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밀한 연기 호흡 눈길, 연극 신작 ‘애도하는 사람’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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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도 애도받을 수 있나요?”
 
지난 12일 개막한 연극 신작 ‘애도하는 사람’은 제목처럼 ‘애도’라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타인을 죽음을 애도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이며, 전혀 알지 못했던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가능한지, 또한 악인의 죽음도 애도할 수 있는지. 지난해 영화 ‘더 킹’으로 각종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던 김소진과 함께 김동원, 전국향, 김승언 등이 이끄는 무대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삶·죽음에 대한 색다른 시선으로 눈길을 끈다.
 
연극 '애도하는 사람'은 제140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덴도 아라타의 동명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일본에서 영화, 드라마 작가로 활약 중인 오오모리 스미오가 희곡으로 각색했고, 두산아트센터가 ‘이타주의자’를 주제로 한 2018 두산인문극장의 마지막 연극으로 이 연극을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의 김재엽 연출과 신승렬 무대 디자이너, 영화 ‘실미도’의 한재권 음악감독 등이 참여했다. 두산아트센터는 지난 12일 이 작품의 전막을 언론에 공개했다.
 
극의 주인공 시즈토는 젊은 청년으로, 죽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다. 그는 정해진 거처도 직업도 없이 그저 어디에선가 죽음을 맞은 낯선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일본 전역을 떠돌아다닌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행동 이면에는 죽은 이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 친구 겐지의 1주기를 잊어버렸다는 죄책감, 전쟁으로 죽은 제자들을 평생 애도하며 살았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등으로 그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애도에 나선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에는 잡지기자 고우타로와 남편을 살해한 여자 유키요가 있다. 고우타로는 시즈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그의 뒤를 캐고, 남편의 망령에 시달리는 유키요 역시 시즈토의 진심을 의심하며 애도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그를 따라다닌다. 이들은 시즈토에게 생판 모르는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악인의 죽음도 애도할 가치가 있는지 묻는다.
 
시즈토가 생각하는 애도란 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떤일로 감사받았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악인마저도 살면서 한 번쯤은 타인에게 사랑받고 감사받았던 존재다. 이같은 시즈토의 생각은 고우타로, 유키요의 생각과 충돌을 빚고, 그 갈등 속에서 고우타로와 유키요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과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할 수 밖에 없던 과거를 털어놓게 된다.
 
‘애도하다’의 일본어 단어(이타므, 悼む)에는 누군가의 죽음을 아파하고 마음이 상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조롱과 오해 속에서도 묵묵히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즈토의 모습은 인간이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어디까지 함께 아파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세 인물 외에도 암투병 중인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 임신한 상태에서 약혼자와 파혼한 시즈토의 여동생 미시오 역시 죽음과 삶을 둘러싼 저마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전국향, 김승언, 김소진, 김동원, 박희정 등 다섯 배우들이 4면의 객석으로 둘러싸인 무대 위에서 펼치는 밀도 높은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생사의 순환을 상징하는 ‘나이테’를 모티브로 객석 위쪽에 투사되는 영상 이미지도 볼거리를 더한다.
 
이번 공연을 이끄는 김재엽 연출은 연출노트를 통해 “’애도하는 사람’이란 타인을 향해 슬픔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타인과 함께 아픈 사람, 아픔을 느끼는 사람,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전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배우들의 묵직한 연기로 담아낸 ‘애도하는 사람’은 7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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