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추억] 팀장님, 연차 쓰고 공연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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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한번 보는 공연이건, 한달에 열 번 이상 보는 공연이건 간에 모든 공연에는 추억이 쌓인다. 누구에게나 좋든 싫든 공연에는 자신만의 기억이 담기고, 그렇게 티켓에 추억이 묻는다. 그래서 모든 공연은 소중하다. 
*소소하고 사적인 공연 에세이가 매주 연재됩니다.  
 
입사 1년차, 홍보와 공연기획 사이의 잡다구리한 업무를 애매하게 하고 있던 나에게 한 일간지 공연담당기자가 뮤지컬 <댄서의 순정>을 함께 보자고 청했다. 보통 공연 홍보담당과 공연 담당기자들은 업무 공유 차 또 공연 시각도 넓힐 겸 함께 공연관람하는 일이 잦았다. 그날 보기로 한 공연은 문근영이 출연했던 영화 ‘댄서의 순정’을 뮤지컬화한 작품이었다. SES의 유진이 주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함께 보자 한 그 공연이 수요일 낮 공연이었다. 공연 관람은 업무의 연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팀장님에게 당당하게 오후 2시에 뮤지컬을 보기 위해 나가겠다 했다. 미세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보아 ‘뭐 이런 또라이를 봤나’ 하는 팀장님의 마음을 읽었어야 했지만, 그런 마음의 소리를 읽기에 나는 너무 해맑았다. 팀장님도 나의 해맑고 당당한 기세에 눌리셨는지 그래라 하셨다. (그 당시 나의 공연관람 외출을 허하셨던 팀장님은 지금 대표 자리에 계시다. 역시 크게 될 분이셨다) 업무 시간에 봐서 그랬을까. 잠이 그렇게 왔다. 낮공연이지만 백암아트홀은 가득 찼고 영화와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됐다. 대낮에 일 때문에 봐야한다고 당당히 업무시간에 나가서 봤던 공연 중에는 블루스퀘어에서 했던 ‘엘리자벳’이 하나 더 있다.
 

올해도 한 달 반 남짓 남은 지금, 회사 인사팀에서는 각자 부여 받은 연차를 모두 소진하라고 한다. 연차가 10일 남짓 남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대차게 쓸 수가 없다.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이 된 지금은 과거에 밥 먹듯 했던(아니 저녁밥은 안 먹어도 공연은 봤던) 평일 저녁 공연 관람이 연중행사가 되었다. 보고 싶은 공연은 물론이고 일 때문에 봐야하는 공연도 보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평일 저녁에는 육아 때문에 늦은 귀가를 쉽사리 결정하기가 힘들다.
 

초연 이후 지난 십여년간 다시 볼 수 없어 아쉬운 공연들이 있다. 창작 뮤지컬 <댄서의 순정>도 그렇지만 조정석과 홍광호가 초연에 출연했던 <첫사랑>도 나에게는 사무치게 그리운 공연이다. 뮤지컬의 매력을 처음으로 알게 한, 그야말로 나에게는 첫사랑인 셈이다. 마치 업무시간에 ‘댄서의 순정’을 보러 나갔던, 공연이 제일 우선순위에 있던 그 시절 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남은 연차는 공연 관람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연차 사유는 ‘공연 관람’ 이라고 쓰고 말이다.
 

글 : 엉캔 (newuncan@gmail.com)

 

엉캔 
플레이디비 초대 필자. 공연, 영화, 출판 에세이 평론 등을 씁니다.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 마이스케어리걸 등 공연기획을 조금 했고, 10년째 공연시장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파크에서 플레이디비 창간 멤버, 블루스퀘어 개관 멤버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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