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회사에도 그녀가 있을지 몰라,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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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일 자체가 너무 싫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말을 해봤을지 모른다.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숨막히게 느껴지는 곳, 그러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제각기 다른 생각과 감성과 취향, 또는 제각기 다른 편견과 아집과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우리가 하루하루를 일하는 사무실이다.

<히스토리 보이즈><필로우맨><스테디 레인>등 탄탄한 수작들을 소개해온 노네임씨어터가 바로 이 공간, 한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강렬한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드러내는 신작 <글로리아>를 지난 26일 무대에 올렸다.
 
이 연극은 2014년 오비어워드 베스트 미국 연극상을 수상한 제이콥스-젠킨스의 최신작으로, 지난해 첫 무대에 올라 올해 퓰리처상 드라마상에 노미네이트된 화제작이다. <카포네 트릴로지><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김태형 연출이 이번 공연을 이끈다. 

극은 뉴욕에 있는 한 잡지사의 편집부, 여느 날과 다름 없는 출근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매일같이 숙취에 시달리는 댄은 이날도 부스스한 얼굴로 지각을 하고, 요리조리 요령을 피우며 업무는 늘 뒷전에 두는 켄드라는 출근길에 벌써 쇼핑을 하고 오는 길이다. 일밖에 모르는 댄의 상사 낸은 사무실에 틀어박혀 얼굴을 비추지 않고, 댄과 켄드라, 2년차 어시스턴트 애니는 다른 직원에 대한 험담과 서로에 대한 비방으로 반나절을 보낸다. 
 
그리고 이 사무실에는 이들과 정 반대로 매우 조용한 직원이 있다. 글로리아라는 이름의 그녀는 누구보다 오래 회사를 다녔지만 가장 존재감이 희박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감정 테러리스트'라 불리며 은근한 조롱과 멸시를 보내고, 마침 전날 그녀가 처음으로 초대한 집들이에 댄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와 조금 다른 얼굴로 출근한 글로리아는 얼마 후 누구도 상상치 못한 일을 벌이게 된다. 1막 마지막에 그녀가 벌이는 행동은 그간 댄과 켄드라, 애니 등의 대화 속에서 드러났던 조직과 사회의 여러 문제가 한번에 폭발하는 순간이다.

작품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글로리아의 행동도 강렬하지만, 특히 이 극의 매력은 핑퐁처럼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가 매우 탄탄하게 함축되어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꼭 가보고 싶어요"라는 흑인 인턴의 말에 무심코 웃음을 터뜨리는 백인 남성 댄의 모습, "그냥 임시직이에요"라는 말에 일순간 어색하게 굳어지는 사람들의 표정은 우리 안에 은연중 자리잡은 차별의식을 꼬집고, "누가 진실을 알려고 잡지를 읽어?"라고 자조하면서도 바로 그 잡지를 만들기 위해 암투를 벌이고 밤새워 일하는 이들의 모습 역시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1막에서 펼쳐진 작가의 신랄하고 깊이 있는 통찰은 2막에서도 쉼 없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죽음이 또 다른 이에겐 돈을 벌 궁리로 이어지고, 진실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이 원하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손을 맞잡는 사람들의 모습은 계속해서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을 저지른 글로리아에 대해 "그냥 평범했어요."라고 말하던 로린은 "굳이 얘기하자면, 직장에서 늘 혼자 있었어요. 그게 진짜 그지같은 거죠. 직장은 곧 그녀의 삶이었으니까."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러나 아주 작은 '다름'으로 인해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글로리아는 바로 지금, 우리 옆에도 있을지 모른다. 로린 역 정원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1인 다역으로 분하며, 이승주, 정원조는 물론 손지윤, 임문희, 공예지 등 여배우들의 연기가 맛깔나다. 공연은 8월 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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