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내게 소중한 것, 천천히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벙커 트릴로지' 신성민
- 2018.12.12
- 박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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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과작을 했던 이유에 대해 신성민은 “능력이 안 돼서”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자신의 행보를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기를 주저하는 겸손함과 신중함이, 그리고 한 순간 한 순간의 무대를 소중히 여기는 따스한 마음이 바로 그만의 결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펼칠 ‘벙커 트릴로지’ 무대는 분명 2년 전과는 또 다른 깊이로 다가올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차분히 숨을 고르며 자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의 앞날이 뜻 깊은 걸음걸음으로 채워지기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Q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오시게 됐어요. ‘벙커 트릴로지’에 다시 출연하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감사하게도 다시 불러주셔서(웃음). ‘벙커 트릴로지’는 제게 굉장히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은 공연이에요. 물론 제가 했던 모든 공연이 다 소중했지만, ‘벙커 트릴로지’ 초연 때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힘들면서도 가슴 뛰고 설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다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저도 많이 기다렸던 작품이니까요.
다행히 관객 분들도 많이 기다려주신 것 같아서, 우리가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물론 새로 보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개막 전부터 티켓이 매진됐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우리가 이 극장 안에서 같이 좋은 기억을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힘도 나고 굉장히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Q 혹시 이번에 초연과 달라지는 부분이 있나요?
네, 있어요. 전체적인 포맷은 바뀌지 않겠지만, (초연에 비해) 좀 더 발전시키는 게 크리에이티브 팀과 배우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지 동선을 바꾼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깊어져야겠죠. 예를 들어 세 에피소드 중 ‘모르가나’의 경우엔 관객 분들이 보시기에 좀 더 친절하게 바뀐 것 같아요. ‘이걸까, 저걸까’ 하고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이 좀 더 명확해진 느낌을 받았어요.
재연이든 삼연이든, 제가 어떤 공연을 다시 하게 되더라도 처음에 했던 걸 똑같이 하지는 않을 거에요. 관객 분들도 그걸 기대하지 않으실 테고. 초연을 두 달 반 동안 하면서 얻어지고 만들어진 것들도 있고, 제가 ‘벙커 트릴로지’를 한 뒤 2년 동안 여러 경험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좀 바뀌거나 넓어진 부분들도 있을 테고요. 그러니 다시 대본을 꺼내 봤을 때 분명히 새롭게 느끼는 것들이 있죠.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달라진 것들을 다 얘기하려면 세 시간은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웃음), 특히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건 ‘아가멤논’의 요한에 대한 거에요. 요한의 경우는 등장하는 시간이 짧고 하다 보니 제가 많은 것을 하려고 하기 보다 상대에게 줄 것만 주고 빠져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내가 좀 더 그 안에서 살아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요한을 하는 재미가 더 많이 생겼어요. 더 깊고 진하게 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 누나들(정연, 이진희)과 주고받는 것도 더 생기고, 재미있어요.
‘맥베스’의 경우엔 개인적으로 초연 때 조금 아쉬웠던 게 있었어요. 극에서 초가 켜지면 연극(극중극)이 시작되고 초가 꺼지면 현실로 돌아오는 형식이었는데, 그 형식 말고 내 연기를 생각해보면 좀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거든요. 맥베스로 들어갔을 때와 마크로 나왔을 때 각 연기를 좀 더 선명하게 가져가면 관객 분들이 보시기에 훨씬 편하지 않을까, 사실 초연 때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는데 버거워서 잘 안 됐거든요. 지금은 연습하면서 좀 더 여유가 생기다 보니 좀 더 잘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두 인물의 표현도 좀 더 다르게 가져가고, 그러면서도 둘 사이에 서로 맞닿은 지점을 좀 더 진하게 가져가보려고요.
Q 세 에피소드 중 가장 감정적인 울림이 큰 부분을 꼽는다면요.
아무래도 ’모르가나’죠. 사실 다른 에피소드도 다 안타까워요. ‘아가멤논’은 크리스틴은 크리스틴대로, 알베르트는 알베르트대로 안타까운 부분들을 갖고 있고, ‘맥베스’도 그렇죠. 근데 ‘모르가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 가서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오자’했던 아이들이 전쟁터에서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겪은 거잖아요. 극의 마지막에 친구들이 다 죽고 아더가 혼자 남아서 그 친구들의 이름을 얘기하는데, 그게 안타까움을 넘어서 부대낄 때가 있어요. 가장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마음이 아파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죠. 근데 그 때는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제가 정말 그 마음을 갖고 연기해야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간 분들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뮤지컬을 안 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예전에 연극 ‘환상동화’를 했던 게 되게 즐겁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연극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나무 위의 군대’를 하게 됐고, 그 때 지이선 작가님을 알게 됐어요. 작가님이 ‘카포네 트릴로지’를 추천해주셔서 김태형 연출님을 만나게 됐고, ‘카포네 트릴로지’가 끝나고 ‘벙커 트릴로지’를 하자고 하셔서 또 하게 된 거죠. ‘유도소년’은 간다(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와 꼭 한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참여하게 됐고요. ‘킬 미 나우’는 굉장한 도전이었지만, (이)석준 형, (이)진희 누나, (오)정택이 등 내가 벽에 부딪혔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고요.
연극만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방금 이야기했듯 어떤 연결고리들이 있어서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에요. 지금은 ‘뮤지컬을 안 한지 오래 됐네? 다시 해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있죠. 굳이 분리해서 생각한 건 아니에요.
Q 다른 배우들에 비해 공연 사이 공백기도 좀 긴 편이었던 것 같아요. 다작을 하는 분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웃음).
그래도 하고 있지 않나요?(웃음) 너무 드문드문이었나? ‘사춘기’ 끝나고 ‘나무 위의 군대’ 하기 전에는 정말 좀 쉬고 싶었어요. 그래서 1년 정도 쉬었죠. 공연을 하면서 얻는 것도 있지만, 공연을 안 하면서 얻는 것들은 좀 다르거든요. 위험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연기는 제 삶의 아주 소중한, 없으면 안 되는 ‘일부’에요. 많은 비율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다작도 하고 싶어요. 근데 제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공연이 1주일 정도 겹친 적이 있었는데, 제가 능력이 안 되다 보니까 관객 분들께 죄송한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귀한 시간 내서 오셨으니 힐링을 얻고 가셔야 되는데, 그걸 충족시켜드리지 못하면 그건 프로가 아닌 거죠. 전 돈을 받으면서 하고 있는 건데. 내 능력이 되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되나요? 저 물 빠진 것 같아서(웃음). 오랜 기간 동안 천천히 물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나이 많이 들어서도 계속 지금의 마음으로 (연기를) 하고 싶거든요. 쉬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아, 공연하고 싶다, 연기하고 싶다’고. 그게 저한테는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거에요. 내가 정말 이 일을 좋아한다는 걸 그 때 많이 느꼈거든요.
예전에는 이 일을 연기하는 즐거움, 행복감, 카타르시스 같은 것들로만 생각하고 좋아했어요. 근데 나이를 더 먹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연기라는 걸 하고 있는데 이 공연을, 또 나라는 개인을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 내 연기활동을 궁금해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생긴단 말이죠. 우리 작품의 대사를 빌리자면 얼마나 “마법 같은” 일이에요. 그래서 더 좋아할 수밖에 없고, 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요. 이 일 자체도 좋지만, 이 일로 인해서 고맙고 감사한 분들로 인한 행복이 또 생겼으니까요.
물론 스트레스는 있지만, 어떤 일이든 스트레스는 당연히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힘듦 속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명확히 만들었을 때, 또 그것을 보여주고 사랑을 받았을 때, 제가 추구하는 인생의 방향에서 그 이상의 행복감과 만족감이 없죠. 전 그렇게 생각해요.
Q 올해 ‘훈남정음’을 시작으로 ‘친애하는 판사님께’ ‘라이프’ ‘최고의 이혼’ 등 드라마에도 출연하셨어요. 드라마 촬영은 어땠나요. 촬영 환경이 무대와는 다르다 보니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경우엔 제가 다른 사람을 납치하는 장면이 있어서 창고 같은 데서 밤을 새서 찍기도 했는데, 드라마도 참 힘들게 작업하는구나, 라는 생각은 했죠. 근데 새로운 경험이다 보니 재미있었어요.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알게 되고.
Q 배우로서 성공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이야기하신다면요. 각자 기준이 다 다를 테니까요.
지금도 나쁘지 않아요.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고, 작품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죠. 사실 배우로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건 연출과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얘기에서 내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면, 또 그런 작업을 통해서 관객 분들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 행복감은 삶의 질적인 면에서 되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제가 느끼는 다른 소소한 행복들도 있지만, 여기서 느끼는 행복감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돈을 많이 벌고, 그런 것도 좋겠죠. 근데 방향성을 그쪽으로 두고 가면 이 작업이 행복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하는 작업에서 만족을 찾고 행복감을 느끼고, 보다 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좋은 배우가 되는 길이 어떤 건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찾고 있어요. 그냥 이렇게 하다 보면 안주하지 않고, 고이지 않고, 정체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일을 하면서 고여있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어쨌든 계속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고, 느껴지는 대로도 가보고, 계획도 세워보고, 여러가지를 많이 시도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시대도 계속 변하고 사람도 변하겠지만, 그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 저만의 기준을 갖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올해 새로운 장르(드라마)에서 활동하고 다시 무대로 복귀하시게 됐는데, 2018년은 어떤 해가 되고 있나요?
이번 ‘벙커 트릴로지’에서 같은 역에 새로운 배우가 들어왔잖아요. (박)은석이 형은 우리가 초연에 해왔던 것과는 좀 다르게 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걸 보면서 ‘저런 것들도 있구나’하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뭘 하든 항상 성장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거면 됐어’ 하는 순간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아직 12월이잖아요. 2018년을 이렇게 보냈다고 말하기엔 아직 좀 성급한 것 같아요. 나중에 돌아봤을 때 2018년이 저에게 좋은 기억이었으면 좋겠고, 충만한 한 해였으면 좋겠죠. 그런 생각으로 매년 살고 있어요.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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