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42번가’, 배우로서 전환점이 될 작품”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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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 환상적인 탭댄스로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 쇼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가 다시금 무대에 올라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도 큰 즐거움을 주는 공연이지만, 꿈을 향한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참여하는 배우들에게도 더욱 각별한 작품이다.
 
이번 시즌에서 ‘빌리 로러’ 역으로 새로 합류한 정민 역시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무척 즐겁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 “원없이 춤을 추고 싶어서” 뮤지컬을 시작했던 그였기에, 이번 작품은 춤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 공연이자 배우로서의 꿈을 더욱 크게 그리게 해준 공연이라고. 실제로 밝고 활달한 자신의 본 모습을 ‘빌리’에 녹여내 고난도의 탭댄스를 소화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발견일 것이다. 데뷔 13년차, 그간 많은 연극과 뮤지컬에서 다채로운 얼굴로 변신해온, 그리고 ‘브로드웨이 42번가’를 기점으로 더 크게 지평을 넓혀나갈 배우 정민의 이야기.
 
Q ‘브로드웨이 42번가’와의 첫만남은 어땠나요. 예전에 공연을 보신 적이 있죠?  
전재홍 배우가 빌리를 했을 때 공연을 봤어요. 처음엔 조금 올드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는데 전혀 그런 느낌 없이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아무래도 배우들의 이야기다 보니 공감도 많이 됐고, 탭댄스의 현란함, 무대장치의 화려함에 매혹됐던 것 같아요.
 
Q 실제로 빌리 역을 맡아서 출연해보니 어떠셨나요. 그간 연기하신 캐릭터 중 ‘사의 찬미’의 사내처럼 무게감 있는 캐릭터들이 특히 기억에 남아서 그런지 이번 무대 위의 모습이 좀 새로웠어요.  
팬 분들이 저에 대해 생각하시는 이미지와 원래 성격 사이에 갭이 좀 있어요.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자기 안에 여러 성격을 갖고 있지만, 원래 제 성격 자체가 많이 활발하고 애교도 많거든요. 남자들끼리 있을 때는 약간 거친 상남자 스타일인데(웃음) 형, 누나들이나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애교 많은 분위기메이커에요. 근데 공연을 할 때는 저한테 그런 역을 잘 안 시켜주시더라고요. 제작사 분들은 평소의 제 모습을 잘 모르시니까.
 
예전에 전재홍 배우를 보면서도 ‘만약 내가 이 공연을 하게 되면 저 역할을 맡을 것 같은데, 되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실제로 이번에 하게 됐는데, 빌리라는 역할이 저랑 잘 맞고, 제 실제 성격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빌리가 겪는 일들도 다 내가 언젠가 한번쯤 거쳐온 얘기니까 굳이 뭘 설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빌리가 떠오르는 신인배우이다 보니 그가 가진 에너지와 혈기왕성함을 어떻게 잘 보여줄지를 고민하긴 했어요. ‘허당끼’를 좀 넣으면 그런 모습이 살아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모습을 좀 넣었는데, 그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캐릭터도 살리고 생동감도 살리고.
 
Q ‘허당끼’도 빌리와의 공통점인가요?(웃음)
아뇨, 그렇진 않아요. 저 되게 꼼꼼하고 섬세해요. 그래서 좀 피곤할 때도 있어요.
 
Q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탭댄스를 빼놓을 수 없죠. 탭댄스 연습은 어떠셨나요.
힘들었죠. 살도 상당히 많이 빠졌고요. 춤에는 좀 자신이 있어서 되게 빨리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간이 걸려서 힘들게 습득할 줄은 몰랐어요(웃음).
 
제가 원래 춤을 원없이 추려고 뮤지컬을 시작했어요. 예전에 한창 춤에 빠져 살았거든요.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평가를 받으면서 춤을 출 수 있을지를 찾다가 뮤지컬을 하게 됐죠. 그 때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아가씨와 건달들’ 같은 쇼뮤지컬이 많아서, 나도 저런 데서 원없이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대하고 사회로 뛰어들 나이가 되니까 그런 작품들이 다 사라지고 좀 무게감 있는 작품들이 나오는 시대가 된 거에요. 그리고 제 이미지도 좀 그래 보이는지 한 번 무거운 역을 맡으니까 계속 그런 역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막상 뮤지컬을 하는 동안에는 춤을 실컷 춰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춤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죠.
 
이번에 탭댄스를 연습하면서 그 갈증을 많이 풀었어요. 정말 원없이 춤을 춰봤죠. 그런데 탭이 제가 생각했던 춤사위와는 좀 다르더라고요. 춤과 악기가 동시에 있는 느낌이라 정말 어려워요. 기존에 탭을 추던 친구들을 보면서 너무 신기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하지, 싶고. 그래도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고, 결국 해낸 것에 대해 스스로 쓰담쓰담하고 있긴 한데(웃음) 그 과정은 정말 제 뮤지컬 인생 중에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여러 작품을 하면서 기타도 배워보고 피아노도 배워봤지만,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근데 또 그 중에서 완성도는 이게 제일 높은 것 같아요(웃음).
 
Q 한동안 창작뮤지컬을 많이 하셨잖아요.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은 창작뮤지컬에 비해 배우가 재량껏 움직이는 데 제한이 많다고들 하는데, 그런 답답함은 없었나요?
제가 2012년에 ‘캣츠’를 했는데, 그 때는 (동선이) 다 정해져 있었어요. 노래를 어디서 끝내서 어디로 몇 걸음 가야 하는지 등이 다 정해져 있었죠. 그 때 제가 맡은 역할이 빌리보다 훨씬 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캐릭터였는데도 그런 규칙이 다 정해져 있다 보니 솔직히 좀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근데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탭댄스를 기반으로 해서 그런지 굉장히 자유분방해요. 그러면서도 그 안에 칼군무가 있다는 게 이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정확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큰 부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 규칙은 지켜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자유로워요. 좀 특이한 공연이에요. 매력적이죠.
 
Q 아까 20대 때 춤에 한창 빠졌었다고 하셨는데, 그 땐 춤이 뭐가 그렇게 좋았나요.
고3 여름방학 때 친구가 갑자기 연극영화과에 가서 연출을 하겠다는 거에요. 우린 인문계였으니까, 엉뚱한 얘기였죠. 근데 그 말이 머릿속에서 안 가시는 거에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춤 추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 쪽으론 좀 타고난 게 있어서, 습득력이 빨랐어요. 다른 가수나 댄서가 춤 추는 걸 보고 바로 캐치해서 바로 출 수 있었어요. 중학교 때 저녁 7시가 되면 ‘정민의 댄스스쿨’이 열렸죠(웃음).
 
아무래도 잘 하는 일에는 흥미도 빨리 붙잖아요. 그때는 연극영화과와 춤이 다 비슷한 쪽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친구 얘기를 듣고 그럼 나도 같이 갈래, 해서 (연기)학원에 다니고 대학에 들어갔죠. 들어가서 처음 하게 된 작품이 ‘코러스 라인’ 이에요. 근데 그게 또 춤으로는 대부 격의 작품이거든요. 그때 재즈 댄스를 처음 접하고 그날부터 정말 밥 먹고 춤밖에 안 췄어요. 하다 보니 다른 장르도 보이고, 그렇게 몇 년 춤에 빠져 살다가 뮤지컬을 하게 된 거죠.
 
Q 워낙 섬세하고 남의 기분을 신경 쓰는 성격이라 배우 생활이 힘들었다는 얘기를 예전 인터뷰에서 하셨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문제가 해결되었나요?
처음엔 그런 부분 때문에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 저 선배의 기분이 어떤지, 저 후배가 내 눈치 봐서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건 아닌지, 그런 게 다 신경쓰였거든요. 근데 배우들끼리 서로 민감한 부분도 있으니까, 직접 가서 말하지는 못 하고 혼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근데 지금은 그게 오히려 도움이 돼요. 그런 것들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양보했던 경험이 배우로서의 능력치를 좀 더 좋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사람이 대부분 자기가 못하는 쪽은 잘 안 건드리거든요. 그러면 분명히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혀요. 근데 상대 배우에게 맞춰주기 위해 내가 못하는 부분을 연습하게 되면, 그 쪽의 능력치가 높아지거든요.
 
배우의 능력치는 어느 한 쪽으로만 무한히 증폭될 수는 없어요. 다 같이 고루고루 높아지는 거거든요. 슬픈 감정을 잘 표현할 줄 알아야 기쁜 감정도 잘 표현할 줄 알게 되고. 물론 저도 지나보니까 알게 된 거죠. 어쨌든 내가 잘 못하는 부분도 타인에게 맞춰서 노력하다 보니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어도 어느 순간 터닝 포인트가 왔던 것 같아요. 서른 중반쯤? 그 때부터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더라고요. 거기 오기까지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인생이 항상 그런 것 같아요. 힘든 순간도 잘 버티면 분명히 이득을 보는 것 같아요. 원래 제가 긍정적인 성격이긴 해요(웃음).
 
Q 슬럼프에 빠졌을 때 배우 활동을 중단하고 잠시 제작사를 차리신 적도 있다고요. 나중에 다시 제작자 혹은 연출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나요.
연출가는 머리가 정말 좋아야겠더라고요. 그 ‘머리’라는 게 타고난 머리가 아니고 정말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출도 해보고 싶긴 하지만 자신이 없어요. 제작은 돈도 많이 들고 리스크도 크다 보니까, 나중에 혹시 여유가 된다면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무료공연을 제작한다든지, 배우들을 위한 레슨을 해준다든지.
 
Q 요즘 동료 배우들이 드라마 등 매체로 많이 진출하고 있는데, 그쪽으로는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부끄러움을 워낙 잘 탔고, 지금도 남들한테 주목받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끼 같은 건 되게 많았는데 그걸 저만 알았죠(웃음).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도 일부러 내가 부를 수 있는 것보다 더 못 부르곤 했어요. ‘야, 너 잘 한다’하고 칭찬하고 쳐다보는 게 부끄러워서. 근데 무대는 다 약속이 된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무대는 괜찮은데, 다른 공간에서는 아직 부끄러움이 되게 많아요. 그래서 방송도 ‘복면가왕’과 비슷한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안 한다고 한 경우가 많아요. 저는 무대에 최적화된 것 같아요.
 
드라마도 좀 자신이 없어요. 드라마는 순발력이 좋아야 하는데 전 순발력은 좀 없거든요. 진득하게 대화도 많이 나누고 연습을 많이 한 다음 연기하는 게 저랑 맞아요. 근데 나중에 영화는 꼭 해보고 싶어요. 영화는 제작기간을 좀 길게 잡고 사전제작을 하잖아요. 그런 매체는 꼭 해보고 싶어요.
 
Q 끝으로, 앞으로 배우로서의 계획이나 바람을 얘기하신다면.  
원래 배우 생활을 길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해보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근데 사람이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계획이 바뀌잖아요. 제가 결혼하고 와이프한테 물어봤어요. 배우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직업이니까, 만약 내가 가정을 위해서 다른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한다면 나는 그만둘 의향이 있다고. 물론 마음 속에 미련이 남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난 10년간 최선을 다해서 원없이 해봤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근데 와이프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직장을 왜 다니는지 아냐고, 자기가 그런 고민할 필요 없이 계속 배우 생활 하라고 다니는 거라고. 그 대답을 듣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걸 어차피 계속 할 거면 책임감을 갖고 더 열심히 해서 배우라는 직업을 안정적인 직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선배 배우 분들 중에도 되게 안정적으로 롱런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거든요.  나도 지금처럼 나태해지지 말고 열심히 해서 배우로서의 능력을 계속 가져가면 롱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40대가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뮤지컬에 전념해서 열심히 하고, 40대부터는 뮤지컬에 시간을 조금 덜 할애하더라도 영화나 다른 쪽의 문을 두드려볼까 해요.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영화나 매체 쪽에서 배우들의 나이제한이 별로 없잖아요. 중년의 나이로 영화 판을 주름잡고 계시는 선배님들이 계시니까 후배로서 고맙죠.
 
그래서 지금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만난 게 저는 너무 감사해요. 다른 장르의 춤은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힘들어지는데, 탭댄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춤이에요. 안무감독님께 물어보니까 (탭댄스) 거장 중에 환갑이 넘은 분도 있대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이 공연이 끝나도 계속 안무감독님 따라 다니면서 평생 탭댄스를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면 60대, 70대가 됐을 때도 나만의 무기가 하나 있다는 게 엄청난 거잖아요.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만난 건 나중에 돌아봤을 때 전환점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대단한 작품이에요(웃음).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샘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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