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로의 변신, 눈물만 흘렀죠” ‘프랑켄슈타인’ 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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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반듯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비춰지는 뮤지컬 배우 카이는 사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온 남자다. 청소년기에는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을 딛고 서울예고를 수석 졸업해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했고, 성대결절로 또다시 좌절의 시간을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해 마침내 정상급 배우로 자리잡았다. 데뷔 전 혹독한 다이어트로 35kg의 체중을 감량한 일도 유명하다.
 
그런 카이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는 올해 세 번째 무대에 오른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앙리 뒤프레와 괴물을 연기한다. 거칠고 야성적인 괴물로의 변신은 그에게 ‘벤허’에 이은 또 다른 파격 변신이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테지만, 무대에 선 그는 처절한 슬픔을 토해내는 괴물로 완연히 분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23일 진행된 인터뷰는 그렇듯 치열하고 꿈 많은 카이의 세계를 잠시 엿본 자리였다. ‘프랑켄슈타인’의 여러 주제를 아우르는 진지한 생각부터 앞으로의 바람들까지, 그의 이야기에서는 자유롭고 철학적인 공상가로서의 면모와 거침없는 추진력이 동시에 느껴졌다. “내 본성은 나쁘다, 괴물처럼”이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인터뷰 말미에 그가 눈을 빛내며 전한 이야기는 그가 결국 ‘사랑’으로 그 모든 것들을 꿈꾸고 또 이뤄가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Q ‘프랑켄슈타인’에서 앙리 뒤프레와 괴물을 연기하시죠. 먼저 앙리 뒤프레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앙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을 만큼 깊은 신뢰와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단지 하나의 계기로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앙리가 혼자 계속 질문하고 탐구해왔던,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를 (빅터가) 건드려 줌으로써 그게 도화선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앙리는 늘 진정한 생명의 재탄생이란 무엇일까, 창조란 무엇이며 과학은 무엇일까에 대해 끊임없는 내적 탐구와 갈등을 겪어오던 중에 마침 전쟁터에서 빅터를 만나서 자신의 생각을 뒤집게 된 거죠.  
 
Q 그간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괴물은 특히 큰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괴물이라는 캐릭터에 접근했나요.
일단 처음엔 ‘괴물’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었던 것 같아요. 괴물은 굉장히 힘이 세고 어떤 면에선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이지만, 과연 그는 완벽한 존재일까? 빅터가 당시로선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괴물을 탄생시켰지만, 과연 괴물은 진화적인 방향으로 탄생한 합당한 존재인가, 어쩌면 결국 다시 퇴화된 존재는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죠.
 
우리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 뭔가를 계속 진화시키는 것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사실은 그로 인해 오히려 인류가 후퇴하는 부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빅터 역시 인간을 재탄생시키기 위해 연구를 해왔지만, 진짜 본질적인 부분은 놓치고 있지 않았나, 그가 과학을 통해 창조하려고 했던 생명의 모습과 우리가 진짜 추구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은 차이가 있다. 그게 제 괴물 탄생에 대한 근원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Q 빅터가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사랑으로 돌아가려는 노력.
 
그래서 괴물은 논문, 과학, 진화 등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앙리 뒤프레라는 학자와 가장 큰 간극이 있는 캐릭터로 탄생시키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본성, 야성, 유아적, 원초적 등의 단어로 정리되더라고요. 과학적으로 진화된 기계적인 존재, 복수에 눈이 먼 존재가 아니라 가장 순수하고 비논리적인 영혼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마지막에 괴물이 빅터에게 “이게 나의 복수”라고 이야기할 때도, 사실 겉으로는 ‘복수’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사랑’이라고 말하거든요. 너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가르쳐주기 위해서 내가 이런 행위를 하는 거라고. 물론 그 방법이 옳지는 않지만, 괴물로서는 그것이 인간에게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려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Q 괴물이 갓 태어나 비틀거리며 걷는 법을 익히는 순간에는 어떤 감정으로 연기를 하시는지 궁금해요. 그 때는 괴물이 아직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잖아요.
그 순간엔 나를 냇가의 돌멩이라고 생각해요. ‘굿바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는데, 거기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에게 돌을 쥐어주면서 들려주는 얘기가 있어요. 옛날에 인디언들은 말이 없었을 때 자신의 감정을 돌멩이로 표현했는데, 화가 났을 때는 모가 난 돌멩이를, 행복할 때는 맨들맨들한 돌멩이를 상대방에게 쥐어 줬다고. 저도 그 장면에서 괴물의 어떤 감정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쥐어 졌을 때 상대방이 내 감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그런 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얘기하신 대로 ‘프랑켄슈타인’은 신, 생명, 사랑, 우정 등 많은 요소들을 담은 작품입니다. 연습 과정에서 또 어떤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나요.    
너무 많아요. 그중 하나는 ‘이중성’ 이죠. 단순히 1인 2역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우리 모두에겐 빅터와 자크, 엘렌과 에바 같은 양면성이 실제로 존재하거든요. 한 배우가 자크를 연기할 때는 치졸하고 비열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빅터를 연기할 땐 세상 누구보다 위엄있고, 당당하고, 권위적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모든 모습이 우리 안에 있거든요. 제가 제일 심하고요(웃음). 그런 것들을 드라마적으로 명확하게 잘 보여주는 게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 같아요. 작품 속의 ‘숨은 그림 찾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연습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을 꼽는다면요.
괴물로서의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죠. 연습할 때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괴물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려고 다가갔을 때, 어떻게 해도 ‘나는 널 이해해’라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괴물의 상처는) 한 생명체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처였으니까. 그를 이해하려고 했을 때 다만 눈물만 흐를 뿐이었고, 그런 감정들이 저를 제일 힘들게 했죠. 농담 삼아 종종 말했지만, 제가 이렇게 다이어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식단도 아니고 운동도 아니고 감정의 소모입니다(웃음).
 
Q 공연이 끝나고 나서 어떻게 괴물의 처절한 감정에서 빠져나오나요.  
그게 인간 정기열로서의 최고의 난제인데(웃음), 성격상 그걸 잘 분리를 못 해요. 그래서 공연 끝나고 여전히 힘들어할 때도 많고, 심지어 작품이 다 끝난 후에도 떨쳐내기 힘들 때가 많아요. 특히 ‘벤허’ 때는 그 작품을 하고 나서 ‘더 라스트 키스’를 했는데 초반부에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특별히 다른 방법은 없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려야죠.
 
Q 만약 신의 능력에 도전할 수 있다면, 인생 혹은 세상에서 바꾸고 싶은 게 있나요?
인터넷을 없애고 싶어요. 저는 인류가 인터넷의 발전으로 심각한 오류에 빠졌다고 생각해요. 전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도 길을 잃었다는 사람을 한 명도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든 다 집에 왔거든요. 근데 네비게이션이 생기고 나서 오히려 약속 시간에 늦거나 길을 잘못 찾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린 왕자’에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는 말이 있잖아요. 네비게이션이 없을 때는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네 시에 약속이 있으면, 세 시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던 것 같아요. 근데 요새는 (기기를) 눌러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나오니까 딱 그 시간에, 혹은 더 늦게 나가게 돼요. 언제든 원하면 휴대폰으로 전화할 수 있으니까 설렘이나 궁금증이 없어졌고, 애인의 핸드폰 번호도 몰라요. 또 SNS 때문에 사생활이 쉽게 침해 받고, 남의 시선도 의식하게 되고요. 사람들 간에 나눠야 할 소통의 본질을 깎아먹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다시 ‘프랑켄슈타인’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물론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썼던 19세기에는 지금과 같은 세상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빅터가 과학으로 탄생시킨 괴물의 이야기가 인터넷 같은 문명의 진화에 대한 은유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Q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면 늘 치열하게 도전하고 이뤄내는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호기심 같아요.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궁금증과 지적인 호기심. 대학 때 과방에 갔는데 어떤 선배가 ‘수학의 정석’을 풀고 있는 거에요. 자기는 수학적 연산이 풀렸을 때의 쾌감이 너무 크다고 하더라고요. 제 호기심도 그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전 공상가에요. 머릿속으로 꿈을 꿔보고, 이뤄보고, 뭔가가 되어보는 걸 즐겨요. 그리고 실제 현실에서 나의 노력으로 해답을 찾고, 머리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눈에 보이는 현실로 만들었을 때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아요.
 
근데 확실한 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인내가 필수라는 거에요. 그게 제 삶의 모토에요. 참지 않으면, 버티지 않으면 얻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아무리 도전을 한다고 해도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아요. 전 프로기 때문에, 철저한 계산과 준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뭘 하든 그게 내 능력치 안에 있다는 결론이 나야 도전하는 거죠.
 
근데 만약 제가 두 번째 삶을 산다면, 이번과는 반대로 살아보고 싶어요. 힘들거든요(웃음). 그것 역시 호기심이기도 하고요. 좀 게으르게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Q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지 올해로 10년째인데, 그에 대한 소감은 어떤가요.
일단 뮤지컬을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삶의 초점이 대부분 뮤지컬에 맞춰져 있는데, 이렇게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사는 것은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부족함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꾸준히 기회를 얻어 무대에 설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고요. 너무나 능력 있는 배우들이 많거든요.
 
또한 저는 클래식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고, 원래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거든요. 근데 제가 오페라에서 뮤지컬로 방향을 바꿨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뮤지컬이 ‘현대 시대의 오페라’라고 생각해요. 마이크가 있고, 음악 장르가 현대화 되고, 악기가 다양해 졌을 뿐이지, 결국 뮤지컬도 클래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뉴 제너레이션 클래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부심과 기쁨이 커요.
 
Q 또 새롭게 호기심이 생긴 분야가 있나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최근 가장 큰 호기심이 생긴 게 영화 ‘라라랜드’였어요. 뮤지컬과 영화, 혹은 뮤지컬과 드라마 등의 콜라보레이션이요. 구체적인 것을 생각한 건 아닌데, 앞으로 21세기와 22세기를 연결하는 통로는 콜라보레이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까지 뮤지컬 영화에 좀 벽을 느끼는 것 같은데, ‘라라랜드’가 그런 벽을 좀 허물어준 느낌이에요. 앞으로 한국에서도 그런 작업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고, 기회가 된다면 그런 작업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중국 뮤지컬에도 관심이 많아요. 어느 날은 ‘동상이몽2’에 나오는 추자현 씨를 보는데 문득 그 분이 왜 중국에 가서 드라마를 찍었는지, 어떻게 중국에서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중국의 뮤지컬은 어떤지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날 바로 중국에 갔어요. 중국이 문화 예술의 혁명을 가져올 준비가 돼 있는 나라이고, 뮤지컬도 곧 그렇게 될 거라는 비전을 발견한 계기가 됐죠. 이번에 한국관광공사의 홍보대사를 맡게 돼서 중국에 또 가게 됐는데, 앞으로 한국 창작뮤지컬의 선진성, 우리 한국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 경험과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중국에 알리고 싶어요.
 
Q 예술은 결국 자기만의 결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앞으로 아티스트로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 말이 좀 부정확하게 들린다면…사랑이 넘치는 배우, 앞뒤가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갖고 있는 본성은 나빠요, 괴물처럼(웃음). 그러나 배우로서 무대에 선다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래야 무대에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배우가 될 것 같고, 또 내가 느낀 감정으로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꾸 이야기하게 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사랑 같아요. 나 혼자 잘되려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2014년에 시작한 ‘뮤드림’ 프로젝트도 내가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시작하게 된 거에요. 뮤지컬 표가 십 몇 만원인데, 여건이 넉넉지 않은 아이들은 공연이 주는 감동과 유희, 혹은 깊은 생각들을 접할 기회가 없다는 게 참 안타깝더라고요. 그리고 뮤지컬이 더 성장하려면, 잠재 고객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때부터 문화소외계층의 청소년들을 초대해서 공연을 보여줬어요. 공연을 제작하는 분들께도 정당한 대가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초대권이 아니라 유료 티켓을 사비로 구매했죠.
 
그런 목표 아래 ‘뮤드림’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참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공론화를 시켜서 홈페이지(www.mudream.co.kr)를 만들었어요. 앞으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언젠가는 ‘뮤드림’이라는 이름으로 ‘단관(단체관람)’을 잡는 게 제 꿈이에요(웃음).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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