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추정화 연출 “현실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불편한 이야기, 저라도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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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초연부터 2018년 세 번째 시즌까지, 지난 3년간 뮤지컬 ‘인터뷰’의 성장 속도는 놀라웠다. 초연 당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것은 물론, 일본에 이어 미국 오프-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며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준 것. 하지만 ‘아동 학대’가 낳은 비극을 보여주는 불편한 이야기는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 논란을 낳기도 했다. 가해자 옹호를 비롯해 약자를 향한 지나친 폭력 등에 대한 비판 등이 제기됐던 것이다.

지난 3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추정화 연출과의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그의 생각을 솔직하게 들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세 번째 시즌을 거듭하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위해 고민했다”는 추정화는 대답 하나하나에도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다. 뜨거움이 빠지는 순간 ‘인터뷰’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에 매 시즌 ‘인터뷰’를 올릴 때마다 열정을 쏟을 수밖에 없다는 추정화. 작품을 올린 지금 조금은 지쳐 보였지만, 여전히 가슴 속은 뜨거웠던 그와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 해당 인터뷰는 뮤지컬 '인터뷰'의 결말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Q. 조금 무거운 질문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번 시즌 첫 공연에서 영준 씨가 무대에서 상처를 입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어요. 당시 현장에도 계셨다고 들었는데요. 정말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영준 씨의 현재 상태는 어떤지요?
추정화(이하 추) :
공연 중 영준 씨가 탁자에 코를 부딪치면서 일어나게 된 사고였는데요. 정말 너무 놀랐어요. 사실 처음 제 자리 쪽에서는 그렇게 피가 나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영준 씨가 공연을 이어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괜찮은 건가 싶어 일단 지켜보고 있었죠. 그런데 정말 심각한 상황이더라고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튀어 나갔어요. 급하게 119구급차를 타고 같이 병원을 가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제발 큰 사고가 아니길 바라면서 기도만 했어요. 제가 너무 무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추정화 연출은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께서 코뼈가 부러진 건 아니라고 하셔서 천만다행이다 싶었어요. 지금은 완치가 되어서 오는 12일 다시 무대에 오를 예정이에요. 영준 씨는 더 빨리 돌아오고 싶어 했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회복된 상태에서 공연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아서 말렸어요.
 
세 번째 시즌 맞은 인터뷰
균형감 맞춘 결말로 풍성함 더해


Q. 벌써 ‘인터뷰’가 세 번째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들을 보완하고자 하셨는지요. 결말 부분이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추 :
이번 시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유진의 최후 진술 부분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였어요. 초연에는 맷에 대해 유진의 안타까운 감정이 더욱 큰 모습으로 그려지고요. 재연 때는 ‘맷에게 당한 희생자 아버지가 유진이면 어떨까’에 착안해서 결론을 내려봤죠. 이번 시즌에선 가장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이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유진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그려봤어요. 유진을 맡은 배우들과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시즌 결론이 가장 나은 선택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Q. 초연에는 유진이 맷의 아픔에, 재연 때는 희생자들의 아픔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그 사이에서 균형감을 잡으려고 하신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작은 변화기는 하지만, 결말을 바꾼다는 것이 작가/연출가 입장에선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초연, 혹은 재연의 결말을 좋아했던 관객들은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으니깐요.
추 :
작품을 만들 때 많은 관객들이 와 닿을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하긴 하죠. 하지만 매 시즌마다 바뀐 몇몇 부분들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완전히 바꾸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A라는 방향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더 이야기가 풍성하고 재미있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는 거죠.

전 공연의 묘미는 기록되지 않는, 현장성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점 때문에 관객들이 공연을 사랑하는 것 같고요. 매 공연마다 판에 박힌 듯이 작품을 찍어낼 필요는 없다고 느껴요. 매 시즌마다 새로운 개성을 가진 배우들이 합류하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데 어떻게 똑같겠어요. 주제의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통해 아동학대 문제 생각해봤으면
포장하기 보단, 불편한 현실 그대로 보여주고파


Q. 그렇다면 ‘인터뷰’를 세 번째 시즌까지 이끌어오면서 꼭 가져가고 싶었던,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뭔가요?
추 : 제 얘기를 먼저 하자면, 전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는게 정말 싫어요. 짜증난다는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돼서 괴로워요. 영화 ‘세븐데이즈’(유괴된 아이를 찾는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김윤진 주연의 영화)를 보다가 제가 아이를 찾으러 스크린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으니깐요.

어렸을 때는 부모가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세상이 흔들리고, 세상이 그 아이를 짓밟으면 그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은 항상 행복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관객들에게 ‘아동학대가 우리 사회에 낳을 수 있는 비극’을 전하고 싶었어요. 요즘도 어린아이들이 학대받는 이야기들, 뉴스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최근에도 어린이집에서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고요. 이 유쾌하지도 않고, 감정적으로 힘든 이 작품을 보고 집에 가면서 관객들이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을 하는 이유를 꼽자면 그거 하나에요.

Q. 하지만 작품을 두고 ‘가해자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 아동 학대 문제를 너무 폭력적으로 그린 것 아니냐’라는 논란도 있었어요.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도 불편하다는 관객들의 의견도 있었고요.
추 :
사실 저는 그래요. ‘인터뷰’라는 작품, 불편하고 보기 힘들죠. 하지만 우리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잘 포장한다고 해서 사회의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숨기고 감춘다고 없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더 드러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그 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 문제들이 언젠가 바뀔 수 있길 바라면서요. 저도 좋고 아름다운 얘기 좋아하지만요.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불편한 이야기들이 있다면, 저라도 불편한 얘기 하려고요.

Q. 불편한 이야기다 보니, 배우들에게 섬세하게 디렉션을 줘야 하는 씬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추 :
우디가 학대를 받을 당시 느낌을 표현하는 장면은 특히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항상 모든 싱클레어들에게 강조했어요. 보는 분들은 불편하겠지만, 이 장면에서는 이 아이가 느꼈던 공포감을 명확하게 표현했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유진이 “괜찮아”라면서 손길을 건네는 장면에서도 우디는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공포에 질리죠.

Q. 얘기하다 보니 ‘인터뷰’에 대한 애정이 잘 느껴지네요. 추정화 연출에게 ‘인터뷰’란 작품은 어떤 의미일까요.
추 :
아무래도 ‘인터뷰’는 뜨거움이 빠지면 의미가 없는 작품이다 보니, ‘인터뷰’ 얘기를 하다 보면 저 자체가 뜨거워지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원체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인터뷰’를 쓸 때부터 작품을 참 좋아했었는데, 관객들에게 선보일 때까진 걱정이 참 많았었어요. ‘귀한 시간을 내서 공연을 보러오는 건데, 이렇게 불편한 작품을 관객들이 좋아해 줄까’라는 우려가 컸죠.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세 번째 시즌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 속에 ‘시작된 건가요, 인터뷰?’라는 대사처럼 저에겐 ‘이제부터 시작이구나’라는 마음을 들게한 작품이죠.

Q. 뮤지컬 ‘인터뷰’의 연극 버전도 제작되어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추 :
‘인사이드’라는 작품인데요. 전반적인 이야기는 같고요. 풀어나가는 방식이 조금 달라요. 같은 이야기, 다른 접근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아마 내년쯤에는 선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배우 출신 연출가, 실보단 득 커
베토벤 삶 다룬 작품 준비 중인 추정화

“성실한 연출가 될 것”

Q. 이제는 배우보다 연출가라는 직함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가사’ 출연 이후에 배우로서는 통 무대에서 볼 수 없었는데요. 혹시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지요?
추 :
언젠가 불러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아무도 안 불러주네요.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웃음) 사실 제 나이 또래에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만 남아계신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 비하면 저의 노래 실력은 턱없이 부족해요. 그래서 뮤지컬에 대한 욕심보단 좋은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요? (웃음)

Q. 배우 출신 연출가이다 보니, 아무래도 배우들과의 공감대가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추 :
아마 배우를 안 했다면, 연출가로서 이만큼도 못하지 않았을까요? 배우들한테 해주는 이야기에는 제 경험담도 많이 들어 있으니깐요. 배우를 했었기에 훨씬 더 이해되는 것도 많아요. 예를 들면 ‘내가 배우 할 때 저런 부분이 답답했었지’라고 느끼고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배우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고 노력해요.

Q. 연출가로서는 어떤 원칙을 갖고 작품을 무대에 올리세요?
추 :
무엇이 우리 작품에서 가져갈 만한 것인지, 그리고 그게 작품 전반에 걸쳐 잘 전달되는지에 대해서 가장 고민을 많이 해요. 그 점에 대해서 창작진, 배우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기도 하고요. 씨알만한 것이라도 작품 속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생기고, 그것이 작품 속에서 잘 느껴지면 밀고 나가는 편이에요. 가끔 너무 재미에 빠지다 보면, 그런 것을 놓칠 때가 있어서 항상 경계하고 있어요.

Q. 작가, 연출가로서는 어떤 소재에 마음이 뜨거워지세요? 어디서 소재를 얻으시는 지도 궁금하고요.
추 :
보통 책, 기사, 다큐멘터리 등을 보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소재들이 저에게 다가오더라고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아요. 일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스릴러요. 스릴러면 영화든 책이든 일단 볼 정도로 좋아하거든요. 작가로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훅하고 작품 속에 관객들을 빠져들게 하는 건 스릴러 이상의 장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스릴러에 관심이 많고요.

또 다른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나중에 크게 한방 터뜨리는 성공담에 가슴이 뜨거워져요. 서민 이야기 이런 것들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혹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꿈을 이루는 내용은 너무 뻔하지 않아?’라고 하는데 전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달을 품은 슈퍼맨’, ‘케미스토리’ 같은 작품도 만들었나 봐요. (웃음)
 
Q. 혹시 그럼 지금 구상 중인 작품도 있으신지요? 앞으로의 작품활동 계획도 궁금합니다.
추 :
일단은 오는 11월에 베토벤의 삶을 다룬 작품을 하나 무대에 올릴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베토벤을 정말 좋아하는 제작사 대표님의 의뢰를 받아 쓰게 됐는데요. 압도적인 파워를 가진 베토벤을 소극장 무대에서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지 고민중이에요. ‘인터뷰’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아마 내년에는 한해 쉬고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연출가로서의 목표가 있다면요?
추 :
가끔 작품에 대한 안 좋은 얘기들을 들으면 위축될 때도 있어요. ‘스모크’ 속 초, 해, 홍처럼 제 마음속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갈 때도 있고요. 그래도 감사한 건 허수현 음악감독, 김병진 안무감독 등 좋은 사람들이 제 곁에서 함께 있어 준다는 점이에요. 이 팀을 생각하면 계속 일을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오래 가는 연출가’, ‘훌륭한 연출가’가 되겠다는 말은 못 하겠어요. 전 엄청난 촉이 있지도 않고, 엄청난 글솜씨가 있는 사람도 아니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성실한 연출가’로는 사람들 기억에 남고 싶어요. 연습실에서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창작진·배우들과 끊임없이 얘기를 할 수 있는 연출가요.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사람들이랑 성실하게 일하는 연출가, 저 그런 연출가로 남고 싶어요.


글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Mr.Hodol@Mr-Hodol.com),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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