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BTS급 인기! ‘광화문 연가’ 속 명곡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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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영훈 작곡가의 명곡들을 엮은 뮤지컬 ‘광화문 연가’가 11월 2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지난 해 연말 유료 객석 점유율 100.8%을 달성한 이 뮤지컬에 담긴 가요들은 80년대에 처음 발표됐을 당시에도 신드롬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며 세대를 거듭해 사랑받아왔다. 도대체 이영훈의 노래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감성을 품고 있길래 세월이 지나도 꾸준히 사랑받는 걸까? 작곡가 이영훈의 음악작업과 그의 삶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음악이?”
이영훈X이문세 콤비가 이뤄낸 신드롬
불매운동도 막지 못한 폭발적 인기

 
가수 이문세는 1985년 이영훈 작곡가와 손잡고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발매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 가요계는 해외 팝송에 비해 저평가 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문세가 팝 발라드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발매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80년대 초반까지 주류였던 트로트나 포크송과는 확연히 다른 감성에 젊은이들은 열광했고 3집은 1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이영훈X이문세 콤비는 가요계의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잡으며 4집, 5집까지 큰 성공을 이어간다.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 수록곡 대부분이 히트에 성공한 5집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으로 꼽히곤 한다.
 
하지만 5집 발표 시점에 사회 분위기는 다소 냉랭했다. 음반 소매상들이 불매 운동에 나섰기 때문. 대부분의 음반 가격이 3300원이었던 그 때 이문세 5집만 약 25% 비싼 4000원으로 발매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불매운동에도 불구하고 음반은 큰 사랑을 받아 258만장이 팔렸다. 시적인 가사, 재즈와 클래식이 버무려진 세련된 편곡이 비싼 가격의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어 리스너들의 마음을 두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생활패턴은 정반대인 ‘음악적 부부’

이영훈과 이문세의 인연

 

3집부터 1991년 발표된 7집까지 이문세의 앨범은 대부분 이영훈의 곡들로 채워졌다. 이후로도 2001년 13집까지 이영훈, 이문세 콤비의 인연은 이어졌다. 이문세는 2001년 한 신문 인터뷰를 통해 이영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다분히 여성취향적인 감성의 소유자죠. 특히 시적인 언어 감각은 당대 최고입니다. 이영훈이 없었다면 이문세도 없었을 겁니다.” 반대로 이영훈은 이문세에 대해 “그의 노래엔 상업적 고급성이 아닌 문화적 고급성이 있어요. 어떤 가사와 멜로디를 써줘도 이해하기 쉽게 들려줍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서로에게 꼭 필요했던 음악적 파트너였던 셈이다.

 

둘의 만남은 1984년 가을, 가수 이장희가 운영하던 녹음실 ‘광화문 랩 스튜디오’에서 시작됐다. 원래 미대 지망생이었던 이영훈은 스탠드바에서 연주하며 곡을 쓰던 피아니스트였는데 랩스튜디오에서 지인의 소개로 이문세를 처음 만난다. 어색한 통성명 후 이영훈은 자신이 고등학생 때 쓴 곡이라며 습작 ‘소녀’를 들려줬다. 이문세는 그 곡을 듣고 가슴을 치는 느낌을 받았다고. 둘은 의기투합해 곡 작업을 시작했고 앨범이 완성될 무렵 좀 더 대중적인 취향의 곡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만든다. 단 30분만에 작곡한 곡이었는데 이문세는 그 곡이 타이틀곡이 되어 히트를 칠 줄은 전혀 몰랐다고 방송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이영훈과 이문세는 생활 패턴이 많이 달랐다. 커피 40잔을 마시며 밤샘 작업을 하는 이영훈과 운동을 즐기는 이문세는 다소 다른 취향의 사람이었던 것. 이문세는 이렇게 회고한다. “지방 투어를 가면 저는 잠시 틈을 내 여행을 하자고 하면 영훈 씨는 그냥 술을 먹자 하고, 운동하자 하면 그냥 자겠다 하고 일어나는 시간 다르고 생활패턴이 다르고 그래서 심술부리고 자존심 상해하고 뭐 부부였으면 오래 못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음악 하는 시간만 되면 서로가 너무나 평화스럽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보다 달달할 순 없다.

‘광화문 연가’와 똑 닮은 이영훈의 사랑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서 젊은 명우는 덕수궁 사생대회에서 수아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다. 미술이 두 인물의 연결고리였던 셈. 이 극중 설정은 이영훈 작곡가의 삶과 오버랩된다. 이영훈과 아내의 사랑도 미술에서 출발했다.

 

이영훈 1주기에 출간된 ‘Art Book 광화문 연가’ (2009. 민음사)에서 아내 김은옥 여사는 남편과의 첫만남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1985년 가을, 처음 만난 그가 작곡가란다. 미술학원에 같이 다니던 선배를 따라간 작업실에 그가 있었다. 흔들림 없이 쳐다보는 그의 눈빛 때문에 내 입은 더 굳게 닫혔고 (중략) 내가 등 뒤로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따뜻함이 흘러내릴 것 같은 웃음소리….”

 

극 설정 뿐만 아니라 ‘광화문 연가’의 가사도 부부의 연애와 닮았다. “그는 아침 9시면 언제나 혜화동 우리 집 근처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의 이른 데이트는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문을 여는 곳은 고궁뿐. 그와의 고궁 순례는 매일 계속되었다. 창경궁, 경복궁, 비원…. 함께 있으면 아무 말 안 해도 좋았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김은옥 여사의 이 회고는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이란 가사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지 짐작케 한다.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등 수많은 이영훈의 노래들이 선명한 시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건 작곡가 자신이 직접 보고 느꼈던 풍경과 감정을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린 창작의 힘이다.

글 : 김대열 기자 (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로네뜨 제공, 서울시 관광안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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