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으면, 혼자서는 꿀 수 없던 꿈을 꿀 수 있으니까요” ‘생쥐와 인간’ 신주협, 임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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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외모의 청년 조지와 낮은 정신연령의 청년 레니. 상반되어 보이는 두 사람은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생쥐와 인간’ 속 주인공이다. 경제구조의 모순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 속에서 두 인물은 의외의 케미로 관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고전의 무게감을 덜어주며 관객들이 더욱 편안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

인터뷰를 위해 만난 ‘생쥐와 인간’의 주인공 조지 역의 신주협과 레니 역의 임병근은 작품 속 인물들처럼 따뜻한 호흡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사진 촬영부터, 칭찬으로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매너까지. 열 살 터울의 나이 차이에도 어색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에너지는 ‘무대 위 조지와 레니의 호흡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술술 읽히는 작품의 매력
새로운 캐릭터 도전, 부담보단 욕심나


“술술 읽히는 작품이었어요.”

신주협, 임병근 두 사람은 대본을 읽자마자 출연을 결심할 정도로 ‘생쥐와 인간’의 매력에 푹 빠졌다. 1937년 출간된 고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지만, 현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텍스트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

임병근은 “재밌는 대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멈춤 없이 집중해서 보게 되는데, ‘생쥐와 인간’이 그런 경우였어요. 전체적으로는 비극이지만, 마냥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아 여운이 오래갔어요”라며 작품의 매력을 설명했다. 신주협 역시 대본을 받자마자 “'이 작품에 꼭 출연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정도였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큰 갈등이 없는 구조인데도 서사가 잘 흘러가는 작품이었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의 먹먹함이 정말 좋았어요. 배우로서 자연스럽게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두 사람이 맡은 역할은 총명하고 이성적이지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조지’와 순수하고 착하지만, 사고뭉치인 ‘레니’. 기존에 두 사람이 주로 맡았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결의 캐릭터였기에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하지만 신주협은 오히려 ‘난쟁이들’, ‘트레인스포팅’에서 보여줬던 귀엽고 발랄한 캐릭터보다 오히려 “실제 성격에 가까운 건 조지”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 안에도 감수성이 많지만, 평소에는 조지처럼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의 예민하면서도 이성적인 모습을 캐릭터에 많이 담으려고 했죠.”

임병근 역시 ‘더데빌’, ‘스모크’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캐릭터로 극을 꾸며 나간다. 레니라는 인물에서 순수함을 떠올렸던 그는 영화나 책 속의 인물이 아닌 만 두 돌이 안 된 딸을 모티브로 삼아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고.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더라고요. 레니는 성장이 멈춘 아이 같은 인물이었는데, 21개월 된 제 딸을 생각하면 될 것 같았어요. 저희 딸을 관찰하며 아이들이 보여주는 예상 밖의 행동들이나 표현들을 참고했어요. 물론 그 모습을 무대에 갖고 오기에는 너무 날 것인지라, 무대화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어요.”

또한 자칫하면 레니가 ‘민폐 캐릭터’로만 보일 수 있기에 임병근은 캐릭터를 섬세하게 연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첫공 끝나고 레니를 연기하는 건 '외줄 타는 느낌'이다라고 얘기했을 정도예요.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그냥 바보 민폐 캐릭터처럼 보이겠더라고요. 그런 선들을 극 안에 잘 버무리면서 녹이려고 했어요.”
 
없어서는 안 될 소울 메이트, 레니와 조지
페어 별로 다른 매력 빛나


작품 속에서 조지는 레니의 보호자 역할을 자청하며 끊임없이 그를 챙긴다. '너만 없었으면'이라며 레니에게 독설을 퍼붓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묘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신주협과 임병근은 조지와 레니의 관계에 대해 “두 사람에게 서로는 힘이 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였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병근은 “레니에겐 결함으로 인해 주변에 항상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조지를 통해 관계를 맺었고 그가 레니의 엄마이자 아빠 같은 보호자가 된 거죠. 조지에겐 레니가 ‘미운 정’을 느끼게 하는 대상일 수 있지만, 레니에게 조지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죠”라고 설명했다.

신주협은 “왜 조지가 레니를 계속 데리고 다니는지에 대해 먼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며 자신의 해석을 밝혔다. “조지처럼 계산이 빠른 현실적인 인물들은 꿈을 꾸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레니는 항상 꿈을 꾸는 사람이더라고요. 혼자 있으면 꿈꿀 수 없는 것들을 레니를 통해 꿈꾸게 되니, 무의식적으로 그를 계속 붙잡게 되는 것 같아요.”

조지와 레니의 관계성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각각의 페어마다 달라지는 분위기도 ‘생쥐와 인간’의 또 다른 재미다. 신주협과 임병근은 “함께 호흡하는 배우마다 개성이 또렷하게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서로가 느끼는 배우 별 차이에 관해 설명했다.

“주협이는 엄마 같은 따뜻한 느낌이 있어요. 레니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강한 친구죠. 그런데 반대로 태유 같은 경우는 츤데레 같은 느낌이 강해요. 날카로운 분위기 속에서 툭툭 챙겨주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그려지더라고요.” (임병근)

“병근이 형과 대훈이 형이 연기하는 레니도 정말 달라요. 병근이 형이 연기하는 레니는 5~7세의 아이 같다면, 대훈이 형은 12살쯤 되는 어린이 같다고 할까요? 대훈이 형은 자기 생각이 또렷한 아이 같은 느낌이라 저도 더 예민하고 날 선 조지를 연기하게 돼요.” (신주협)
 
작품 속 배경과 겹치는 요즘의 젊은 세대
N포세대, 희망의 끈 놓지 말아야 해


1930년대 대공황 시대의 미국을 그린 ‘생쥐와 인간’ 속 조지와 레니의 모습은 묘하게 오늘날 젊은이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불안정한 현실 속에 기본적인 노동 이외엔 아무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는 이들의 모습이 연애, 취업,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N포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신주협 역시 “주변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작품 속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떻게 보면 조지와 레니는 정말 소박한 꿈을 꾸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취준생들도 마찬가지죠. 단지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는 작은 꿈이었는데 그조차 쉽게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임병근은 “고전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인간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나의 모습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것 같아요. 고전들이 그런 주제들을 많이 다루고 있잖아요. ‘생쥐와 인간’ 역시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생쥐와 인간’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이룰 수 없는 꿈일지라도 각자 나름대로의 꿈을 꾸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이런 작은 꿈조차 포기하고 살아간다면 세상을 버텨내기가 더욱 각박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평화로운 오두막집’을 꿈꿨던 조지와 레니처럼 두 사람이 배우로서 꿈꾸는 희망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다 먼저 정적을 깬 임병근은 의외의 소박한 대답을 전한다. “제가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무대에 서는 게 유일한 꿈이었던 신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계속 무대에 설 수 있다면 그게 희망인 것 같아요.”

임병근의 대답에 신주협은 “저는 욕심이 많은 편”이라고 웃어 보이며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는 게 가장 큰 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음식을 만들 때도 같은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면 희열이 느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정말 무대 위에서 연기를 ‘잘’ 한다면 얼마나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아직 첫 단계지만 계속 열심히 노력해서 그 꿈을 이루고 싶어요.”


글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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