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박칼린, 김지우 “좋은 퀄리티의 작품은 관객들이 알아보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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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톱 중심의 작품들이 대부분인 공연계에서 뮤지컬 ‘시카고’는 빛을 발휘한다. 극강의 매력을 지닌 여성 캐릭터들이 주체가 되는 작품인 데다, 14번째 시즌을 맞이할 정도로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공연계 스테디셀러이기 때문. 그렇기에 ‘시카고’는 여자 배우들에게는 꼭 출연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연기, 노래, 춤 3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해내야 하기에 이를 소화하는 배우를 찾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

6년 만에 전 배역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이번 시즌 벨마, 록시 역은 관록의 최정원·아이비와 함께 박칼린·김지우가 새롭게 배역을 차지했다.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춤에 도전하게 되었다는 박칼린과 이 작품을 통해 초심을 찾게 되었다는 김지우는 ‘퀄리티 있는 작품은 살아남는다’는 자신감으로 인터뷰 내내 ‘시카고’에 푹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Q. 개막 후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선 소감이 궁금합니다. 연습할 때랑은 또 느낌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김지우(이하 김) : 저는 오히려 연습 때 정원 선배님보다 칼린 선생님이랑 연습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편했어요. 어제 ‘나우어데이즈(Nowadays)’ 할 때도 지팡이를 들고 딱 서서 옆을 봤더니 같은 라인에 서 있는 거예요. '함께 연습한 시간은 무시 못 하겠구나' 싶더라고요.

박칼린(이하 박) : 지우 말대로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아이비랑 할 땐 신참이 베테랑과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미안할 때도 있거든요. 근데 지우랑은 새내기들끼리 같이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더 편해요. (웃음)

Q. 두 분은 원래 친분이 있으셨어요?
김 :
2011년 뮤지컬 ‘렌트’에 출연했을 때 당시에 연출을 칼린 선생님이 맡으셨었어요. 처음에는 겁을 많이 먹었죠. 굉장히 카리스마 있으신 분이다 보니 아우라 때문에 지레 겁을 먹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의외로 굉장히 소녀 같고 귀여운 면이 많으세요. 옆집 언니 같기도 하고요. 근데 무대에서는 또 정말 다르시더라고요. 무대에서 등장하는 모습만 보고도 “여기가 브로드웨이인가?” 할 정도로 강렬한 아우라에 감탄했어요.

박 : 원래 연출을 할 때도 지우는 배우로서도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정말 진지했고, 연극 정신이 투철한 배우였거든요. 처음에도 지우가 ‘시카고’ 오디션을 본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먼저 좋아서 팔짝 뛰었죠. '꼭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연습 과정도 지우 덕분에 정말 재미있었어요. 특히 처음 합류한 배우들이다 보니 둘이서 정말 죽어라 같이 연습했죠. 마치 전우의 느낌이랄까요?
 
Q. 워낙 최정원, 아이비 씨가 수년째 굳건히 벨마와 록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니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게 참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 처음에는 긴장할 줄 알았어요. 아무래도 음악감독으로서 오래 ‘시카고’를 해왔던지라 스텝들을 대표하는 느낌 같은 게 있거든요. 잘 못 하면 ‘왜 괜히 배우를 한다고 해서 저러고 있나?’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배우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그런 걱정들이 싹 잊히더라고요. 지우처럼 함께 의지가 되는 친구들도 많았고요.

: 정말 처음에는 걱정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근데 칼린 선생님을 비롯해 모든 출연진들이 성격이 너무 좋다 보니 편하게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특히 아이비 언니가 “나만 혼자 하다가 네가 하는 걸 보니깐 나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저도 제가 갖지 못한 부분들을 언니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운 게 있었고요. 뮤지컬 하면서 처음으로 ‘잘해야 해’가 아니라 ‘같이 이렇게 만들면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Q. 각자의 캐릭터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특히 이번 시즌에는 해외 연출진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릴 여지를 많이 남겨주었다고 들었어요.
김 :
그게 진짜 도움이 많이 됐어요. 같은 역할이라도 디렉션을 따로 불러서 줬거든요. “아이비의 록시가 아닌 너한테 맞는 록시를 찾았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해주셔서 한편으론 감사했죠. 저 같은 경우는 록시를 이전까진 단면적으로만 생각했더라고요. 그냥 해맑고 생각이 깊지 않은 캐릭터로만 생각했죠. 근데 타냐 연출이 “록시는 생각보다 굉장히 똑똑한 여자야. 습득력이 정말 좋은 사람이거든”이라는 얘기를 제게 해주고 나선 제 캐릭터의 노선이 확실히 잡혔어요. 정말 록시는 좋은 관찰자더라고요. 그 이후부터 저도 벨마의 행동 하나하나를 더 유심히 보게 됐어요.

박 : 처음 1~2주는 캐릭터를 분석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사실 벨마 대사가 몇 마디 없거든요. 짧은 대사 안에 캐릭터를 녹여내야 하다 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단순히 당당하고 쿨한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감정이 와닿지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봤어요. 인간으로서 얘기조차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냉정해지더라고요. ‘음~ 그렇게 살아. 그렇게 깐죽거려’ 그런 느낌이랄까요? 사실 정원 씨랑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서 걱정했는데, 연출진들이 ‘다른 느낌의 벨마라 더 좋다’고 해주더라고요.
 
Q. 무엇보다 시카고 하면 밥 파시의 안무가 정말 가장 큰 매력이잖아요. 프레스콜에서 고난도 안무를 편안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박 :
동작을 외우는 건 문제가 아닌데, 안무를 소화하고 내뱉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 52살에 처음 춤을 배우려고 하니깐 몸이 말을 안 듣더라고요. 아직은 제 욕심만큼은 소화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그래도 저를 믿고 뽑아준 사람들, 그리고 관객들을 위해서라도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김 : 벨마 춤이 보면, 관객 입장에선 힘들어 보이지 않을 수 있는데 정말 근력이 엄청나게 필요한 안무들이거든요. 저는 칼린 선생님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어요. 수년째 ‘시카고’의 음악감독을 한 분이기 때문에 사실 ‘시카고’의 모든 걸 알고 있으신 분이잖아요. 그러다 보면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힘들 텐데 그게 전혀 없었어요. 연습실에 항상 제일 먼저 와서 스트레칭을 하시고, 끝나고도 남아서 계속 연습하시더라고요. 전 그게 정말 멋있었어요. ‘나 느슨해졌구나’ 반성하게 되기도 하고요.

Q. ‘시카고’의 스토리를 보다 보면 대중의 관심을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아요.
김 :
맞아요. “하느님 졸라 멋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빌리가 “앞으로 어머나 이외의 말은 쓰지 마”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저도 사실 똑같아요. 집에선 TV를 보다 열 받는 뉴스가 나오면 “아우 씨” 이러기도 하지만, 또 공식 석상에선 “정말 속상합니다”라고 얘기하게 되죠. 그래서 록시를 연기할 때 더 편한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단순히 록시뿐 아니라 ‘시카고’에 나오는 모든 역할이 현실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에요. 그런 인물들을 풍자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속 시원하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고요.

Q. 그럼 두 분은 대중들이 보는 나의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은 얼마나 다른 것 같아요.
박, 김 :
엄청 달라요. (웃음)

김 : 아마 선생님과 저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저를 깍쟁이로 본다는 점일 거예요. 얌체, 깍쟁이로 생각하실 것 같은데, 근데 사실 둘 다 안 그렇거든요.

박 : 맞아요. 지우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연습할 때 음식 바리바리 싸 오는 건 저희가 1등이에요. 지우가 주변 사람들을 정말 잘 챙기더라고요. 물론 일할 땐 다르죠.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해내야 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빨라야 하고. 그 모습이 ‘카리스마 있다, 차갑다’ 느껴질 수 있어요. 근데 저 되게 순해요. (웃음) 집에 가면 시키는 대로 다 하고요.

김 : 선생님은 연습실에서도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한번은 개리 안무가가 “칼린”하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는데 저 멀리서 선생님이 “예스” 이라면서 뛰어가시는 거예요. 너무 사랑스러우시더라고요. (박 : 디렉션은 황금이거든. (웃음)) 저도 날카로울 것 같고 예민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에요. 저나 선생님이나 허당 같은 면도 많고요. (웃음)

Q. 지우 씨는 이전 인터뷰에서 “‘시카고’ 오디션에 합격하기 전까지 배우로서 고민이 많았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어떤 고민을 안고 계셨는지요.
김 : 어느 날 ‘킹키부츠’를 신나게 하고 있는데 문득 ‘이거 끝나면 날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배우로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들기 시작한 거죠. 사실 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다 보니 대중들은 그걸 다 알고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 가끔 배역 제의가 올 때 제 나이를 한참 뛰어넘는 역할이 들어올 때가 있더라고요. 물론 너무 좋은 역할이지만, 이러다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한정되는 건 않을까 걱정도 되더라고요. 전 사실 주, 조연을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거든요. 충분히 제가 살릴 수 있는 역할이라면 어떤 역할이라도 하는 편인데요.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기회가 없어질까 봐 그게 고민이었어요. 그러던 찰나에 ‘시카고’ 오디션 제의를 받게 된 거죠. 정말 붙고 나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어요. 꼭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거든요. 정말 ‘시카고’ 덕분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자신감을 찾게 된 것 같아요.
 
Q. 지우 씨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공연계가 주로 남성 캐릭터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 가는 작품들이 많은 탓이기도 한 것 같아요. 물론 ‘시카고’, ‘위키드’, ‘아이다’ 같은 여성 중심 서사를 지닌 작품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남자 배우들보다 여자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작품들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김 :
아쉬운 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전 배우로서 누가 원톱이냐 아니냐는 사실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어떤 작품도 혼자서만 끌고 갈 수 있는 극은 없잖아요. 작품의 퀄리티만 좋다면 정말 어떤 역할도 그 의미가 있기에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배우 입장에서는 간혹 남성 원톱, 투톱에 기대어 부실하게 만든 작품들도 있다는 게 더 아쉬워요.

그런 의미에서 ‘시카고’란 작품이 주는 의미는 특별한 것 같아요.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캐릭터의 성별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셈이니깐요. 그래서 저 역시도 이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게 죽기 살기로 연습을 했던 것 같고요. 사람들이 봤을 때 “쟤가 왜 저 역할을 맡았어?”라는 얘기는 듣지 말아야 할 거 아니에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로서도 커다란 이상을 갖고 다음 시즌에도 록시로 돌아올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죠.

Q. 이런 공연계 현실에 대해 연출가로서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박 :
적어도 전 작품을 할 때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 적은 없어요. 전 대본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고 이때까지 작업했어요. 음악감독을 할 때도 대본부터 보고 싶어 했을 정도니깐요. 애초부터 강하게 그 기준을 명확히 세워놓고 가지 않으면 헷갈려서 일할 수 없어요. 무대에선 진실된 것을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그 덕분에 저 자신에게 부끄러웠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퀄리티는 살아남는다’ 전 그 말을 믿어요. 공연계에 인기 요인만 쫓아 부실하게 만들어진 작품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작품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땐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시카고’란 작품을 하게 된 것도 여자 톱이어서가 아니라 대본의 탄탄함 때문이었거든요.

Q. 마지막으로 ‘시카고’ 이후 달라질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면요?
김 :
물론 작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평가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제 상황들이 갑자기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시카고란 작품을 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이로 인해서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더 노력하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거니까요. 이 작품을 통해 초심을 찾게 된 만큼 저는 앞으로도 ‘배우’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에요.

박 : 사실 제 기준에서 봤을 땐 아직 무대에서의 제 모습이 양에 차지 못하거든요. 이놈의 무릎 때문에 고생했던 지라 스태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요. 전 ‘시카고’ 오디션을 볼 때부터 노지현 안무가와 개리 안무가만 ‘오케이’라 하면 내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하겠다 했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이 저를 믿고 이 배역을 맡긴 거잖아요. 그들을 정말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일단 목표는 무대에서 정말 즐기면서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계속 실력을 키워나가는 거고요.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항상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그다음 일이 저절로 이어지더라고요. 제 무대를 보고 ‘역시 저 사람은 음악감독을 했을 때가 최고다’ 생각하신다면 음악감독으로, 아니면 또다시 배우로 연결되지 않을까요? (웃음)


글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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