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페스트>는 왜 만났을까
- 2016.07.01
- 박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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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수록곡 '슬픈 아픔'이 사뭇 다른 느낌으로 불려졌다. 이번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로서가 아니라, 오는 22일 개막하는 뮤지컬 <페스트>의 넘버로서다. 극중 페스트 창궐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 리유의 고뇌를 담은 곡이다.
90년대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의 만남으로 일찍부터 기대를 모았던 뮤지컬 <페스트>의 면면이 공개됐다. <페스트>의 제작진은 지난달 30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극중 넘버 4곡과 함께 노우성 연출, 김성수 음악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배우들을 소개했다.
왜 서태지, 왜 <페스트>인가
1992년 1집 ‘난 알아요’로 데뷔해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 서태지. 그의 음악은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왔지만, 뮤지컬로 만들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페스트>의 기획과 제작을 이끌어온 스포트라이트의 김민석 대표는 이번 뮤지컬을 2007년부터 구상해왔다고 밝혔다. “서태지 씨를 매니지먼트하는 입장에서 이 음악들이 너무 좋으니 스토리로 엮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막연히 떠올랐다.”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날 무대에서는 김성수 음악감독의 편곡을 거쳐 탄생한 네 곡의 넘버가 공개됐다. 배우들이 직접 부른 ‘슬픈 아픔’과 ‘제로’, ‘코마’와 뮤직비디오로 공개된 ‘버뮤다[트라이앵글]’이다. 지금도 계속 음악을 수정 중이라는 김성수 음악감독은 “억지스러운 스토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을 어떻게 배치할까를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 우선 좋은 대본이 나오기를 기다린 다음 가사가 기존의 대본과 얼마나 일치되는지 신경썼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이 자신에게는 ‘놀이터’와 같다는 김성수 음악감독은 “창작자 입장에서 자신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것을 흥미롭게 느낄 수 있도록 작업했다. 또한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서태지의 원곡을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느끼고 싶지 않을까, 하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번 뮤지컬에는 '너에게' '환상속의 그대' 등을 비롯해 '코마' 'Take5' 등 서태지의 음악 20여곡이 들어간다.
“대본을 많이 버리고 포기해야겠다 생각한 순간에 <페스트>라는 소재를 발견했다. 책에 들어있는 까뮈의 저항정신과 연대정신이 서태지의 음악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더라. 이 소설의 현대적이고 파편적인 느낌도 서태지 음악과 잘 어울렸다. <페스트>로 서태지 뮤지컬을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원안을 작업하는데 4년이 걸렸고, 그 결과물을 공연용 대본으로 다시 쓸 사람을 찾다가 노우성 연출을 만났다. 서로 방향이 너무 잘 맞아서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는 확신이 들었다.“(송경옥 책임프로듀서)
“까뮈와 서태지라는 두 아티스트가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에서 절묘하게, 운명적으로 만나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 숙제였다.”는 노우성 연출은 “<페스트>는 까뮈가 1차 세계대전 후 ‘이제 저항할 필요가 없다,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시민들을 향해 쓴 소설이다. 그런 얘기를 이 시대 관객들에게 어떻게 녹여낼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저항정신을 ‘잃어버린 시대’라는 두 단어로 설정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 하에 잘 길들여져서 저항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에게 페스트라는 위기가 닥쳐왔을 때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를 그리려고 했다.”며 원작의 배경을 미래로 옮긴 이유를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듣던 노래, 직접 부르니 어려워”
이번 뮤지컬에서는 김다현, 소호영, 박은석이 전염병과 맞서 싸우는 의사 리유로, 김도현과 윤형렬이 페스트가 퍼진 도시를 빠져나가려 하는 기자이자 화자인 랑베르로, 오소연과 린지가 리유의 조력자이자 식물학자인 타루로 분한다.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자란 배우들은 이번 뮤지컬에 임하게 된 것에 대해 특별한 감회를 밝혔다.
“도대체 서태지 음악을 어떻게 뮤지컬화할지 무척 궁금했고, 그런 것들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에 도전하게 됐다”는 김다현은 “우리 작품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특히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선택이라는 물음표 앞에 서게 된다. 이 공연을 통해 자신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이 작품을 선택한 만큼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버뮤다[트라이앵글]’ 뮤직비디오로 첫 선을 보인 윤형렬은 가장 부르기 어려운 곡으로 ‘제로’를 꼽으며 “정말 서태지만 부를 수 있는, 정체성이 강한 음악이다 보니 처음엔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서태지를 자꾸 따라가더라. 그 그늘을 벗어나서 어떻게 뮤지컬 배우로서 랑베르의 정서를 잘 담아서 부르느냐가 우리의 가장 큰 숙제 같다.”고 말했다.
김수용과 조휘는 도시에 전염병이 처한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코타르로, 조형균, 정민, 박준희는 박물관 코디네이터 그랑으로, 황석정과 김은정은 리유와 맞서는 시장 리샤르로 분한다. 대형 뮤지컬에는 처음 출연하는 황석정은 “어렸을 때부터 전염병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며 <페스트>와의 만남을 ‘운명’이라 표현했다. “최근 메르스도 그렇고 여러 병들이 창궐할 징조를 보이지 않았나. 평소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할까 생각했는데 그런 고민과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운명적인 작품 같아 감사하고 있다.”고.
서태지와 까뮈의 소설 <페스트>의 만남, 그리고 인기배우들의 출연으로 기대를 모으는 뮤지컬 <페스트>는 오는 22일부터 9월3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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