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세기에 남을 음악 만드는 게 꿈˝ 에피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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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에피톤 프로젝트가 4년 만의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그의 이번 행보가 더욱 특별한 것은, 앨범을 공개한 데 이어 같은 제목의 에세이집 ‘마음 속의 단어들’을 출간했다는 점이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첫사랑’을 비롯해 ‘푸르른 날’, ‘소나기’ 등 에피톤 프로젝트 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성이 담긴 11곡의 음악이, 책에는 뮤지션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의 풍경과 런던 여행기가 담겼다.

에세이집 ‘마음 속의 단어들’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신곡의 가사를 써내려 갔는지, 이국의 거리에서 어떤 것들을 포착해 사진에 담았는지, 지나간 사랑을 어떻게 추억하는지, 음악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지 등을 보다 보면 한 사람의 음악 인생을 공감각적으로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책과 앨범, 두 개의 작업을 병행하느라 여느 때보다 힘들었다던 에피톤 프로젝트를 지난 15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앨범은 10월 4일에, 책은 25일에 공개됐어요. 이렇게 책과 앨범을 같은 제목으로 만드는 건 언제부터 기획하신 건가요?
실수로 말을 잘못해서 모든 게 시작됐어요(웃음). 2016년쯤 소극장 공연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한 게 부풀려져서 ‘책이 나온다더라’가 돼 버린 거에요. 근데 뱉은 말은 지키고 살아야 되니까, 이런 저런 글들을 쓰게 됐죠. 어떻게 보면 ‘마음 속의 단어들’은 이번 앨범의 작업기 같은 느낌의 책이에요. 앨범 작업 과정이 담겨있으니까요.

사실 책의 주요 테마는 ‘여행’이에요. 제가 예전에 보름 정도 짧게 여행을 다녀와서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라는 2집 앨범을 냈었는데, 그 때 언젠가는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번 앨범은 그 앨범의 심화과정인 거죠. 2016년 여름 쯤에 카메라 바디랑 렌즈 몇 개, 노트북, 미니 건반을 들고 런던으로 떠난 게 시작이었죠.

Q 왜 하필 런던이었나요?
워낙 비 오는 날도 좋아하고,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반 이상이 그 나라 출신이에요. 이들은 왜 이렇게 음악을 잘 할까, 라는 부러움 내지는 궁금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행지를 런던으로 골랐고, 거기 머무르면서 진짜 ‘생활’을 했어요. 추리닝 입고 슬리퍼 신고 마트도 다니고, 나중엔 마트 가기도 귀찮아서 식재료를 배달시켜서 음식을 해 먹고, 계속 그렇게 생활을 했어요. 콜드 플레이 공연도 보러 가고.

Q 그렇게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앨범과 책을 다 만든 거네요. 책에 들어간 사진도 다 직접 찍으셨잖아요. 
그랬죠. 음악을 만드는 날이 아니면 글을 끄적였어요. 하루는 작곡 프로그램을 열어서 곡을 쓰고, 다른 날엔 워드 프로그램을 열어서 글을 쓰고. 노트북으로 쉼없이 뭔가를 한 거죠. 밖에 돌아다닐 때도 계속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어요. 책과 앨범이 하나의 유기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책을 먼저 접하시든 음악을 먼저 접하시든, 상호적으로 연결된 체험이 될 수 있도록이요.
 
Q 런던 여행기 사이사이에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고담 혹은 추억 일기가 적혀 있어요. 일부러 내용을 이렇게 구상하신 건가요?
런던에 머물다 보면 어떤 날은 밖에 나가지만, 종일 집에 있는 날도 있잖아요. 비가 오면 하루 종일 비 오는 모습만 보고 있는 날도 있었고요. 비가 오면 다들 옛날 생각도 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나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글이 이어지게 됐어요. 제가 비 오는 날을 굉장히 좋아해요. 곡에도 비를 테마로 한 가사가 많고, 이번 앨범에도 그렇게 만든 ‘소나기’란 노래를 담았고요. 책에 있는 글들도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Q 가사를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건 어떻게 달랐나요.
가사는 어쨌든 멜로디 위에 얹혀지는 글이니까, 멜로디가 핵심이거든요.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제 경우엔 거의 90% 이상 멜로디를 먼저 만든 다음에 가사를 얹는 편이에요. 그러면 멜로디에 맞게만 쓰면 되는 거죠. 근데 산문은 채워야 할 곳이 상대적으로 너무 많고, 끝도 잘 맺어야 하더라고요. 또 출판사에서 초고를 보시고 이런저런 의견을 주시잖아요. 그래서 수정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길었어요. 처음에는 ‘에세이집’이라는 말이 좀 무겁게 느껴져서 그냥 앨범과 같이 봐주시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썼는데, 출판사에서 ‘어쨌든 에세이집이라면 개인의 철학도 들어가야 된다’고 하셔서 그런 것도 다시 생각하게 됐고요. 그러다 보니 앨범을 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던 거에요.

Q 평소에도 글과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았을 것 같아요. 책에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경외심을 느낀다”고 쓰시기도 했고요. 좋아하는 작가나 문장 스타일이 있나요?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요. 속된 표현인지 모르지만 워낙 ‘빠’와 ‘까’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인데, 저는 말하자면 ‘빠’ 쪽이에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이나 글의 느낌을 좋아해요. 제가 예민할 때 하루키 책을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근데 전 책을 잡식으로 읽는 편이에요. ‘무진기행’처럼 좀 어두침침하고 차분한 글도 좋아하고, 최근에는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같은 책도 봤어요.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도 너무 좋았고, 밥 딜런의 평전을 보기도 했고요.

제가 가사를 쓸 때 어떤 강박이 있어요. 남들은 잘 쓰지 않는 어휘들이 뭐가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늘 쓰는 어휘들을 좀 특별하게 빛낼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거든요. 가사를 쓰다가 막히면 아무 책이나 잡고 통독을 해요. 어쨌든 그 막힌 상황을 헤쳐나가야 되니까, 책이든 만화책이든 사전이든 가리지 않고 읽는 거죠. 그렇게 마구잡이로 뭐든 들고 읽는 습관이 있어요.
 
Q 책에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어요. 올해로 데뷔 12년차인데,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타성에 젖거나 적당히 타협하게 된다거나, 그럴 때도 있지 않았나요?
제가 런던에 갔을 때가 그런 고민이 많아졌을 때였어요. 어느 시점 이후로 이승기, 슈퍼주니어 등 다른 팀들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되게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어느 순간 음악 작업이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좀 타성에 젖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걸 깨고 싶어서 (런던으로) 도망갔던 것도 있었죠. 사람이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게 되게 어려운 일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내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사실 ‘첫사랑’이라는 곡이 그런 이야기이기도 해요. 음악 때문에 되게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음악이 있어서 설레고 행복하고 밤새는 줄 모르고 작업했던 그 시절 그 때의 마음으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그래서 전 이번 앨범을 듣는 분들이 ‘그래도 이 뮤지션이 변하지 않았구나, 자기만의 것을 아직 갖고 있구나’라고 느껴 주시면 되게 감사할 것 같아요. 그러려고 많이 노력했고요.

Q 그런 고민이 여행을 다녀오면서 좀 해결되었나요?
떠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외려 일만 더 많아진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어쨌든 제가 만든 습관을 스스로 깨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관습을 깨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음반 작업에 크게 필요하지는 않지만 드럼 머신 같은 것도 사서 만져보기도 하고.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해야죠.
 
Q 꼭 타성에 젖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사랑과 인생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감성이 좀 바뀌기도 하잖아요. 그러면서 변화된 부분은 없나요.
그러니까 예전보다 음반 작업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탁 하면 탁 나오던 것들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곡을 좀 쉽게 즉흥적으로 쓰기도 했죠. 근데 이제는 조심스러운 것도 많고, 곡을 써놓고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자기 검열이 되게 심해졌어요. 그러면서 저는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거죠(웃음). 주변 분들에게 먼저 음악을 들려드렸을 때도 눈치를 정말 많이 보게 되고.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Q 이번에 첫 에세이집을 내면서 새로운 작업에 도전한 셈인데, 앞으로 살면서 또 해보고 싶은 것들을 꼽는다면요.
현실적으로는 제 녹음실을 갖고 싶은데, 될지 모르겠어요. 그리도 또 다른 소망은 글쎄요…남과 북의 아름다운 화해?(웃음) 아, 제가 방에 붙여 놓은 사진 중에 옥류관하고 백두산 사진이 있어요. 거길 다녀오신 분의 얘기를 건너건너 들었는데, 옥류관 냉면은 아예 맛의 차원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잖아요. 언젠가 가서 먹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육로를 통해서 백두산에도 가보고 싶고요.
 

Q 음악가로서의 바람은요.
책에 쓴 것처럼 한 세기에 남을 노래를 한 곡쯤 만드는 것. 그런데 대중음악의 흐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거든요. 음악이 점점 소비재가 되가는 것 같아서 음악가로서 좀 안타까워요. 어쨌든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한 세기를 관통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꿈이죠.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온 지가 언젠데 21세기에 여전히 울림을 준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런 노래 하나 만들고 죽으면 좋을 것 같아요.
 

Q 이번 연말에 콘서트도 하시죠. 앨범과 책 출간 후 첫 콘서트인데, 어떤 무대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콘서트는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연세대학교 백양콘서트홀에서 할 예정이에요. 소극장 공연을 하다가 오랜만에 규모 있는 극장에서 공연을 하다 보니 아마 보여질 게 많을 거에요. 근데 제 공연이 절대 흥이 나는 공연은 아니에요. 흥이 나는 공연을 보고 싶으시면 다른 걸 보셔야 해요(웃음).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는 듯한 공연을 보시고 싶은 분들,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책 혹은 앨범 ‘마음 속의 단어들’을 만나게 될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을 먼저 접하셨다면 같은 제목의 음반은 어떨까 한번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고, 음반을 먼저 접하셨다면 책을 보면서 ‘아, 이랬었구나,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이구나’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책과 음반이 동명의 한 작품, 유닛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책이 보는 분들께 쉽게 쉽게 읽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읽고 나서 불현듯 생각이 나는 문장이 되면 좋겠죠. 음반도 마찬가지고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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