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정말 실화야? 공연의 모티브가 된 놀라운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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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실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감동, 눈물, 희망을 찾아 공연장을 방문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무대에서 펼쳐지는 많은 이야기들은 허구보다 더욱 허구 같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물론 무대에서는 그 현실을 극적으로 압축, 가공하고 무대, 음악, 의상 등 다양한 요소를 더했지만 말이다. 지금 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또는 곧 무대로 돌아올 화제작 중 현실의 드라마틱한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은 뭐가 있을까.
 
수만 명의 아이들을 납치해 불구자로 만든
뮤지컬 ‘웃는 남자’ 속 콤프라치코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창작뮤지컬 ‘웃는 남자’(7.10~8.26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9.4~10.28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는 입이 찢어져 흉측한 상처를 가진 그윈플렌의 삶과 사랑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그윈플렌의 흉터는 ‘콤푸라치코스(The Comprachicos)’라는 인신매매단에 의해 생긴 것이다. 이들은 아기였던 그윈플렌을 부모로부터 납치해 입을 찢어 상처를 남기고 그를 눈보라 속에 버린다. 이후 그윈플렌은 약장수 우르수스의 손에 거두어져 자라 유랑극단의 광대가 되고, 그의 공연을 본 조시아나 공작 부인의 유혹으로 귀족들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남의 아이를 납치해 고의로 흉터를 남기는 인신매매단, 그리고 기이한 장애나 흉터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유희처럼 즐기는 귀족들.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이는 실제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17세기 영국 귀족들은 기형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비싼 값에 사서 구경거리로 삼았고, 그러자 아예 멀쩡한 아이들을 납치해 불구자로 만드는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가 생겨났던 것이다.
 
스페인어로 ‘아이들을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콤프라치코스는 극 속에서 보다 훨씬 더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납치한 아이들의 입을 찢는 것은 물론, 척추와 관절을 뒤틀거나 신체 일부를 절단해 기형으로 만들었다. 당시 50년간 수만 명의 아이들이 그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빅토르 위고는 ‘웃는 남자’를 통해 민중들의 고통과 눈물을 유희 거리로 삼는 귀족들의 잔인한 행태를 고발했다. “부유한 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지은 것”이라는 작가의 통렬한 외침은 무대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거세당한 수많은 소년들,  
뮤지컬 ‘파리넬리’와 카스트라토  

2015부터 이어진 세 차례의 공연에 이어 이번에는 낭독공연이라는 특별한 형식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될 ‘파리넬리’(8.11~19,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는 18세기 유럽에서 활동한 실존인물 파리넬리의 삶을 재구성한 창작뮤지컬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키워드는 ‘카스트라토’다. 카스트라토(Castrato)는 ‘거세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Castrare)에서 나온 말로, 변성기 전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거세를 한 남성 성악가를 가리킨다. 17세기 말 카톨릭 교회가 여성이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카스트라토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후 교황이 공식적으로 카스트라토 금지령을 내린 1903년까지 수많은 소년들이 거세를 당했다. 유명한 카스트라토가 되면 엄청난 돈과 명예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소수의 성공한 카스트라토 외에는 대다수가 가난을 벗어나지도, 남성으로서의 행복을 누리지도 못한 채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전설의 성악가 파리넬리는 생전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그 역시 자의로 거세를 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결정으로 카스트라토가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뮤지컬에서는 파리넬리와 작곡가로서의 야망을 품은 형 리카르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파리넬리의 내적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파리넬리와는 반대로 여자이지만 무대에 서고 싶어서 남장을 하는 가상의 인물 안젤로도 등장해 더욱 풍성한 드라마를 완성한다. 뮤지컬을 위해 재편곡된 ‘울게 하소서’ ‘사라방드’ 등의 명곡을 듣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연극 ‘에쿠우스’의 모티브가 된
말 26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라틴어로 동물 ‘말’을 뜻하는 제목의 ‘에쿠우스’(9.22~11.18,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는 영국의 극작가 피테 쉐퍼가 쓴 연극이다. 국내에서는 1975년 초연부터 큰 충격을 던지며 40년 이상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 작품은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찌른 17세 소년 알런과 그의 정신치료를 맡은 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를 담았다.
 
피터 쉐퍼는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시골 마을에 드라이브를 떠난 어느 날 친구로부터 말 26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년의 부모는 엄격한 광신도였고, 마구간에서 한 소녀와 정사를 벌인 소년은 말들이 자신의 행동을 부모에게 알릴까 봐 눈을 멀게 했다는 얘기였다.
 
그 이야기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피터 쉐퍼는 2년 후 ‘에쿠우스’를 완성했고, 이 희곡은 그해 바로 무대에 올라 큰 성공을 거뒀다. 피터 쉐퍼는 실제 사건을 저지른 소년의 이름도, 그의 동기도 알지 못했지만, 이 사건에 자기만의 통찰을 더해 종교와 신화, 성(性)과 충동과 금기에 대한 화두를 담은 파격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알런을 통해 원시적 욕망에 눈뜨는 다이사트의 심리 변화를 비롯해 말 6마리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군무 등이 공연의 큰 매력으로 꼽힌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HJ컬쳐, 극단 실험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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