율 정욱진. 이 작품에서 두 배우는 리차드 롭이라는 악인으로 나온다. 능수능란하게 무대를 활보하는 고양이 같은 이율의 롭과 밝고 건강한 느낌의 정욱진에게서 나오는 섬뜩한 롭을 보고 있자니, 역시 배우는 무대에서 가장 멋지고 자유로운 존재임을 느꼈다. 같은 역할이라 한 무대에서 볼 경우가 없는 두 배우를 플레이디비가 함께 만났다. 프레스콜 이후로 오랜만에 본다는 두 배우는 친근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능숙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쓰릴 미>라는 공통점
<네버 더 시너>에 좋은 영향 끼쳐


인터뷰 당일, 이율은 약속한 시간보다  2시간 먼저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이렇게 낮에 나올 일이 없어서, 서둘렀어요. 공연 스케줄 빼고는 집에서 잘 나가지 않거든요. 인터뷰 때문에 오랜만에 여행 같은 외출을 했어요.”
 
또 다른 리차드 롭 역의 정욱진은 생글생글 웃으며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다. 살뜰히 선배의 안부를 묻고, 이내 현장을 유쾌하게 만든다. “형이랑 같은 역할이라, 연습과 프레스콜 이후로는 만날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좋은데요.”
 
이제 개막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네버 더 시너>는 1924년 미국 시카고에서 실제 일어났던 아동 유괴 살인사건을 소재로 검사와 변호사의 법정 공방을 다루고 있다. 공연 마니아들의 관심작인 뮤지컬 <쓰릴 미>와 같은 소재를 사용한 작품이라서 개막 전 부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둘을 한 자리에 만난 것은 <네버 더 시너>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뮤지컬 <쓰릴 미>에 출연했다’라는 공통점이 있어서다. 이율은 2007년 <쓰릴 미> 초연 때 그(리차드 롭)로 데뷔해 신인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정욱진 또한 2014년 시즌에 나(네이슨 레오폴드) 역으로 데뷔하여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두 배우 모두 “<쓰릴 미>의 경험이 <네버 더 시너>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여러 배우와 함께해
시너지 효과 기대돼


“대단해요. 형은 <쓰릴 미> 초연으로 데뷔한 거잖아요?”라며 놀란 눈을 하는 정욱진은 “형은 대한민국 오리지날 리차드네요”라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수줍은 미소를 짓는 이율은 “로또 맞은 것처럼 감사하게도 <쓰릴 미>로 데뷔했어요. 부족하지만 큰 배역을 주셔서 참여할 수 있었죠. 아마 평생을 두고 제일 힘들게 한 작품으로 남을 거예요. 힘들지만 얻은 것도 제일 많은 작품이에요”라고 말했다. 두 작품은 소재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장르의 다른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는 “<네버 더 시너>는 우리나라 초연인데 어떤 작품이 될까? 개인적으로 궁금했어요. 그리고 레오폴드와 롭 외에도 변호사, 검사, 기자들이 나오니까 여러 배우와 함께 하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가 됐고요.”
 
“<네버 더 시너>를 통해 오랜만에 무대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라는 이율은 “연습 때 연출의 주도 하에 전체 배우들이 모여서 번역 작업을 2주 정도 함께 했어요. 원작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견을 냈던 테이블 작업이 연습 초반에는 좀 어려웠는데, 그런 경험이 쌓이고 보니 실제 무대에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네버 더 시너>
생각의 시야가 넓어지는 작품


<쓰릴 미>에 세 시즌 연속으로 출연한 경험이 있는 정욱진은 “매 시즌 작품을 끝날 때마다 다음번에는 롭 역으로 참여하고 싶다 라고 제작사에 이야기를 했어요. 이번에 (저희 그런 바람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네버 더 시너>에 롭 역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행복감을 표했다.
 
정욱진은 “저는 2014년도 시즌에 처음으로 <쓰릴 미>에 참여했어요. 그때 당시도 굉장히 인기 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부담이 컸어요. 그때 기억은 제가 양복을 입으면 어색하고 어깨도 아파서 잘 안 입거든요. 지금도 개인 양복이 없는데, 지금 무대에서 다시 쫙 빠진 양복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자니, 많이 큰 것 같아요”라며 자신에게 변화를 느낀다고.
 
정욱진은 연습하면서 살인 사건의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선배들과 연습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들었던 의문을 많이 해소했다고. “거의 100년 전에 외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그런 점들이 처음 이 사건이 소개됐던 십 년 전 만큼 지금의 우리 관객들에게 흥미로운 소재일까? 제 나름대로 걱정이 됐어요. 하지만 연습을 하다 보니까 '다른 색깔의 작품이고,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공연 중이라 조심스럽지만, “레오폴트와 리차드에 대해 각자 생각해본 판결이 있냐”고 물어보자, 이율은 “작품은 열려 있어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끝나는데요. 저희의 역할은 죽이지 말아 달라는 입장이고요.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방어하고 있어요"라고 운을 뗀다.  그는 "개인적으로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는 사형제 찬성에 대한 입장이었어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주의였는데, 이 작품을 만나면서 결론을 못 내리겠더라고요. 작품이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저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하게 되고, 큰 숙제가 됐어요"라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정욱진은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하기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쁜 짓 하면 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일 큰 복수는 용서라는 말도 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도 풀리지 않는 감정이기 때문에, 정말 형 말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통해 생각의 시야가 넓어졌지만, 혼란스러워요"라며 힘주어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아이 같은 롭
레오폴드 역할의 배우마다 느낌 달라


롭은 어떤 인물일까?, 어쩌다 그들은 그런 결말을 맞이해야 했을까? “롭은 순간에 충실했던 것 같아요. 순간순간이 너무 흥미로운 거예요. 호기심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살인까지 저지르고요.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아이 같은 면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지 않고서는 사이코패스나 살인범으로밖에 안 보이니까요. 그러면 마지막에 그들을 변호하는 대로우 변호사가 하는 말이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그래서 저는 리차드의 ‘아이 같은 면’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이율)
 
정욱진은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살아온 성장 환경이 중요하잖아요. 리차드는 실제로 어릴 때 가정교사에게 학대를 당했고,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거짓말을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는 자료들도 있더라고요. 그가 ‘어린 시절에 잘못된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으로 리차드에게 접근하고 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네버 더 시너>에서 둘은 정해진 페어 없이, 골고루 상대 배우를 만나고 있다. 각 페어의 느낌은 어떨까?
 
이율은 “상웅이는 좋아, 좋아 스타일이에요. 상대 배우를 풀어주고 응원해줘요. 그리고 형훈이는 정확하게 연기해요. 많은 걸 억지로 표현하지 않아요. 그래서 안정감이 있고요. 승호는 저 같은 30대들이 따라갈 수 없는 젊음이 있어요. 그 역할에 최적화된. 그래서 호흡 자체가 달라요. 다른 레오폴드보다 더 통통 튀는 아이 같은 느낌이 있어요”라고 설명한다.
 
정욱진은 “첫 공연을 함께한 형훈이 형은, 사람 자체가 정말 따뜻한데, 연기도 따뜻해요. 승호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어서, 한때 승호 집에서 먹고 자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서로 일상의 모습을 많이 봤죠. 승호랑은 실제로 친한 친구 같은 사람들끼리의 궁합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인터뷰 당일 함께 공연할 조상웅 배우에 대해서 "상대 배우를 많이 챙겨줘요. 오늘 낮에도 연락이 왔는데 욱진아, 오늘 우리 위버멘쉬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자"라며, "언제나 화이팅이 넘친다"고 설명했다.
 
올해 서른 살 정욱진
예전보다 여유로워진 느낌


평소 계획을 세우고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며 사는 걸 좋아하는 정욱진은 여전히 한 주 한 주 다이어리를 빼곡히 채워가지만, 올해 특별한 계획은 없단다. 올해 서른 살이 된 그는 "저희 아버지가 서른한 살에 결혼하셨는데, 전 그거에 비교하면 아직 아기이긴 하죠. 예전보다 한층 여유로워진 느낌이에요. 욕심낼 때는 내야겠지만, 연기와 인생이 꼭 욕심만 내서는 되는 게 아닌 걸 깨닫게 됐어요. 예전보다 여유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정욱진은 큰소리로 인사를 하며 저녁 공연 준비를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 이율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서른 살은 지금 생각하면 꽃다운 나이죠. 저도 갈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젊은 역할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때"라며 웃음을 짓는다. 그는 애교 많은 후배에게 “공연 잘 하라”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율, 삶은 평범하지만
무대에서만큼은 자유롭게 

 
좋은 작품이 있으면 욕심이 난다는 이율은 “배우로서의 삶은 탐험가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탐험가가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듯이, 저도 남들이 해보지 않는 작품, 남들이 해보지 않은 역할. 그런 게 끌려요. 눈이 내려서 쌓여 있을 때 처음으로 그 눈길을 밟을 때 느낌처럼요.

하지만 그의 삶의 신조는 느리게 살기. “데뷔 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원래 천천히 하자는 주의인데, 시간이 갈수록 더 천천히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어차피 빨리 가도 결과는 비슷하고요.”

 "돈을 줘도 유명한 곳은 가고 싶지 않다"는 이율은 익숙한 것들이 좋다. 그런 본인의 성향이 배우로서 손해도 있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물었더니, 그는 무대에서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한다. "평소 생활도 끼가 있게 외향적으로 하는 배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저 같은 사람도 있고, 저보다 더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라고 답한다.

“무대는 공평해요. 그 사람의 성격이나 모습이나 어떻든 간에 무대에서는 역할을 공평하게 줘요. 무대에서의 표현과 제 일반 생활은 별개죠. 무대에 있을 때는 편안함을 느끼고, 무대에서만은 도전하죠. 무대에서 까불고 춤추고 노래하고, 무대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하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제 삶이 참 재미없다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평범하게 사는 게 좋으니까요.”

+ 최대한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전달하려는 이율과 풍성하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는 정욱진을 한 자리에서 지켜보자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후배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선배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는 그들의 호흡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두 배우가 한 무대에서 연기할 날을 기다려본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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