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김준수 무대 여전히 인상적…정택운의 토드도 강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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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하엘 쿤체와 콤비를 이뤄 ‘엘리자벳’ ‘모차르트!’ ‘레베카’ 등 많은 인기 뮤지컬을 만든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네 번째로 공연되고 있는 ‘엘리자벳’도 직접 만나보고, 한국의 뮤지컬 창작자들에게 자신만의 작곡 노하우를 나누기 위한 걸음이다.

헝가리 출신의 실베스터 르베이는 1992년 ‘엘리자벳’으로 뮤지컬 작곡가로서의 첫 경력을 쌓았다.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성공한 작곡가였지만, 뮤지컬 장르에서는 신인이었기에 부담없이 자유롭게 곡을 써내려 갈 수 있었다고. 그렇게 만들어진 ‘엘리자벳’은 비엔나 초연에서 대성공을 거뒀고, 이후 독일, 한국, 일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관객들을 만나며 올해로 26년째를 맞았다. ‘엘리자벳’ 뿐 아니라 ‘레베카’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등 여러 작품으로 한국과 각별한 연을 맺어온 그를 지난 13일 만나 ‘엘리자벳’과 뮤지컬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이번 한국의 ‘엘리자벳’ 네 번째 프로덕션 공연을 본 소감은.
어제 공연을 봤는데, 공연이 너무너무 뛰어나서 매우 행복했다. 특히 오랫동안 친분 관계를 맺어온 김준수를 오랜만에 봐서 좋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옥주현의 공연도 봐서 더욱 특별했다. 앙상블들의 에너지도 무대를 가득 채워줬다. 마지막 커튼콜 때 김준수의 팬들이 소리를 지르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예전에 김준수와 뮤지컬 콘서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한국의 열광적인 팬 문화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어제도 공연 중에 김준수가 노래를 하면 관객들이 박수를 치다가 그 다음엔 바로 또 몰입해서 극에 집중하더라. 신기했다.

Q 얘기한 대로 김준수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는데, 그가 전역 후 배우로서 어떻게 성장했다고 느꼈나. 
어제 김준수에게 직접 얘기하기도 했지만, 무대 위의 모습이 굉장히 극적이면서도 긴장감과 위협이 공존하는 느낌이 무척 좋았다. 그러면서 엘리자벳에 대한 낭만적인 감정을 유지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Q 이번 공연에 엘리자벳 역 신영숙, 토드 역 박형식과 정택운 등 새로운 배우들이 합류했다. 그들의 공연도 봤는지, 소감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신영숙의 공연은 내일 볼 예정이다. 어제 낮 공연에서 정택운의 공연을 처음 봤는데, 바로 마음을 빼앗겼다. 노래 실력도 뛰어나지만 움직임이 굉장히 멋져서 토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엘리자벳과의) 케미도 좋았다. 노래 실력이 모던하면서도 움직임이 굉장히 강렬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국 배우들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내게 기분 좋은 일이다.
 
“‘엘리자벳’은 내게 특별한 의미 지닌 초기작"

Q ‘엘리자벳’이 1992년 비엔나에서 초연된 지 올해로 26년째다. 그동안 이 작품이 어떻게 발전되어온 것 같나. 
‘엘리자벳’은 그동안 다양한 변화를 거쳐왔고, 무엇보다 국제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공연됐다는 점에서 나도, 미하엘 쿤체도 굉장히 기뻐하고 있다. 어제 본 한국의 ‘엘리자벳’만 해도 그동안 시간과 함께 성장해왔다는 게 느껴지더라. 클래식한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모던한 부분이 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Q ‘모차르트!’ ‘레베카’ 등 다른 여러 작품도 만들었는데, ‘엘리자벳’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 작품인가.
‘엘리자벳’은 내가 본격적으로 만든 첫 번째 뮤지컬이어서 그 만큼 의미가 크다. 이걸 만들 때 창작적인 면에서 굉장히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 전에 뮤지컬을 만든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한테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이 작품이 비엔나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미하엘 쿤체와 ‘모차르트!’ 등의 작품을 만들 때는 성공에 대한 부담과 압박감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굉장히 자유롭게 즐기며 작곡을 했다는 점에서 ‘엘리자벳’은 내게 특별한 작품이다.

Q 19세기에 살았던 황후의 이야기를 현대를 살아가는 창작자가 내면화해서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그녀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나.
내 모국인 헝가리에서 엘리자벳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인물이다. 나도 팬의 입장에서 그녀를 오랫동안 좋아했고, 내 아내 역시 엘리자벳에 대한 많은 책과 사료를 갖고 있어서 자연스레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서 ‘엘리자벳’ 작업을 시작했을 때 이미 내게는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황후였고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인물이지만, 그 이전에 내게는 하나의 인간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공감하거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많았다.
 
"한국어와 '엘리자벳' 잘 어울려...한국 배우들 수준은 세계 최고" 

Q 한국 배우들에 의해 한국어로 표현되는 ‘엘리자벳’은 어떤 특징을 가진 것 같나. 

우선 한국어 자체가 음악에 굉장히 적합한 언어 같다. 단단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발음과 울림이 섞여있는 언어라는 인상을 받았다. ‘엘리자벳’이나 ‘모차르트!’의 가사가 어떻게 번역이 됐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듣기에는 음악과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유럽 언어 중 네덜란드 언어가 한국어처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발음으로 이뤄져 있는데, 노래로 불렀을 때는 한국어만큼 음악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언어를 떠나 배우들이 가진 역량으로 인해 소리가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에 한국 배우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표현해낼 때 ‘엘리자벳’의 음악이 굉장히 잘 표현되는 것 같다.

Q ‘엘리자벳’, ‘모차르트!’ ‘레베카’ 등 자신의 작품이 한국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감수성과 이야기 면에서 잘 소통될 수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내 경험상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열정적이고 직설적으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다. 크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만큼 감정이 굉장히 풍부하다. 내 작품 안에도 그런 풍부한 감정이 담겨 있어서, 그게 잘 이해되고 소통되지 않나 싶다.

Q 뮤지컬 작곡을 하기 전 할리우드에서 영화 음악을 작곡했던 것으로 안다. 뮤지컬 작업은 그 전에 했던 작업과 어떻게 달랐나. 
재미난 건, 내가 쿤체의 제안으로 ‘엘리자벳’을 만들기로 했을 때가 한창 할리우드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할리우드를 떠나면 앞으로 내 경력이 어떻게 될까 고민했는데, 아내가 그런 것에 미련 두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격려해줘서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때의 결정이 내가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쌓아가는 데 있어 큰 전환점이 됐다.

나는 어렸을 때 클래식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그러다 재즈에 관심을 가졌고, 나중에는 팝과 영화 음악을 하다가 결과적으로 뮤지컬 음악을 하게 됐다. (뮤지컬을 하기 전의) 과정이 내게는 중요한 음악적 자산이 됐다. 뮤지컬을 하는게 내게 가장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정서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작업이 가장 뜻 깊다.
 

“작곡은 결국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특별한 소재로 새 작품 준비 중”


Q 미하엘 쿤체와 오랫동안 작가와 작곡가로서 함께 작업을 해왔다.
예전에 내가 뮌헨에 있는 한 음악 스튜디오에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고 쿤체가 와서 같이 작업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 순간 우리 사이에 뭔가 화학작용이 이뤄진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이후 수십 년 간 쭉 작업을 해오고 있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이미 너무 확고한 우정이 쌓여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 이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아는 정도다. 작곡가가 되려는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쉽지는 않겠지만 꼭 좋은 작업 파트너를 만나라는 것이다. 서로 비판하고 보완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EMK뮤지컬컴퍼니와도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오며 한국에서 여러 차례 작업을 해왔는데. 
한국과의 인연,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보면 창작과 비즈니스적인 관계가 맞물려 있는데, 그 안에 우정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서로 신뢰가 있어서 어려움이 있거나 창작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더 열린 마음으로 쉽게 풀어갈 수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한국을 굉장히 좋아하고, 여기 올 때마다 기분이 좋기 때문에 그 자체가 내게 큰 힘이 된다.
 

Q 좋은 음악을 만드는 자신만의 노하우는 무엇인가. 작곡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은.
음악적인 기초는 책을 통해 배울 수 있겠지만, 뮤지컬 음악이든 영화 음악이든 전반적인 부분은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표현해야 하고, 자기 안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곡을 하다 보면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절망감에 빠지기도 하고, 내 능력에 대해 의심과 불안감도 느끼게 된다. 젊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런 모든 과정을 받아들이고 컨트롤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쉽게 항복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 역시 지금도 작곡을 할 때 내 작업에 대해 확신이 안 서서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다.
 

Q 벌써 여러 차례 내한했는데, 한국에 오면 보통 어떤 것들을 즐기나.
아무래도 가장 좋아하는 게 숯불 고기를 먹는 것이다(웃음). 고기의 질도 좋고, 반찬도 맛있고, 김치도 즐겨 먹는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음식은 김준수와 뮤지컬 콘서트를 할 때 올림픽경기장에서 자주 시켜 먹었던 굽네 치킨이다.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웃음). 또 전에 EMK뮤지컬컴퍼니의 김지원 부대표와 서울을 벗어나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산 속에 있는 사찰도 가봤는데, 너무 재미있고 좋은 경험이었다.
 

Q 현재 준비하고 있는 새 작품이 있다면.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인데, 외교적으로 표현하자면(웃음) 굉장히 특별한 소재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다. 굉장히 아름다운 소재여서 기대가 되고, 한국에서도 성공적인 작품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일부러 비밀에 부치려는 것은 아닌데, 미하엘 쿤체와 나는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확신이 섰을 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금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조금 조심스럽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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