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거절한 이유는? <닥터 지바고>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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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저로서는 죽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1958년 10월 31일, 7일 전 스웨덴 학술원으로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당시 수상이었던 흐루시초프에게 다급히 편지를 보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절했으니, 부디 조국에서 추방하지 말아달라는 간청이었다.
 
러시아 밖에서는 작가에게 큰 영예를 안겼으나, 정작 그가 사랑했던 고국에서는 온갖 비난을 불러온 작품. 당대 뜨거운 문제작이었으나 이후 명작의 반열에 오른 소설. 바로 <닥터 지바고>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달 27일, 이 소설을 무대화한 뮤지컬 <닥터 지바고>가 무대로 돌아와 펼쳐지고 있다. 6년 만의 반가운 귀환을 기념해 이 작품을 더 깊이 감상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살펴봤다.
 
■ 소설과 뮤지컬 <닥터 지바고>의 차이는?  
<닥터 지바고>는 혁명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시인이자 의사인 지바고와 강인한 성격을 가진 여인 라라의 사랑을 그린다. 소설은 지바고와 라라의 유년기에서부터 시작해 약 500페이지에 걸쳐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지바고의 내면 서술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지바고의 시집도 부록으로 딸려 있다.)
 
이 방대한 원작을 170분의 무대로 압축한 뮤지컬 <닥터지바고>는 각 캐릭터의 개인사와 성격을 보다 극명하게 설정해 보여준다. 지바고와 라라가 우연히 마주친 한 파티장이 뮤지컬에선 지바고의 결혼식장으로 바뀌었고, 라라의 남편 파샤는 지바고를 질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원작에서는 파샤의 감정이 좀 더 복합적이다.) 또한 뮤지컬에는 소년 군인 얀코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생겼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은 뮤지컬 역시 전쟁과 혁명 속에서 피어난 숭고한 사랑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인기곡 ‘나우(Now)’를 비롯한 서정적인 넘버들이 주인공들의 사랑과 그리움을 절절히 전하며, 무대 뒤 반원형 스크린에 투사되는 모스크바의 화려한 야경과 광활한 설원 등이 당대 러시아의 풍광을 생생히 비춘다.
 
■ 지바고가 집을 빼앗긴 이유는?  
극중 1막에서 군의관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지바고는 집에 돌아온 후 자신의 집이 몰수된 것을 알게 되고, 이후에도 숙청의 위험을 피해 유리아틴으로 이사하는 등 끝없는 수난을 겪는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3년째인 1917년 2월, 러시아에서는 전쟁으로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던 민중들이 혁명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황제는 폐위되고, 전직 의원들로 구성된 임시정부와 노동자·농민·병사들로 구성된 소비에트 세력이 알력 다툼을 벌이며 나라를 통치한다. 그리고 이들 중 레닌이 이끌던 급진파 ‘볼셰비키’가 10월에 또다시 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잡는다. 앞의 혁명이 2월 혁명, 뒤에 일어난 혁명이 10월 혁명(볼셰비키 혁명)이다.
 
볼셰비키 집권 후 토지의 사유화는 금지되고, 지주들이 소유했던 토지는 농민들에게 분배된다. 이 같은 변화 때문에 지바고와 토냐도 집을 빼앗기고 지방 도시로 피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도 볼셰비키 측의 ‘붉은 군대’와 왕당파인 ‘백색군’의 내전이 1923년까지 이어졌고, 지방 도시로 피신했던 지바고 가족 역시 끊임없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닥터 지바고> 작가는 왜 노벨상을 거절했을까?
소설 <닥터 지바고>에는 주인공들 외에도 다양한 계급에 속했던 인물들의 삶과 죽음이 그려져 있다. 혁명 전 러시아 민중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지바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사회의 변화를 염원했다. 그러나 정작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두 번의 혁명이 연이어 일어나고 볼셰비키 정부가 완전히 정권을 장악하기까지, 무수한 사람이 억울하게 유배되거나 내전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다”고 말한 파스테르나크는 이같은 씁쓸한 혁명의 실상을 소설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러자 당시 러시아 정부는 이 소설이 반혁명적이라는 이유로 작가를 탄압했고, 파스테르나크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자 그를 아예 국외로 추방하려 했다. 혁명의 어두운 이면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결국 파스테르나크는 노벨상을 거절함으로써 겨우 추방을 면할 수 있었다.(그러나 스웨덴 학술원은 그의 수상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왼쪽부터) 올가 이빈스카야,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지바고는 작가의 분신?
지바고처럼, 작가 파스테르나크도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져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 여인은 문학지 편잡자였던 올가 이빈스카야로, 파스테르나크에게 창작의 영감을 불어넣은 뮤즈이자 라라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파스테르나크는 56세였던 1946년 당시 34세였던 올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2년 뒤 <닥터 지바고>의 본격적인 집필에 착수했다.
 
이들의 사랑은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처럼 순탄치 않았다. 당시 경찰은 <닥터 지바고> 집필을 막기 위해 작가 대신 올가를 체포해 4년간 감옥에 가뒀고, 올가는 뱃속에 있던 파스테르나크의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그녀는 파스테르나크가 죽은 뒤에도 또다시 체포되어 4년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시련 속에서도 죽을 때까지 진심이 담긴 시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을 나눴다.
 
■ 토냐, 라라 외에도 지바고에게 또 다른 여자가 있었다?
뮤지컬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사실 지바고에게는 토냐와 라라 외에도 깊은 관계를 맺은 여인이 한 명 더 있다. 라라와 헤어진 후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만난 ‘마리나’다. 활달하고 생활력 강한 마리나는 삶의 의욕을 잃은 지바고를 헌신적으로 돌보며 그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그녀를 라라만큼 사랑하지는 않았던 지바고는 어느 날 자신을 찾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남기고 잠적해 은신처에 숨어 시를 쓰다가 숨을 거둔다.
 
* 참고 및 인용 – 소설 <닥터지바고>, 중앙출판사, 1993년, 이동현 번역
 
글/구성 :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 D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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