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형식의 공연 ‘새닙곳나거든’의 특별한 제작일지
- 2019.01.22
- 강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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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버들 가려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데
자시는 창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자시는 창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위의 시조는 조선시대 함경도 홍원 지방의 관기였던 홍랑이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지난 21일 개막한 ‘새닙곳나거든’의 제목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이 공연은 조선의 신분제 사회에서 있었던 양반과 기생. 그 둘의 사랑의 순간, 찰나의 감정에 집중했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한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의 석재원 프로듀서가 ‘새닙곳나거든’의 시작과 연습 과정을 담은 글과 사진을 보내왔다. 수개월의 창작 작업을 이끈 그녀의 글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공연 ‘새닙곳나거든’의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함께 살펴보자.
이별의 순간 시작된 작품
'새닙곳나거든'은 나이 다 들어 겪은 나의 이별의 순간에서 시작되었다. 감정이라는 게 나이가 들면서 풍성해지고 살짝 조절이 가능하면서 억제와 방임을 통해 또 다른 슬픔과 기쁨이 생겨나는 것 같다. 특히 이별의 순간에는 억제의 능력이 나이와 비례하면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내가 겪고 있는 이 감정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보고 계획해보고 유익한 방식으로 도출하는 연륜(?)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이별의 순간, 그때의 감정을 느껴지는 대로 기록해 공연 기획안을 만들었다.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표현해 볼 수 있을까'. 그것이 대사가 아닌 움직임과 공간성으로, '지금 이 애달픈 감정을 무대 위에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과 열망으로 ‘새닙곳나거든’은 시작됐다.
홍랑이 남긴 시조, 그 찰나의 순간을 무대로
이런 기획의도와 어울리는 텍스트를 찾다가 시조를 만났다. 시조는 짧은 문장 안에 섬세하게 감정이 묘사되어 있어 우리 공연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러 던 와중에 양반 최경창과 그의 연인 홍랑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최경창과 홍랑은 평생의 풍류 반려로 사랑을 나눴던 문인과 기생이다. 최경창이 북도평사로 함경도의 경성으로 가는 길에 홍원의 관기였던 홍랑과 만나 찰나의 사랑을 나누고 헤어졌다. 이후에 둘은 단 2번의 짧은 만남만 있었다.
홍랑이 남긴 한 편의 시조는 그녀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최경창에게 보낸 시조다. 그 시조는 이별의 순간 내가 느꼈던 애달픈 감정과 닿아 있었고, 그 상황이 흡사 나와 비슷해 '그 시조가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어 홍랑의 시조를 가지고 작품을 개발했다.
저마다 다른 장르에서 활동해온 창작진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등을 수상한 강량원 연출,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 지현준, 판소리 ‘필경사 바틀리’로 제5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임영욱 작가, 음악감독 겸 피리 연주자인 김시율이 이 작품을 위해 모였다. 우리들은 모두 한번 쯤은 감정, 감각을 다룬 공연을 해보고 싶었던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시조를 바탕으로 한 공연을 기획하면서 자연스럽게 국악으로 음악을 정했다. 얇은 관을 타고 풍부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피리로 무대를 채우기로 마음먹고 피리 연주자 김시율을 연주자 겸 음악감독으로 섭외했다. 지현준 배우는 십여 년 전 한 연극 때문에 만났고, 그 이후에 이상하게 현대무용을 보러 가면 그곳에서 늘 그를 만났다. 그에게 "언젠가는 아름다운 움직임으로 가득 찬 공연을 한번 해 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드디어 이번 작품에서 그와 함께 하게 됐다.
또한 지 배우의 소개로 강량원 연출을 소개받았는데 아무 준비가 없는 상태였는데도 그는 선뜻 이 제안을 받았다. 움직임이 주가 되는 극이고, 시조를 바탕으로 하는 함축적인 대본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국악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임영욱 작가를 만났다. 그는 처음 만날 날부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등을 수상한 강량원 연출,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 지현준, 판소리 ‘필경사 바틀리’로 제5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임영욱 작가, 음악감독 겸 피리 연주자인 김시율이 이 작품을 위해 모였다. 우리들은 모두 한번 쯤은 감정, 감각을 다룬 공연을 해보고 싶었던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시조를 바탕으로 한 공연을 기획하면서 자연스럽게 국악으로 음악을 정했다. 얇은 관을 타고 풍부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피리로 무대를 채우기로 마음먹고 피리 연주자 김시율을 연주자 겸 음악감독으로 섭외했다. 지현준 배우는 십여 년 전 한 연극 때문에 만났고, 그 이후에 이상하게 현대무용을 보러 가면 그곳에서 늘 그를 만났다. 그에게 "언젠가는 아름다운 움직임으로 가득 찬 공연을 한번 해 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드디어 이번 작품에서 그와 함께 하게 됐다.
또한 지 배우의 소개로 강량원 연출을 소개받았는데 아무 준비가 없는 상태였는데도 그는 선뜻 이 제안을 받았다. 움직임이 주가 되는 극이고, 시조를 바탕으로 하는 함축적인 대본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국악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임영욱 작가를 만났다. 그는 처음 만날 날부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매주 1회의 특별한 만남
다섯 명의 창작진은 매주 주제를 정해서 한 주 동안 준비를 하고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눴다. 주로 사랑, 애달픈 감정, 조선시대 등 시조와 기획 의도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우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궁금증이 해결이 안 될 때는 정가(국악) 보컬리스트 박민희, 뇌신경심리학자 장재키를 모셔서 강의를 들었다. 특히 장재키 감독은 우리 공연에 정식으로 연기 코치로 합류해 신경심리에 따른 여자의 몸, 남자의 몸 그리고 중세의 몸과 현재의 몸을 알려주어 연기하는 배우에게 기본이 되는 정보를 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공연에서 지현준 배우가 최경창의 몸으로 또 홍랑의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이때 홍랑의 몸을 연기할 때는 여자의 호흡이 보다 낮아 걸음걸이나 움직임을 할 때 몸을 좀 더 낮춰야 한다. 또한 죽음에 이를 때 현실은 심장이 아니라 췌장이 먼저 뭉그러뜨려지는 게 맞다. 이 같은 정보를 통해 지 배우가 무대에서 죽음을 표현할 때 심장을 부여잡는 게 아니라 췌장이 있는 쪽을 먼저 고꾸라지게 해 움직임의 가닥을 잡을 수 있도록 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이야기
여전히 나는 서사가 강한 작품을 많이 한 제작자이고 신체언어라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지만 오히려 그런 덕분에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뚫어져라 연습을 파헤치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서 조금은 신체언어라는 것, 움직임이라는 것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은 조선시대 8대 문인 중 한명인 최경창과 그의 풍류반려이자 관기였던 홍랑이 나눈 사랑을 18개의 장면으로 구성했다. 최경창과 홍랑의 짧지만 깊은 사랑을 담은 ‘새닙곳나거든’은 최경창의 무덤 앞에서 얼굴을 자해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는 홍랑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홍랑이 길고 긴 걸음을 걸어 관기의 법령을 어기면서 병중에 있는 연인 최경창을 만나 보살피고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부디 관객들이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여지는 대로' 각자의 이야기를 느끼고 담아주면 좋겠다.
글: 석재원
정리: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크리에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다섯 명의 창작진은 매주 주제를 정해서 한 주 동안 준비를 하고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눴다. 주로 사랑, 애달픈 감정, 조선시대 등 시조와 기획 의도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우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궁금증이 해결이 안 될 때는 정가(국악) 보컬리스트 박민희, 뇌신경심리학자 장재키를 모셔서 강의를 들었다. 특히 장재키 감독은 우리 공연에 정식으로 연기 코치로 합류해 신경심리에 따른 여자의 몸, 남자의 몸 그리고 중세의 몸과 현재의 몸을 알려주어 연기하는 배우에게 기본이 되는 정보를 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공연에서 지현준 배우가 최경창의 몸으로 또 홍랑의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이때 홍랑의 몸을 연기할 때는 여자의 호흡이 보다 낮아 걸음걸이나 움직임을 할 때 몸을 좀 더 낮춰야 한다. 또한 죽음에 이를 때 현실은 심장이 아니라 췌장이 먼저 뭉그러뜨려지는 게 맞다. 이 같은 정보를 통해 지 배우가 무대에서 죽음을 표현할 때 심장을 부여잡는 게 아니라 췌장이 있는 쪽을 먼저 고꾸라지게 해 움직임의 가닥을 잡을 수 있도록 했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이야기
여전히 나는 서사가 강한 작품을 많이 한 제작자이고 신체언어라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지만 오히려 그런 덕분에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뚫어져라 연습을 파헤치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서 조금은 신체언어라는 것, 움직임이라는 것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은 조선시대 8대 문인 중 한명인 최경창과 그의 풍류반려이자 관기였던 홍랑이 나눈 사랑을 18개의 장면으로 구성했다. 최경창과 홍랑의 짧지만 깊은 사랑을 담은 ‘새닙곳나거든’은 최경창의 무덤 앞에서 얼굴을 자해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는 홍랑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홍랑이 길고 긴 걸음을 걸어 관기의 법령을 어기면서 병중에 있는 연인 최경창을 만나 보살피고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부디 관객들이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여지는 대로' 각자의 이야기를 느끼고 담아주면 좋겠다.
글: 석재원
정리: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크리에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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