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따스한 휴머니즘 담았다, 연극 ‘생쥐와 인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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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과 퓰리쳐상을 모두 수상한 존 스타인벡(1902~1968)은 경제대공황이 일어난 193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 등의 명작에 담아낸 작가다. 젊은 시절 여러 목장, 공장, 공사장에서 일했던 그는 비참한 민중들의 삶을 공감과 연민의 눈으로 포착해 써내려 갔다.   
 
1937년 출간 직후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공연된 ‘생쥐와 인간’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간결한 형식과 따스한 감성을 지닌 우화 같은 작품이다. 일자리를 찾아 시골 농장을 전전하던 두 청년의 비극을 담은 이 작품이 국내 처음으로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무대에 올랐다. 브로드웨이 대극장 공연을 소극장 무대로 옮겨오며 무대와 캐릭터 설정 등을 한국 정서에 맞게 바꾼 공연이다. 지난 1일 만난 이 무대에서는 원작의 따스한 감성이 생생히 전해졌다.  
 
거장의 휴머니즘 느껴지는 무대...긴 여운
극은 따뜻하고 소박한 정서가 담뿍 담긴 1장으로 시작된다. 한 농장에서 사고를 치고 간신히 도망쳐 나온 조지와 레니는 일거리를 찾아 또 다른 농장을 찾는다. 덩치 크고 과하게(?) 힘이 센, 그러나 지능은 낮은 레니를 데리고 다니는 작고 영민한 청년 조지는 “나 혼자였으면 인생 쉽게 살 수 있었을 텐데”라며 신경질을 부린다.
 
레니는 조지의 타박에도 그저 헤헤 웃기만 한다. 동물이나 벨벳 천의 부드러운 감촉을 좋아하는 그는 당장 내일의 일거리가 없는 상황에서도 토끼를 갖고 싶다거나 케첩이 먹고 싶다는 말로 조지를 답답하게 한다. 그러나 집도 돈도 없는 가난한 삶에서 이들은 누가 뭐래도 서로밖에 의지할 데가 없는 특별한 사이다.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언젠가 자기들만의 농장을 갖는 꿈을 그리며 잠드는 두 청년의 정겨운 모습에 관객은 ‘아빠 미소’를 지으며 빠져들게 된다.
 
다행히 두 사람은 다음날 새로 도착한 농장에서 일을 구한다. 이곳에는 온건한 성품의 소몰이꾼 슬림과 한쪽 팔이 잘린 늙은 일꾼 캔디,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 유쾌한 일꾼 칼슨, 농장주의 아들로 성격이 포악한 컬리와 그의 아내가 있다. 조지와 레니는 차차 이곳에 적응하며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에 휘말려 위기에 빠진다.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을 맺지만, 극 전반에 깔려있는 두터운 인간애는 극이 끝난 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레니 때문에 번번이 곤경에 빠지면서도 끝까지 그를 책임지려 노력하는 조지, 조지를 한없이 신뢰하는 레니, 이들의 관계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슬림 등의 모습에서 인간을 향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척박한 삶을 살아가지만, 신의와 우정,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깨끗한 성품과 소박한 꿈은 극의 비극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배우들의 열연이 감동 더해, '깨알 유머’도 곳곳에
배우들은 탄탄한 열연으로 무대를 이끌었다. 문태유는 레니와의 꿈을 어떻게든 지켜내려 애쓰는 영민한 청년 조지로, 임병근은 대책 없이 해맑고 아이 같은 레니로 완연히 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컬리 부인 역의 손지윤을 비롯해 1인 2역을 맡은 육현욱, 김대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장면마다 표정, 몸짓, 어조 등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두 인물로 분해 몰입도를 높였다.
 
결말은 비극으로 치닫지만, 이 공연은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곳곳에서 웃음을 이끌어낸다. 레니 역 임병근은 엉뚱하고 순수한 표정과 대사로, 칼슨으로 분한 김대곤은 유쾌하고 수다스런 모습으로 ‘깨알웃음’을 더했다.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 아래 대나무 벽으로 둘러싸인 무대도 극과 어울려 아름다운 감성을 더한다. 극의 마지막, 늘 레니와 함께였던 조지가 혼자 노을을 바라보며 선 뒷모습이 오랜 잔상을 남겼다. 신주협, 이우종, 최대훈, 양승리, 백은혜, 김지휘, 최정수 등 다른 캐스트의 공연도 기대된다.
 
연극 '생쥐와 인간'은 오는 10월 14일까지 대학로 TOM 1관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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