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김우형 “왜 남자 배우가 여자 교장 역할을?” 14년 차 배우의 이유있는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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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의 라다메스, ‘지킬 앤 하이드‘ 지킬/하이드, ‘모래시계’의 태수까지. 주로 남성미 강한 선굵은 연기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우형. 그가 데뷔 후 처음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며 관객들을 무대 위에서 만나고 있다. 바로 뮤지컬 ‘마틸다’에서 주인공 마틸다와 대립하는 전직 투포환 선수 여교장 트런치불을 맡은 것.

쪽진 머리에 육중한 체구, 입술 위에 털 난 점 등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모습으로 아이들을 괴롭히는 김우형은 새로운 변신이 사뭇 즐거워 보이는 듯했다. “같은 모습만 계속 보여드리면 지루하잖아요”라며 오히려 이제는 안정보다 새로운 모험을 즐기려 한다는 그의 대답에선 어느덧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장식하며 뮤지컬계를 이끌어가는 14년 차 뮤지컬 배우로서의 여유가 느껴졌다.

 
Q. 무대에 올라온 모습을 보고 ‘내가 알던 김우형의 모습이 맞나?’ 싶어 깜짝 놀랐다.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
기대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다들 굉장히 놀라워하시더라. 김우형이라는 배우가 이제까지 쭉 해왔던 작품과는 결이 다른 캐릭터라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작품 하길 잘했다’라고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기자 : 혹시 다른 가족들도 봤나? 물론 공연은 못 보지만, 3살짜리 아들이 아빠의 변신한 모습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도 궁금하다) 아내인 배우 김선영 씨는 아직 못 봤다. 가족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그 어떤 작품보다도 굉장히 좋아하시더라. 아이는 혹시나 울까 봐 아직 사진으로도 보여준 적이 없다.

Q. 모두가 깜짝 놀란 이 캐릭터는 어떻게 도전하게 된 건가.
작품의 선택 기준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경력과 연륜이 쌓이다 보니 이젠 안정보단 파격적인 도전, 모험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 같은 모습만 계속 보여드리면 관객들도 지루하게 느끼실 수 있고. (웃음) 한 번씩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면 기존에 보여드렸던 결의 역할들이 더 돋보일 수도 있는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오디션을 보는데 생각보다 정말 어렵더라.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Q. 안 그래도 오디션 과정이 굉장히 까다로웠다고 들었다.
한 달 동안 3~4번에 걸쳐 오디션이 진행됐다. 일단 곡이 듣기엔 편하게 들리지만, 굉장히 어렵게 쓰였더라. 심지어 안무 오디션은 당일에 배워서 소화해야 했다. 리본 체조를 배우자 마자 바로 영상을 찍고, 뜀틀을 넘어가는 걸 반복해서 하는데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Q. 까다로운 오디션을 통해 맡게 된 트런치불 역, 직접 해보니 어떻던가.
인터넷에서 영상을 통해 보긴 했지만, 직접 하는 거랑 보는 거랑은 또 달랐다. 되게 어려운 역할을 만난 느낌이었다. 기술적인 연기와 노래를 무대에서 유기적으로 잘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무대 내공이 없으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역할이더라.

일단 의상이나 가발 등 연기하기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다. 그 상황에서 캐릭터의 범상치 않은 성격을 보여주는 연기와 동작을 동시에 해야 하는데 참 어렵더라. 리본을 던져서 완벽하게 받아내야 하지를 않나, 내가 손연재도 아니고. (웃음) 독특한 표현과 언어유희가 담긴 트런치불의 대사를 완벽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야 코미디 적 요소가 살아나기에 매 씬마다 항상 완벽하게 집중하려고 한다.
 
Q. 해외 크리에이티브 팀은 트런치불을 연기하는 데 있어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 물론 웨스트엔드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남자 배우가 여자 교장 역할을 맡았기에 신경 써야 할 점들도 많았을 것 같다.
영국 크리에이티브 팀은 트런치불의 극 중 나이를 50세의 여성 정도로 생각했다고 하더라. 체구도 크고 남성호르몬 주사를 많이 맞아 외형적으로는 근육질의 남성 같아 보이지만, 트런치불은 본인 스스로 여성성을 중시하는 캐릭터라고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자세나 걸음걸이 등 디테일한 부분들을 조언해줬다. ‘마틸다’에서 트런치불이 등장하는 첫 장면이 의자에 앉아 허니 선생님을 바라보는 씬인데, 연습할 때 나도 모르게 자꾸 다리가 벌어졌나 보더라. 습관이 들 때까지 적응하느라 혼났다. (웃음)

Q. 하지만 목소리 톤을 여성처럼 꾸며내진 않더라.
그냥 내 목소리대로 하면 된다고 디렉션을 받았다. 전혀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동작이나 자세 등을 신경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소보다 여성스러운 톤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꾸며내려고 하진 않았다.

많은 분이 왜 여자 교장 역할을 남자 배우가 하는지 궁금해하시더라. 그런데 직접 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기보다 체력소모가 엄청난 캐릭터다. 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푹 땀으로 젖는다. 몸을 잘 움직일 수 없는 특수한 의상을 입고, 날렵한 몸동작을 선보여야 하니 정말 힘들다. 매일 체력단련 하는 기분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역할이라 제작진들도 처음부터 건강하고 키가 큰 젊은 청년을 염두해두고 캐스팅했다고 하더라. 나 역시도 마지노선으로 합격한 게 아닐까 싶다.

Q. 공연을 봤을 땐 그 정도로 힘들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굉장히 힘들다. 극 중에서 아만다의 머리채를 잡고 돌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도 생각보다 되게 힘들다. 특히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다 보니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3개월 후에는 ‘내가 잘 돌릴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다음 시즌에 트런치불을 맡게 되는 후배가 있다면 ‘운동을 많이 해둬라’는 얘기를 가장 먼저 해주고 싶다.

Q. 김우형이 생각하는 ‘트런치불’은 어떤 악역인가? 전작 ‘아리랑’에서도 악역을 맡은 바 있지만, 트런치불은 더 이해하기가 어려운 독특한 인물인 것 같다. 참고할만한 인물도 잘 없을 것 같고...
비교대상이 없는 악역이다. 사실 처음에는 공감이 많이 안 됐다. 하지만 대본 속에서 많이 해결할 수 있었다. 이미 쓰이고 번역된 대본, 의상, 분장 등이 트런치불이란 인물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트런치불은 사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신념들이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 콤플렉스 때문에 잘못 형성된 것이고…어쩌면 웜우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사람이 보여주는 행동들은 옳지 않지만, 완전히 악질로만 보이진 않은 것 같다. 어떨 땐 귀엽기도 하고. 비록 제가 망가지고 미움을 받더라도 그로 인해 마틸다가 더 빛날 수 있고 관객들이 즐거울 수 있다면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Q. 아역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아역들이 주인공인 작품에는 처음 출연하는 거로 아는데.
정말 놀랐다. 모든 친구들이 자신의 캐릭터들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특히 주인공 마틸다는 분량이 많은데도 중압감을 이겨내고 강단 있게 연기해내더라. 감동받아서 종종 울컥울컥할 때가 있다. 또한 아이들이 흡수력이 빠르다 보니, 한 번 뭔가를 배우면 잘 안 까먹고 그대로 한다. 정말 매번 감탄한다.

Q. 배역이 배역인지라, 아역 배우들과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내 일상이 아이들에게 너무 침투되면 그들이 연기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조심하려고 한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외롭게 지내고 있다. 무대에서 아이들을 미워하고 싫어해야 하는데, 사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Q. 아역 연기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도 많을 것 같다.
아이들마다 눈빛에서 표현되는 것들이 다 다르다. 어떤 친구는 눈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어떤 친구들은 해맑은 감성을 담고 있고. 정말 눈빛 속에 무한대로 다양한 것들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어린 친구들이 그럴 수 있는 건 순수함 때문인 것 같다. (기자 : 작품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도 우리가 잊고 있던 순수함에 대한 얘기 아닌가.) 맞다. 아이들을 통해 배우로서의 초심을 다잡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캐릭터들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순수함이 있어야 그 인물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깐.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연륜이 쌓이다 보면, 순간순간 망각할 때도 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이 작품,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스스로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Q. 연기 하다 보면 세 살짜리 아들 생각도 많이 날 것 같다. 작품 속에선 웜우드 부부가 그릇된 양육방식을 마틸다에게 강요하지 않나. 김우형은 아이에게 어떤 아빠일지 궁금하다.
항상 아들과 많이 교감하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 어릴 때의 찰나의 순간, 기억들이 평생 그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그 나이 때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 추억들을 남겨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키우고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굉장히 어렵고, 고귀한 일인 것 같다. 작품을 하다 웜우드 부부를 보다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집 안에서 소외당하고 상처받는 마틸다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이는 따뜻한 사랑, 보살핌, 주기적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들의 마음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Q.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아이한테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부모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아이가 자신의 삶을 펼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호막이자 길잡이가 돼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Q. 마지막으로 마틸다는 어떤 작품이고, 어떤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나?
‘마틸다’는 '어른이'들을 위한 작품 같다. 소재가 이렇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뮤지컬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따뜻한 감동을 느끼고 깨닫는 바가 많은 공연이기 때문이다. 내년 2월까지 공연이 이어질 텐데, 앞으로의 목표는 관리를 잘하고 누구나 엇나가지 않는 수준에서 늘 똑같은 수준의 질 좋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이건 책임이자 목표인 것 같다. 내년 2월이 되면 많은 게 달라질 것 같다. 아이들도 굉장히 많이 성장해 있을 것 같고. 저 역시도 마찬가지로 배우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Mr.Hodol@Mr-Hodol.com),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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