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 그대로의 에너지 보여주고파" 배우 김강우의 첫 연극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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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우는 꾸준하다. 2002년 영화 <해안선>으로 데뷔한 후 그는 별다른 공백기도, 스캔들도 없이 매년 드라마나 영화 한두 작품 이상씩은 꾸준히 선보여 왔다. 그렇게 데뷔 15년 차를 맞은 올해, 그가 서른 아홉살이란 얘기에 다소 놀랐다. 마흔을 앞두고 있다고는 믿기 어려운 탄탄한 몸매와 얼굴선 때문만은 아니다. 책벌레 용접공(<나는 달린다>, 2003)부터, 재벌가 비서(<돈의 맛>, 2012), 연산군(<간신>, 2014)까지 지금까지 맡아 온 배역들은 항상 강렬한 눈빛을 내뿜었고, 그 눈빛은 기운 넘치는 20대 청년의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원히 청년으로 살 것만 같은 김강우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다. 24살 대학생 때 교내 연극에서 연기했던 '햄릿'을 다시 맡았다. 가장 청년다웠던 때의 자신을 되새기고 싶은 걸까. 왜 지금 15년 전 그 연극에 다시 도전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TV나 스크린에서 늘 봐왔던 강렬한 눈빛 그대로 김강우가 입을 뗐다.

Q. 데뷔 15년 만에 첫 연극이네요.
대학 전공이 연기였고 교내에서도 연극부 활동을 했어요. 이번에 도전하는 <햄릿 – 더 플레이>도 사실 학교 다닐 때 했던 작품을 각색한 거예요. <햄릿 - 더 플레이>의 김동연 연출은 세 기수 차이 나는 연극부 선배였어요. 형은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말년 병장 같은 느낌이었는데 저희 동기들이 연출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렇게 동연이 형은 지금 준비하는 <햄릿 – 더 플레이>의 시초가 된 <햄릿 – 슬픈 광대의 이야기>를 직접 쓰고 각색했어요.

당시 그 연극을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햄릿은 되게 연기하기 어려운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공연을 마치고 나서 처음으로 ‘계속 배우로 살아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배우의 길을 걷게 해 준 작품인 셈이죠. 또 동연이 형은 저와 같은 연기 전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을 하고 나서 연출가의 길로 방향을 바꿔볼까 생각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나름 의미가 깊은 작품이어서 그랬는지 언젠가 꼭 다시 그 연극으로 무대에 서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년 전 동연이 형에게 다시 이 작품을 해보자고 얘기했었죠. 그동안 연극 준비에 필요한 3~4개월의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30대의 마지막인 올해에 이 연극을 하지 못하면 평생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꼭 지금, 햄릿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이번 작품을 통해 제 자신을 ‘리셋’한다는 마음이에요.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잖아요. 다들 장점은 드러내고 단점은 숨기고 싶어 하죠. 저도 지난 15년 동안 저의 장점만 부각시키면서 활동해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배우로서 더 길게 가려면 자신의 단점도 다 드러내고 재정비하는 지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연출로서 제 연기의 시작을 지켜봤던 동연이 형이라면 저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연습하면서도 제 단점이 눈에 다 보일 거예요.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겠죠.(웃음)
 
Q. 연출과 배우 둘 다 베테랑이 되어 다시 만났는데, 대학생 때 올렸던 작품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나요?
내용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어요. 어린 햄릿과 광대 요릭을 등장시켜서 햄릿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기법도 그대로고요. 동연이 형이 연출가로 몇 해 활동하고 나서 대학시절에 썼던 <햄릿 – 슬픈 광대의 이야기> 대본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나 봐요. 그 때 주변에서 ‘정말 20대 때 쓴 게 맞냐’고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감성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좋은 작품이었던 거죠. 동연이 형은 10년 넘게 연출로 활동하면서 조금은 매너리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는데 대학생 때 썼던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면서 순수함을 되찾고 싶었대요.  
 
Q.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아 다양하게 변주된 햄릿이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햄릿 – 더 플레이>만의 차별점이 있다면요?
햄릿이란 작품은 누구나 다 알죠. 하지만 원작 희곡을 읽고 나서 햄릿이란 인물에게 깊이 공감하는 사람은 좀 드문 것 같아요. <햄릿 – 더 플레이>는 햄릿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도를 높인 게 장점이에요. 어린 햄릿을 등장시켜 햄릿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인물의 심리를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해요. 저도 연기하면서 감정적으로 다가가기 훨씬 편하더라고요.
쉽게 말하면 신파적인 요소가 좀 더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햄릿의 아버지가 단순히 복수를 종용하는 망령으로 등장하는데 반해 이번 연극에서는 햄릿과 아버지 사이에 끈끈했던 가족애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장면도 있거든요.
 
햄릿으로 연기의 기본기 닦아
연기 기술은 쌓였지만 계산적 연기는 지양하고파

 
Q. 대본을 보니 배경은 현대에 가깝게 수정됐는데, 어투는 원작 특유의 길고 철학적인 느낌이 많이 남아 있던데요. 연기하기에 까다로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연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맥베스, 햄릿, 리어왕 등 셰익스피어 희곡들을 많이 공부했었어요. 고전 연기를 비교적 많이 배운 덕분에 데뷔 후에 긴 호흡의 연기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됐죠. 영화 <간신>에서 맡았던 연산군 역도 덕분에 좀 더 수월했고요. 한 인물에 깊이 들어가는 방법이나 호흡, 발성 같은 기술을 다듬는 데에 고전 공부가 도움이 돼요.
한편으로는 지금이 셰익스피어의 위기라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신문 만평을 봤는데, 별로 길지 않은 말도 줄여 쓰기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이 셰익스피어 특유의 철학적이고 긴 문장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하더라고요. 

Q. 그렇게 연기의 기초가 되었던 햄릿을 십수 년 만에 다시 연기하는 거잖아요. 지금 연기하는 햄릿은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요?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산 없이 연기를 했다면, 지금은 아무래도 저도 모르게 기술적인 면들이 쌓였겠죠. 그게 오히려 걱정이에요. 이 작품은 기술적인 연기로 채우면 안 되거든요. 동연이 형이 이번 작품에서 강조하는 ‘순수함’이라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날것 같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길 바란다는 의미 같아요. 그런데 제가 계산적인 연기를 하게 되면 이 작품의 차별성이 약해지는 거죠.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름의 에너지가 있었던 그때의 모습을 회복하고 싶어요.
 
뚝심 있는 선배 혹은 팔랑귀 남편
두 아들은 순수함을 일깨워주는 ‘나의 뮤즈’

 
Q. 같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한 배우가 ‘김강우는 뚝심 있는 선배’라고 언급했더라고요. 실제로도 뚝심 있는 성격인가요?
 아니에요. 의지도 약하고 귀도 얇고, 뚝심은 부족한 편이죠. 저희 아내도 늘 저한테 귀가 얇다고 말해요. (웃음) 배우들이 좀 순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자신만의 분야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분야에 좀 눈이 어둡달까요. 그래도 연기를 할 때는 제 자신을 믿고 대담하게 밀어붙이려고 해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대본도 늦게 나오고 캐릭터가 흔들리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는데 그때는 단순하고 무모하게 자신을 믿고 연기하는 게 좋거든요. 어차피 정답은 없는 거니까요.
 
Q. 2003년 드라마 <나는 달린다>에서 독서 마니아 용접공으로 나왔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뭔가 올곧고 바른 사람 같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이미지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평균적인 기준으로 볼 때 전 올바른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대중 앞에 많이 나타나거나 개인사를 드러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렇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고요. 특히 인터뷰 할 때는 연기 얘기, 일 얘기를 주로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진지한 느낌을 풍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Q. 올해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서도 그랬고, 어두운 캐릭터를 자주 맡아왔어요. 그런 배역에 너무 푹 빠져 지내면 정신적으로 힘들잖아요. 감정의 균형을 되찾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전 캐릭터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편이긴 해요. 배역의 잔상이 오래 남아 있는 스타일은 아니죠. 그래도 감정의 균형을 잡고 싶을 때는 여행을 떠나기도 해요. 그리고 아이들이랑 놀 때 긴장감, 부담 같은 심적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요. 그때가 가장 밝게 웃는 순간이죠. 물론 사내아이 둘과 놀다 보면 체력적으로는 힘들어요. 근데 아이들이 얘기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너무 웃기더라고요. 정신적으로 많이 도움이 돼요.
한편으론 아이들을 보면서 순수함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 연출님과 제가 이번 작품에서 되살리고 싶어 하는 그 순수한 에너지가 무엇인지 아이들이 일깨워주는 것 같아요.
 
Q. 아이들이 이제 아버지가 유명인인 것을 어느 정도 알 나이 아닌가요?
 첫째 아들은 어렴풋이 아는 낌새예요. 하지만 직접 묻지는 않아요. 길 가다가 저를 알아본 사람들이 사인해달라고 다가올 때가 있는데, “사람들이 왜 아빠한테 사인해달라고 그래요?”하고 묻지는 않더라고요. 근데 아들 둘이 역할 놀이하는 모습을 봤는데 “아빠 촬영 갔다 올게.”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가정의 아이들이 “아빠 회사 다녀올게.”라고 말하면서 소꿉놀이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제가 배우라서 아이들이 특별한 삶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원치 않아요. 또래가 성장하며 느끼는 것들을 똑같이 느끼며 자랐으면 좋겠어요. 제 직업이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굉장히 조심하는 편이에요.
 
40대, 멜로 연기 해보고 싶어
배우는 시대의 거울, 편향적인 거울은 되고 싶지 않아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으신가요?
멜로 연기요. 사실 멜로는 무서워서 엄두를 못 냈어요. 다른 장르와 달리 제가 가진 감성, 기술, 연기력으로만 승부해야 해서 제 밑천이 금방 드러날 것 같았거든요. 인생 경험을 더 많이 쌓은 후 30대 후반이나 40대쯤에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왔어요. 지금쯤이면 예전보다 조금 나은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요즘은 드라마 외에는 멜로 작품을 찾기 어렵더라고요.
 
Q. “배우는 시대의 거울이다.”라는 <햄릿>의 대사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배우 김강우는 지금 시대의 어떤 모습을 비추고 있나요?
어떤 모습을 비춰야겠다고 명확히 정해놓은 것은 아니에요. 배우를 하면서 그동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휩쓸리지 않는 것’이에요. 배우가 어떤 한가지 색깔만을 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 같아요. 연기가 힘들어진다고 할까요. 제가 어떤 사상을 확고히 가지고 드러내면 다른 입장의 연기는 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중립이 좋은 것 같아요.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저를 통해서 이 시대의 현실이 어느 정도 조금씩 투영되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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