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기획② - 공연예술인 대담下] 존엄성 회복의 첫발 '미투운동'…지치지 않고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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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첫 번째 편(링크)에서 공연계에 성폭력이 발생했던 이유를 함께 성찰했다면, 이번 편에는 앞으로 어떻게 건강한 공연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야기는 김아영 배우의 안타까운 경험담에서부터 시작됐다. 지인이 극단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함께 공론화하고자 노력했으나, 가해자가 고소하겠다며 협박하는 바람에 피해자가 겁을 내며 물러났다는 이야기였다. 그 피해자는 함께 나서준 김아영 배우가 다칠까 봐, 또한 사건을 공론화했다가 최근 연이어 밝혀지는 큰 사건에 묻힐까 봐 두려워한다고 했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만든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 지원 가이드라인’(2017.10)을 보면, 성폭력 피해자에게 법률전문가와의 상담, 법적 고발 등의 방법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큰 충격에 빠진 피해자가 곧바로 경찰을 찾아가거나 전문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상처 입은 피해자는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애초에 성범죄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끝으로, 지난 달 25일 대학로에 모여 ‘위드 유’(Withyou)’ 집회를 열었던 관객들에게 대담 참석자들이 꼭 전해달라 당부한 말도 기사 말미에 담았다.
 
Q 이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김아영 배우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장 피해자를 위한 지원제도에도 미진한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김아영: 저도 당시 경찰 신고는 했지만, 그 다음에 증거 제출을 비롯해서 피해자가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피해자 입장에서는 신고를 하는 것만도 큰 산을 하나 넘은 건데, 그 다음에 넘어야 할 산이 또 너무 크고 많은 거에요. 그러다 보니 피해자가 포기하게 되고, 피해자가 포기하니까 저도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김태형: 우리가 도둑질을 당하면 사회에 공론화하고 그러지 않잖아요. 그냥 경찰서 가서 신고하면 되잖아요. 사실 이런 문제도 개인이 처리할 게 아니라 시스템이 처리하도록 해야 돼요. 너무 속상하고 가슴 아픈 게 그게 안 되는 현실이죠. 아직까진 피해자가 협박당하지는 않을까, 묻히지는 않을까 공포에 떨면서 공론화해야 하잖아요.
 
홍예원: 그럴 땐 저희 연극인행동 신고센터에 연락을 해주세요. 피해자가 당장 뭘 해야 하는지 모를 때 정보와 프로세스를 아는 사람들에게 연결을 시켜주거든요. 경찰서에 가면 젠더감수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얘기를 해야 해서 더 힘들잖아요.
 
김기일: 이번 일이 일어나고 나서 전문가 집단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어요. 피해자가 혼자서 해결하긴 힘드니까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김태형: 그런 시스템이 많이 알려지고 교육돼야 해요. 보통은 성폭력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Q 각 극단이나 단체에서 마련할 수 있는 대책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김기일: 여러 극단에서 나름대로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을 거에요. 근데 우려되는 것이, 이런 대응이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여자 단원들을 모아놓고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놔 봐”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젠더 감수성 없이 대처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을 거에요. 문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또 다시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배워야 한다’는 말에 정말 동의해요. 바깥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권력 구도에서 약자의 입장에 있는 분들은 더더욱 바깥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것들을 내부의 논리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돼요. 지금까지 몰랐다는 걸 인정하고 움직이는 게 가장 좋아요. 그래서 저희도 지금 대표를 두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계속 의심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모르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그나마 빠르게 이곳을 자정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홍예원: 전문가 의견을 안 듣고 자체적으로 대처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이오진: 그래서 전문가 분들께 '피해자를 중심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연습하고 있어요. 그간 한국사회에는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연약한 대상'으로 여기는 시혜적인 태도가 있었거든요. 미투 고발자 분들은 연약한 분들이 아니에요. 오히려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감수하고서 목소리를 내주신 용감한 분들이죠.

Q 지금 연극인행동에서 하고 계신 활동이 궁극적으로는 제도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것들이 이뤄져야 할까요?
홍예원: 오늘 제가 여가부 관계자들을 만나서 얘기한 게 있어요. 배우나 스텝들이 예술인복지를 신청하려면 예술활동증명을 해야 하는 것처럼, 성폭력 예방 교육도 의무화해달라는 거에요. 그런 교육을 받았다는 증빙이 없으면 지원사업에 신청할 수 없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형식적일지라도 그런 교육을 받고 안 받고는 분명 차이가 있거든요.
 
지금 국공립 극장에선 성교육이 의무화돼 있지만, 문제는 그 공연에 참여하는 극단과 배우들에게는 교육이 의무가 아니라는 거에요. 모든 배우와 스텝들이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그 공연이 못 올라가도록 강제해야 할 것 같아요.  
 
김기일: 그렇게 되면 이제 성폭력 문제가 사적 영역으로 가지 않을 거에요. 성폭력을 개인적 성향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고 확실히 마음의 부담을 걸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 단계조차 안 되고 있으니까. 극단이나 극장 규모상 어렵다고 하면 국가에서 지원해줘야 되는 문제죠.

 
김태형: 이런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제가 전에 남산예술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몇 팀은 연습이 바빠서 못 왔더라고요. 근데 강사님이 “그 연출님들이 와서 들어야 하는데”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들이 가해자라는 게 아니라, 가장 조심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을 꼭 들어야 하는 극단의 대표님들, 연출님들은 교육을 잘 듣지 않는 거죠. 내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얘기를 1시간 넘게 들으면 불편하니까.
 
홍예원: 그래서 제가 여가부에 요구했던 게 그런 교육을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1년에 4회 이상 실시해달라는 거에요. 그러면 그 중에 한 번은 들을 수 있겠죠. 그리고 연극인들에게 특화된 성교육을 해달라는 제안도 했어요. 구체적인 작업 과정별로 예시를 들면서 교육을 하는 거에요. 캐스팅 단계부터 리딩, 연습, 셋업, 쫑파티까지 상황 별로 조심해야 할 것들을 가르치는 거죠. 그렇게 맞춤 교육을 1년에 4번 실시하고, 수료증이 없는 구성원이 있는 단체는 지원서조차 낼 수 없게. 정말 실행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김태형: 너무 좋은 생각 같아요. 제가 들었던 성폭력 교육은 직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폭력에 맞춰져 있었거든요. 회사원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자료가 만들어진 거죠. 연극뿐 아니라 사진이면 사진, 무용이면 무용 등 분야별로 각기 다른 사례를 연구하고 마련할 수 있겠네요.
 
홍예원: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전문가가 같이 고민해서 프로세스별로 사례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Q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여러 가해자들이 ‘잘못했다, 내려놓겠다’ 등의 사과문을 내놓았지만, 흐지부지 묻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김태형: 누군가가 빨리 올바른 가해자의 예시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를 용서하자는 게 아니라,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상식적이고 도의적으로 책임지는 것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최근에 알려진 가해자들 중에 현재는 법리적으로 구속수사가 어려운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들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감옥도 가지 않을 거거든요. 그럼 명예살인을 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감옥에 가는 것 못지 않게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고통과 반성의 시간을 갖고 진심으로 사과한 다음에야 먹고 살기 위한 일을 할 수 있게. 어쨌든 성범죄를 저지르면 인생이 망가진다, 큰일이 난다는 선례를 확실히 남겨야 할 것 같아요.
 
홍예원: 우선 이윤택이 그렇게 되어야겠죠. 독일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를 청산한 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바닥까지 다 드러나야 자정이 될 것 같아요.
 
이오진: 피해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가해자들이 그 분야로 다시 돌아오는 거래요.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조차 두려운 거죠. 예를 들어 전에 문학계와 미술계에서 성폭력 고발이 있었잖아요. 근데 그때 명예살인을 당했던 사람들이 2~3년 지나니까 지방에서부터 조금씩 활동을 하기 시작했대요. 그런걸 보면 누가 고발을 할 수가 있겠어요. 예를 들어 누가 연극계에서 성폭력을 저지르면, 아예 몇 년간 연극을 포함한 모든 공연예술계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기일: 구체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찾으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수상 단체가 가해자의 수상을 취소한다든지, 평론가들이 지금까지 좋게 평가됐던 그들의 작품을 다시 엄밀히 평론해서 객관적으로 잘못됐다는 글을 쓴다든지. 당연히 지원사업이나 교수직 임용에서는 배제돼야 하고요.
 
김아영: 많은 관객 분들이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사건 당시 바로 폭로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10년 이상 지난 이야기를 이제 용기 내서 하는 건데,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공소시효에 대한 논의도 더 이어져야 할 것 같아요. .
 
홍예원: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가해자를 제제하는 가이드라인을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를 논의하고 있나 봐요. 당장 법적으로 처벌받든 아니든 이 사람이 가해자라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쨌든 진상조사위가 발족돼야 할 것 같고, 여가부에서 발족한다고 들었어요.
 
김기일: 해본 적이 없으니까 공허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지금 연극인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 생태계를 움직이는 게 기관이나 문화재단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을 연극인들이 지금 인지하고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면 너무 괴로울 것 같고, 더 이상은 이걸 아무한테도 못 맡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부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선택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특히 연극은 필연적으로 공동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피해자들이 더 괴로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퇴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Q 끝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해주세요.  
홍예원: 저희 팀의 이산 배우가 하신 말인데, 미투 운동을 하고 있거나 하고 싶은데 고민 중인 분들께 전하고 싶어요. 우리 모두가 지금 사회의 변화를 같이 일으키고 있고, 우리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큰 여정에 첫발을 내딛었다고.
 
이오진: 관객 분들의 위드유 집회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저희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수많은 창작자들이 그날 관객 분들께 진심으로 감동하고 감사했습니다. 집회를 만들어주신 분들께 꼭 감사 인사를 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집회 직 후 어떤 관객분이 쓰신 글에 "비정상적인 인간들도 많지만, 묵묵히 자기역할 열심히하고 관객들에게 더 나은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더 많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해서 눈물이 났었어요. 

작품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지금 대학로에서 올라가고 있는, 대중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공연들 중에 남자 캐릭터 위주의 공연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여자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어요. 여배우의 역할도 주로 주인공의 엄마, 애인, 예쁜 딸이고요.
 
그런데 요즘 그런 흐름이 좀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최근 봤던 좋은 드라마가 <이번 생은 처음이야>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이었는데, <이번 생은 처음이야>에서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불편을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였고, <슬기로운 감빵생활>도 성폭력 사건을 섬세하게 다뤘어요. 공연계에서도 여자들이 주체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공연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많이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작품이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바꾸려면 창작자들도 좀 더 영리해져야겠죠. 관객들은 이미 그런 공연을 보러 오실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해요.
 
김태형: 저도 지이선 작가와 위드유 집회에 같이 있었는데, 너무 눈물이 나더라고요. 관객들이 사랑했던 대상에게 실망했기 때문에, 자신도 일상에서 겪은 일이기 때문에 더 분노하고 아파하신 것 같아요. 내 잘못은 아닐까 생각하며 상처입은 시간을 지나왔다는 이야기가 너무 가슴 아팠어요. 그날 저와 지이선 작가가 했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어요. 관객들은 우리가 만든 작품을 사랑해서 지금도 그 대사로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과 의지를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대체 뭘 한 걸까, 라는 생각도 들어 너무 괴로웠어요.
 
그런데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관객들이 있으니까. 아까 우리가 앞으로 범죄자들의 공연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했는데, 한 편으로는 관객들이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우리가 자정 노력을 할 테니 공연을 봐주세요, 라는 말은 못 하겠어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관객들이 ‘내가 보는 공연이 혹시 누군가의 꿈을 짓밟고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 없이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김기일: 이 자리에서 제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동료들과 하지 않았다는 게 너무나 이상하더라고요. 우리가 만나서 주로 했던 이야기는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느냐, 어떤 지원금을 받느냐, 혹은 연극계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미학적인 이야기들이었어요.
 
요즘 연극인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몰랐던 것들이 너무나 많더라고요. 굉장히 다양한 분들이 오는데, 내가 나이든 연극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그 안에도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왜 그동안 이렇게 얘기해본 적이 한 번도 없을까, 내가 뭘 얼마나 안다고 어줍잖게 연극하는 척을 했을까, 왜 이런 분위기가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은 거에요.  
 
전 이 사태가 절대 그냥 지나가지 않을 것이고, 더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빨리 해결해야 할 때가 아니라 더 많이 들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계속해서 화두를 던지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이 사건이 잊혀지지 않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이런 일들 때문에 연극계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에요. 그걸 기준으로 삼아 움직였으면 좋겠어요. 이런 일이 지나고 나서 또 다시 폭력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김아영: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정말 계속 고민했어요. 과연 내가 여기서 말할 자격이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도 어떤 상황에서는 방관자가 아니었나 하는 죄책감이 있었으니까요. 제가 이 자리에 나올지 말지를 고민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몸을 사리라고 했어요. 굳이 왜 그런데 나가려고 하냐, 배우로서 안 좋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좀 더 유난을 떨고 싶어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관객들의 위드유 집회를 기사로 보면서 정말 진심으로 눈물이 났어요. 너무 마음 아픈 일이지만 곪은 것들이 이렇게 터져 나온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건강한 일 같고, 거기서 가장 큰 몫을 해주신 분들이 관객들 같아요. 사실 공연계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이렇게 공연계에서 먼저 터져나올 수 있었던 힘이 관객들의 힘 같아요. 공연에 대한 애정도 있겠지만, 관객들도 다 겪고 있던 일들이라서 같이 화를 내고 동참하시는 게 아닐까요.
 
지금 당장 우리가 잘해볼 테니 공연을 보러 와달라는 말씀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지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드리고 싶어요. 당연히 우리가 더 노력하고 목소리를 내야겠지만, 여지껏 함께 해주신 관객 분들의 힘이 정말 컸거든요. 조금만 더 같이 버텨 주셨으면, 조금만 더 힘내주셨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욕심이에요.
 
또 저도 여자 배우로서 거의 십 몇 년 공연을 해오고 있지만, 조연을 오래 한 배우로서 ‘젠더 프리’한 공연, 남녀가 역할을 바꿔서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작품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노력해서 지치지 않고 좀 더 긍정적으로 나간다면 공연계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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