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박찬의 뫼르소, 강렬한 흡입력…극단 산울림 ‘이방인’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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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극단 산울림의 연극 ‘이방인’이 21일 두 번째 무대로 돌아왔다. 개막 당일 언론에 공개된 연극 ‘이방인’은 고전 원작의 묵직한 힘, 그리고 50년 가까이 전통을 이어온 극단 산울림의 저력이 느껴지는 묵직한 무대였다.
 
‘이방인’은 20세기 고전 명작으로 꼽히는 알베르 까뮈의 동명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임수현 연출이 번역과 각색, 연출을 맡아 지난해 극단 산울림의 신작으로 선보였다. 초연보다 더 완성도를 높인 이번 무대에서는 작년 ‘이방인’으로 제54회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던 전박찬이 다시 주인공 뫼르소로 분하고, 정나진이 뫼르소의 친구 레이몽을, 박윤석이 검사를, 문병주가 변호사를, 강주희가 뫼르소의 연인 마리를 연기한다.  
 
배우들은 이날 프레스콜에서 작품 전막을 시연했다. 극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라는 ‘이방인’의 첫 문장으로 시작해 공연 내내 뫼르소의 독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양로원으로부터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들은 뫼르소는 피로와 졸음 속에 무심한 태도로 장례를 치르고, 다음날 해수욕장에서 만난 마리에게 데이트를 신청해 함께 코미디 영화를 관람한다.
 
이후 뫼르소는 친구 레이몽의 치정 싸움에 휘말려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된다. 검사는 뫼르소가 모친의 죽음 앞에서 보였던 무심한 태도를 근거로 그의 행동을 악의적이고 계획적인 범죄라고 판단한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도의적 책임감이나 죄책감, 좌절 등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뫼르소의 심리는 검사뿐 아니라 판사나 배심원들에게도 이해되지 못하고, 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105분간의 공연에서 무엇보다 강한 흡입력으로 눈길을 끈 것은 뫼르소로 분한 배우 전박찬의 열연이다. 모친의 장례식날 마음이 아팠냐는 질문에는 “난 너무나 피곤하고 졸렸습니다”라고, 살인을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좀 귀찮군요”라고 답해 “영혼이란 것 자체가 없다”고 비난받는 뫼르소를 전박찬은 그만의 결로 관객들에게 설득시킨다. 명료하고 담백한 어투로 이어지는 그의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부조리한 삶을 가능한 한 정직하게 직시하고자 하는 뫼르소의 치열한 고투를 이해하게 된다.
 
계단식 원형 무대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특히 뫼르소가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단출한 조명을 활용한 연출이 빛을 발한다.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 땀과 열기, 온 몸을 덮쳐오는 긴장감에 젖어 저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는 뫼르소의 심장 박동이 객석에 생생히 전달된다. 정나진, 박윤석, 문병주, 강주희 역시 각기 맡은 주요 역할 외 다수의 인물로 분하며 무대를 탄탄히 채웠다.
 
"’이방인’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뫼르소라는, 일반적인 룰에 따르지 않는 고립된 인물이 의도치 않게 반사회적 행동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소위 말하는 ‘부조리’ 사상을 보여준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한 임수현 연출은 특히 ‘죽음’에 방점을 찍었다.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큰 부조리가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까뮈가 ‘이방인’에서 세 번의 죽음을 그린 것 같다. 뫼르소가 모든 희망을 비워낸 상태에서 역설적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을 처음 느끼는 장면에 까뮈의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까뮈가 다음 작품(페스트)에서는 죽음과 맞서 싸우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쓴 것 같다”는 임 연출은 “우리 누구나 자신이 이방인이라고 느끼는 지점들이 있을 것”이라고 관람 포인트를 짚었다.
 
“불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방인’을 번역하고 싶었다. 까뮈의 문체를 최대한 살리되, 연극인 만큼 좀 더 관객들과 명확하게 소통할 수 있는 구어체를 썼다”고 번역 과정을 돌아본 임 연출은 작년 초연과 달라진 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출연진을 7명에서 5명으로 줄여 1인 다역을 맡겼고, 재판정 장면에서의 등,퇴장 등 일부 장면들을 수정했다고.
 
전박찬 역시 주인공 뫼르소에 대해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연 때 제작진에 실존주의를 공부시켜 달라고 했더니 난감해 하더라. 뫼르소를 서구의 개인주의적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개인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다. 또 ‘세상에 던져진 인물’이라는 연출님의 말이 가장 이해가 잘 됐다”고 연습 과정을 전했다.
 
뜨거운 여름, 쉽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땀 흘린 ‘이방인’ 팀은 “배우들과 같이 풀어가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정나진), “글로 봤을 때 느끼지 못한 재미를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문병주)이라며 관람을 권했다. 공연은 9월 16일까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극단 산울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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