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 '땡땡주의자' 양산한 만화가 에르제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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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만화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히는 ‘땡땡’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에르제: 땡땡’ 전이 내달 말부터 펼쳐진다. 이 전시는 세계 60여 개 나라에서 3억 5천만 부 이상 팔린 명작 ‘땡땡의 모험’을 둘러싼 다양한 작품과 자료를 만날 수 있는 자리이자, ‘땡땡’을 탄생시킨 작가 에르제의 삶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유럽 만화의 아버지’라 불린 작가이자 앤디 워홀, 스티븐 스필버그 등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줬던 에르제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전시에 앞서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들여다봤다. 
 
조르주 레미, 필명 ‘에르제’(1907~1983)
에르제는 벨기에 출신의 작가로, 본명은 조르주 레미(Georges Remi)다. 본명의 이니셜(G.R)을 거꾸로 읽은 ‘에르제(R.G)’를 필명으로 썼다. 1907년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부터 활동적이고 호기심 많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특히 보이스카우트 활동에 매우 열정적으로 참여해서 ‘호기심 많은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만화가로서의 첫 경력도 보이스카우트 잡지인 ‘벨기에 보이스카우트’로 시작했다. 그가 보이스카우트 시기에 했던 경험은 이후 ‘땡땡’의 캐릭터와 모험 서사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샤를 드 골, 스티븐 스필버그 등 수많은 ‘땡땡주의자’들을 탄생시킨 에르제
에르제는 ‘땡땡’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만화가다. 그의 세계관을 심도 있게 공부하는 팬덤을 일컫는 ‘땡땡주의자(Tintinologist)’라는 단어도 있을 정도다. 그 중 한 사람은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 골로, 그는 취임식에서 “나의 유일한 라이벌은 땡땡”이라고 말한 바 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역시 에르제의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땡땡주의자’다. ‘땡땡’의 열성 팬이었던 그는 에르제가 타계하자마자 ‘땡땡의 모험’의 저작권을 사들였고, 오랜 준비 끝에 2011년 드디어 영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을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에서 ‘땡땡’은 ‘빌리 엘리어트’ ‘킹콩’의 제이미 벨이 연기했다.) 
 
(왼쪽부터)땡땡과 밀루, 에르제(1922년) 

’땡땡’의 탄생 
‘벨기에 보이스카우트’ 잡지에 ‘풍뎅이 순찰대장 토토의 기상천외한 모험’이라는 만화를 그리며 데뷔한 에르제는 그 직후 ‘소년 20세기’의 의뢰를 받고 첫 번째 땡땡 시리즈인 ‘소비에트에 간 땡땡’을 연재했다. 이 시리즈는 곧바로 큰 인기를 끌었고,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이후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하며 1976년 마지막 완성판인 ‘땡땡과 카니발 작전’이 발간되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유머와 상상력+철저한 고증이 더해진 ‘땡땡의 모험’ 시리즈 
에르제는 ‘땡땡의 모험’ 시리즈에서 대담한 기지와 행동력을 갖춘 소년 기자 땡땡, 말썽쟁이 애견 밀루, 불 같은 성격의 아독 선장 등 개성만점의 캐릭터와 유머와 서스펜스가 버무려진 서사를 선보이며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땡땡의 모험’ 시리즈가 현재까지도 교양 만화의 고전으로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역사 및 과학에 대한 에르제의 열정적인 연구였다. 그는 만화를 그릴 때 모든 공간과 건물, 인물과 사물을 철저한 고증에 기반해 그렸다. 초기엔 도서와 신문, 잡지에 있는 사진을 참고해 그림을 그렸고, 이후엔 직접 여행을 하며 자료를 수집했다. 
 
(위)실제 배의 정박 사진을 기반으로 그려진 ‘황금 집게발 달린 게’(1941)의 배
(아래)’달 탐험 계획’(1953)에 등장한 우주선 내부 그림 

이같은 조사를 통해 에르제는 인류의 달 착륙 16년 전에 출간한 ‘달 탐험 계획’(1953) 등에서 달 표면의 모습과 로켓의 내부구조를 세밀하게 묘사했고, 흑백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 출간한 ‘검은 섬’(1936)에서 TV를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등 역사와 첨단과학이 녹아든 놀라운 작품들을 남겼다.

진화하는 사상가였던 에르제
에르제는 또한 자기성찰을 통해 발전하는 사상가이기도 했다. 백인우월주의가 만연했던 시기의 유럽에서 자라난 그는 초기 작품에서 중국인들을 왜곡해서 표현하거나 아프리카 원주민을 무식한 노예로 그려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그는 이후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며 오히려 강대국의 탐욕을 풍자하는 작품을 그렸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이 드러난 ‘푸른 연꽃’(1936), 남미에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이들을 풍자한 ‘부러진 귀(1937)’ 등이 그 결과물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에르제와 창총첸, ‘푸른 연꽃’(1936)의 표지와 그림

이런 에르제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그의 중국인 친구 창총첸이다. 에르제는 땡땡의 중국 모험기를 담은 ‘푸른 연꽃’을 준비하며 창총첸을 만나 돈독한 우정을 쌓았고, 창총첸에게서 중국의 예술과 철학, 역사에 대해 배우며 동양에 대한 선입관을 스스로 깨나갔다.(창총첸은 ‘창’이란 이름으로 ‘땡땡’ 시리즈에도 등장하게 된다) ‘푸른 연꽃’을 비롯해 ‘일곱 개의 수정 구슬’(1948), ‘티베트에 간 땡땡’(1960) 등은 이처럼 자기반성을 통해 평등과 인간애에 눈을 뜬 에르제의 사상이 특히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명료한 선’ 기법의 창시자였던 에르제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유럽 만화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땡땡의 모험’에서 사물의 테두리를 굵직한 선으로 간명하게 표현하는 일명 ‘명료한 선’(Ligne Claire) 기법을 도입했다. 명암과 원근 표현을 배제하고 균일하게 그은 선으로 사물의 형상을 표현한 이 스타일은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방대한 지식을 담아낸 그의 만화에 잘 어울렸고, 이후 이 화풍의 영향을 받은 많은 만화가들이 유럽에 등장하게 된다.
 

(위)명암과 원근 표현을 배제한 에르제의 그림 스타일(‘검은 황금의 나라’(1950))

(아래)에르제(1930)


’땡땡’을 사랑했던 에르제
에르제가 ‘땡땡의 모험’ 시리즈를 이어가는 과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독일군이 감독한 신문에 ‘땡땡의 모험’을 연재한 일로 나치 부역자로 몰려 연재 정치 처분을 받기도 했고(이후 레지스탕스계 출판업자의 요청으로 복귀했다) 우울증과 이혼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땡땡’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에르제는 어려운 시기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캐릭터와 주제를 발굴해 작품을 발전시켰고, 인종차별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인류애가 담긴 만화를 남겼다. ‘땡땡’을 자기 자신이라고 부를 만큼 큰 자부심과 애정을 보였던 그는 자신이 죽은 뒤 다른 만화가가 땡땡 시리즈를 이어서 그리지 않도록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에르제는 1983년 백혈병으로 숨을 거뒀고, 고인의 당부에 따라 ‘땡땡’ 시리즈는 오직 그의 작품으로만 세상에 남게 되었다.
 

'에르제 : 땡땡'전은 내달 21일부터 내년 4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참고: 매거진 그래픽 노블 vol.3 땡땡의 세계(2016, 피오니북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출처: 땡땡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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