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기획② - 공연예술인 대담上] 쓰레기 더미 위에 선 연극? 그래도 희망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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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언론에서 공연계를 주목했고, 상상을 뛰어넘는 폭로와 분노, 비난이 이어졌으며, 어느새 그 불씨는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애초 미투운동이 법조계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이제는 더더욱 미투 운동이 공연계만의 일은 아니게 됐다.
 
그러나 공연계에 속한, 또는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논의는 식지 않고 이어져야 할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피해자들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되고 보상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지. 한걸음에 될 수는 없겠지만, 이번 사건을 분기점으로 삼아 공연계가 더욱 건강한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지난 7일 저녁, 공연예술인들과의 대담을 마련해 이야기를 들었다. 대담에는 김아영 배우와 김태형 연출, 그리고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하 연극인행동)’의 김기일 연출, 이오진 작가, 홍예원 배우가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이 나눈 이야기가 앞으로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갈 공연계의 미래에 한 가지 작은 지표가 되길 바란다.
 
Q 공연계 미투운동의 시작은 이명행 배우의 성추행에 대한 폭로(2월 11일)였습니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김태형: 명행 형과는 제가 제일 친했을 거에요. 작업도 여러 번 같이 했고, 어울리는 배역이 있을 때마다 1순위로 캐스팅했던 배우였죠. 연기 잘하고 재미있는 형이라고 생각했고, 무대 위에선 믿을만한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충격 받았던 건 이런 지점이었어요. 형이 공연이나 연습 때 사람들 앞에서 좀 과한 스킨십으로 보이는 장난을 쳤어요. 넘어지면서 누군가를 끌어안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걸 보고 있던 저나 다른 사람들이 별다른 인식을 하지 못했어요. 그저 ‘심하니까 하지마’ 정도였지, 성추행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거에요. 작년 연말쯤 이명행이 어느 극장에서 출연 금지를 당했다, 성추행을 저질러서 그랬다더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사실 그 장난이 과해서 누군가 신고를 했구나, 정도로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드러난 내용을 봤더니 그런 장난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었고, 훨씬 심각한 추행들이 벌어졌던 거죠. 그 때부터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가 처음 장난을 쳤던 시점에서 우리가 좀 더 강력하게 얘기할 수는 없었을까, 그가 그렇게 자유롭게 장난을 칠 수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출발해 성추행까지 갔던 것은 아닐까. 가까이에서 일을 했는데 왜 나는 몰랐을까. 미안하고, 속상했고, 반성을 많이 했어요.
 
김기일 연출(가운데), 김태형 연출(오른쪽)

Q 이명행 배우에 대한 폭로 이후에도 이윤택, 오태석 등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고, 그 실상도 너무 충격적이었죠. 다른 분들의 첫 느낌은 어떠셨나요.
김기일: 이윤택 연출과 연희단거리패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사실 전혀 놀랍지 않았어요. 이윤택 연출이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고, 다 알고 있었던 일들이 드러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설연휴 내내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서 ‘간극’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왜 우리는 가만히 있었던 거지? 연극판에 와서 조금만 있으면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고, 익히 알고 있는 얘기였는데 왜 그냥 지나쳤을까. 알면서도 피상적이었고 현실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들을 다 돌아보게 됐어요. 제일 궁금한 건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느꼈는지였고,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계속 그 상태인 것 같아요.
 
이오진: 저는 작년 가을쯤 이명행 배우의 성추행에 대해 들었어요. 건너건너 지인에게 그런 일이 있어서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전 창작자이기 이전에 관객으로서 그 배우의 팬이었고, 그의 평소 젠틀한 이미지와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죠. 더 중요한 건 그게 위계 폭력이라는 거에요. 그 분이 출연 정지를 당하게 된 사건은 제일 막내 스텝에게 한 추행이었다고 들었거든요. 그건 진짜 나쁜 짓이에요.
 
그때 그게 잘못된 행동이고, 그래서 처벌받길 바란다는 목소리를 낸 분이 있었기 때문에 김수희 연출님을 비롯해 그 다음 분들의 폭로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 목소리를 낸 그 분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해요. 일상의 감각 속에서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된다’고 누군가 말하는 흐름이 생기지 않는 한 미투운동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고, 또 공연계 전반의 위계 폭력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홍예원: 저도 연희단거리패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어요. 이윤택 연출이 그렇다더라,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더라 정도였죠. 알면서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당사자가 아닌 내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처음 김수희 연출님이 미투 선언을 했을 때 ‘드디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정말 고마웠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더 많은 것이 밝혀졌잖아요. 그러면서 너무 괴롭고 비참했어요. 이런 쓰레기 더미 위에 우리 연극이 서 있다는 게, 그렇게 인권을 갈아 넣어서 만든 것이 우리 연극의 토대라는 게 너무 끔찍했어요.
 
김아영: 저는 연희단거리패에 몸을 담은 건 아니지만, 부산에서 대학을 나와서 2학년때까지 (이윤택의) 수업을 들었고 제자로서 밀양연극촌에서 2년간 생활했어요. 지금 미투 선언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 제 선배고 동기들이에요.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듣기는 했어도 구체적인 사안은 몰랐다가 최근에 측근으로부터 ‘익명의 A씨, B씨’가 누구인지 다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 알 수 없는 죄책감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방관자가 아니었나 하는 자책과 괴로움이 컸어요. 미투 선언을 하신 분들과 최근까지도 술 마시며 얘기를 했기 때문에 더욱 복합적인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제 마음이 아직 다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이 자리에 나와서 뭔가를 얘기하는 것도 망설여지더라고요. 그래도 어찌됐든, 저뿐만 아니라 여기 연관된 모든 분들이 지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게 됐어요.
 
홍예원 배우(왼쪽), 이오진 작가(가운데)

Q 그토록 심각한 성폭력과 성추행이 일어났던 원인, 그리고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시스템과 인식의 문제 등 한 두 가지가 아닐 것 같습니다.
홍예원: 제가 여기 오는 길에 어떤 공연제작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봤어요. 예전에 연예인 사유리가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피해자가) 욕심이 없으면 성폭행 당할 일이 없다’는 뉘앙스의 글을 올렸더라고요. 화가 나서 댓글에 욕을 달아놓고 왔는데, 바로 그런 시선과 2차 가해가 이런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아요.
 
김아영: 분위기가 그렇게 조성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일에 대해 불쾌하다고 말하면 쿨하지 못하고 센스가 없는 사람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많거든요. 저도 원래는 그렇게 적극적인 성격이 아닌데, 나이를 먹다 보니 내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린 친구들이 내가 당했던 것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에 자꾸 말을 하게 돼요. 근데 그러면 꼭 누군가가 “어렸을 때는 순하더니 나이 드니까 독해졌네, 세졌네”라고 해요.
 
이오진: 내가 잘 보여야 되는 사람의 요구를 거절하는 건 너무 어렵죠. 저 사람에게 잘 보여야 다음에 또 일을 할 수가 있는데 어떻게 목소리를 쉽게 낼 수 있겠어요. 이윤택의 문제가 이렇게까지 온 이유에는 (밀양연극촌이) 지역적으로 고립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 국가가 형성돼 있고, 거기서만 통용되는 법률이 있는 거죠. 문제를 제기하면 그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고. 그게 권력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스무 살, 스물 한 살 무렵에 조연출을 했었는데, 조명 오퍼레이터를 하다가 실수로 조명을 7초 빨리 끈 적이 있어요. ‘어떡하지?’하는 순간에 뒤에서 연출이 머리채를 당기면서 귓가에 욕설을 하더라고요. 그날 제가 공연 끝나고 나서 뒷풀이에 못 갔는데, 못간 이유는 연출한테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를 실망시키고 공연에 피해를 줬다는 자책감 때문이었어요. 그게 잘못된 생각이란 걸 5~6년 지나고 나서야 알았죠. 사람들이 지금 고발에 나선 피해자에게 왜 10년 뒤에 이제서야 나타나느냐 얘기하는데,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 건지 제 경우를 떠올리면서 생각할 수 있었어요.
 
김기일: 연극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하기 조금 조심스럽지만, 여기서는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을 교화하고 훈육해야 할 존재로 보는 것 같아요. ‘네가 몰라서 그런데, 연극을 하려면 여기 맞춰야 돼. 내가 널 혼내는 건 너보다 힘이 세서가 아니라 네가 잘 모르기 때문이야’라는 분위기가 있는 거죠. 그래서 문제가 생겨도 ‘내가 아직 연극을 몰라서 그렇구나, 내가 능숙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에요. 사실은 (가해자들의 말이) 폭력을 수습하는 말에 불과했을 뿐인데, 그게 연극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고 포장돼서 전통이 된 것 같아요. 군대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홍예원: 굉장히 공감하는 게, 전 외국에 있다가 서른이 넘어서 이 바닥에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그런 훈육대상에서 열외였어요. “프랑스는 안 그런데? 그렇게 안 해도 잘 되는데?”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 배경이 없었으면 저도 똑같이 그런 생각에 노출 됐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스스로 좀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어쩌면 공연예술계에 계신 분들이 가장 자기검열에서 자유로워야 할 분들일 텐데, 오히려 군대 문화가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네요.
김태형: 예술가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삐뚤어진 신화가 있는 것 같아요. 낭만적인 천재, 광기 어린 예술가가 모델이어서 그가 이상한 짓을 하고 일탈을 해도 용서되는 분위기가 있어요.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하고, 그 ‘자신’ 안에 제자, 후배, 배우, 스텝이 다 포함돼서 그들의 에너지와 시간과 혼을 갈아 넣어서 좋은 작품을 만들기만 하면 다 용서되고 칭송을 받는 거에요. 그래서 그에게 더욱 권위가 생기고 추종자가 생기면 ‘내가 그럴 수 있어, 그래도 걸리지 않아’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최근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많이 갖거든요. 저는 운 좋게 현장에서 조연출을 한 번밖에 하지 않았고, 프로로 처음 연출을 하게 됐을 때는 동료, 선배들과 작업했기 때문에 저한테 권위가 없었어요. 제가 먼저 그분들의 믿음을 얻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같은 팀 사람에게 위계 폭력을 가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의 일을 계기로 돌아보니 나도 그런 적이 있더라고요. 그 때 그 친구가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느껴지고 미안하고, 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게 맞나 싶어 조심스럽지만 몇 명에게는 전화해서 사과하기도 했어요. 지금이라도 얘기해주니 고맙다는 친구도 있었고, 기억이 안 난다는 친구도 있었어요. 근데 그게 더 속상하더라고요.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으면 나 정도는 기억도 못할까 싶어서.
 
또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까 (홍예원 배우가) 2차 가해에 대해 이야기하셨지만 지금도 선정적인 눈으로 이 사건을 소비하거나 변태적인 성향을 가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시선이 많다는 거에요. 남자들이 ‘꽃뱀’에 대해 가진 경각심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고.
 
김아영 배우(가운데)

홍예원: 안희정 도지사에 대한 보도가 나왔을 때 생각했어요. 그 사람은 정말 자기 정치 인생이 중요한 사람이잖아요. 맥주 한 잔을 마셔도 음주운전 안 하려고 조심했을 텐데 왜 그런 일을 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생각나더라고요. 밝혀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나, 혹은 그런 행동이 범죄라는 인식이 없었거나. 아마 후자였을 것 같아요. 연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김아영: 공감해요. 이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 다 다르긴 하지만, 최근에 만난 어떤 남자 배우들은 그냥 술 한 잔 하러 만났는데 자기가 먼저 화가 나 있어요. ‘숨도 못 쉬겠네, 무서워서 말이나 하겠냐’는 거죠. 근데 말은 원래 조심해서 해야 하는 거잖아요. 남자들이 이런 일 때문에 직장에서 여자를 왕따시킨다는 기사도 봤는데, 참 답답해요. 중요한 건 단지 이런 분위기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인격, 배려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거잖아요.
 
홍예원: 마치 인종차별 문제가 제기됐을 때 ‘어디 무서워서 흑인이랑 일 하겠어?’라고 말하는 백인과 같은 거죠.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있는 거에요.
 
김아영: 어떤 남자배우들은 저한테 미투운동에 대한 지지글을 SNS에 올릴까 말까를 물어보고 상담을 받아요. 그런 고민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이해는 되지만, 진정한 자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분위기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 쓰는 경우에는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한 편으로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이 문제의 본질적인 것을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태형: 우선 굉장히 많은 부분이 교육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위 세대일수록 성폭력, 성평등에 대한 교육 경험이 없어요. 어떤 게 성폭력이고 성폭력인지, 여자의 No가 정말 No라는 것을 알려주는 교육이 없었어요. 성희롱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알려진 게 오래되지 않았거든요. 성희롱으로 가해자가 법적 판결을 받고, 그런 사건이 뉴스에 나온 지가 얼마 안 됐어요. 그런 게 보도되니까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충격을 받는 이유는 상식적인 선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들이 여기(공연계)에서 벌어졌다는 거죠.
 
 
Q 공연계에 그런 일이 더 많은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오진: 저뿐 아니라 많은 공연계 종사자들이 고민하는 게 이거에요. 언론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연극계는 왜 그러냐, 공연계는 왜 그러냐”는 것이거든요. 하도 질문을 많이 받아서 이제 기계처럼 답하게 돼요. “연극계에 성폭력이 만연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라고. 사실 더 폐쇄적인 정계, 재계에서 목소리가 나오면 훨씬 더 큰 사건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전 솔직히 지금 공연계에서 이 문제가 터진 게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이 곳에는 인간에 대한 기대가 있고, 유대가 있고,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김기일: 저도 요즘 그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제가 나중엔 화가 나서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어요. “왜 언론계에선 지금까지 성폭력이 벌어졌고, 왜 지금껏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냐”고 거꾸로 질문해본다면 그게 아무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는 걸 아실 거라고.
 
물론 연극계가 가진 특수성은 있지만, 여기선 이런 폭력이 있고, 또 다른 분야에선 그 분야만의 특수성을 가진 폭력이 있는 거죠. 잘못된 현상을 자꾸 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이게 연극계만의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해요. 지금 연극인들이 발뺌하는 건 아니냐고 바라보실 까봐.
 
김태형: ‘연극계에선 왜 그런 일이 벌어지나요’라는 질문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사람들이 공연계에 기대를 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린 정치계의 부패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적어도 예술가들은 고통과 좌절의 단계에서 무언가 다음 단계를 제시해주고, 그것을 노래하고 얘기하는 사람들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을 관객들이 부여해줬는데 현실에서도 보기 싫었던 추악한 일들이 여기서 벌어졌으니 더 실망했던 것 같아요. 그런 애정과 기대 때문에 실망해서 하는 질문도 있다고 생각해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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