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향기를 품은 현대적 각색. 연극 <햄릿-더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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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그게 뭐 어떻다는 거야” (연극 <햄릿 더 플레이> 중)
 

셰익스피어의 고전 희곡 <햄릿>은 4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졌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갈수록 관객들은 햄릿에게 공감하기 어려워졌다. 햄릿의 뜨거운 복수심은 희곡이 쓰여진 당시의 가치관으로는 당연한 것이지만, 오늘날 관객들에게는 다소 맹목적이거나 잔인해 보일 수 있다. 철학적이고 함축적인 대사도 어렵게 느껴진다.

 

지난 4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개최된 연극 <햄릿-더 플레이>의 프레스콜에서는 고전의 정수를 어떻게 하면 현대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햄릿을 번갈아 연기한 김강우, 김동원을 비롯한 12명의 배우는 전막시연 130분 동안 <햄릿-더 플레이>가 기존의 <햄릿>들과 어떻게 다른지 뚜렷하게 보여줬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숙부에게 햄릿이 복수를 계획한다는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차별점을 보인다.
 

연극은 어린 햄릿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앙증맞은 체구의 아역 정재윤은 등장인물들을 상징하는 장난감 말을 무대 가장자리에 배치하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어린 햄릿은 광대 요릭과 더불어 고전 <햄릿>에는 등장하지 않는 배역이다. 김동연 연출은 지난 2001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희곡 <햄릿–슬픈 광대의 이야기>를 쓰면서 어린 햄릿을 탄생시켰다. 15년 전 쓰여진 이 작품을 새롭게 다듬은 연극이 <햄릿–더 플레이>다.

 

어린 햄릿은 햄릿이 왜 그렇게 강렬한 복수심에 휩싸이게 되는지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창조됐다. 어린 햄릿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열심히 연극을 연습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들은 햄릿이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린 햄릿과 성인 햄릿의 시간을 오가며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햄릿이 아버지를 잃었을 때 느꼈을 상실감과 복수심에 공감하게 된다.
 

“햄릿 원작을 보면 좀 지루해요. 그리고 햄릿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죠. 관객과 극 중 인물의 가슴이 맞닿는 부분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아마 김동연 연출님도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어린 햄릿들 덕분에 관객들이 햄릿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린 햄릿들을 보면 마음이 찡해지기도 하고요. 연기하면서 감정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김강우)
 
<햄릿-더 플레이>의 배경은 휴전 중인 가상의 시대와 국가다. 시대적 배경이 뚜렷하지 않은 만큼 의상과 소품도 중세와 현대가 혼합된 모습을 보여줬다. 흑과 백, 두 가지 색만으로 심플하게 디자인된 모노톤 의상은 군데군데 중세 귀족 복식의 흔적을 품고 있었고, 인물들은 원작에서처럼 칼로 싸우다가도 막상 사람을 죽일 땐 총을 쓰기도 한다.

“디자이너랑 얘기하면서 햄릿의 의상은 죽음과 까마귀를 상징하는 블랙 톤으로 하고, 그 외 인물들은 화이트 톤으로 맞춰달라고 했어요. 여기에 빨간 광대코와 어린 햄릿의 빨간 바지처럼 색이 들어간 의상으로 포인트를 줬는데 ‘비극 속에 있는 희극’이란 의미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어릴 적 꿈꿔왔던 세계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 사이의 이질감, 혹은 비극과 희극 사이에 놓인 삶의 아이러니를 표현해 봤습니다.” (김동연 연출)
 

연극은 원작 <햄릿>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면서도 고전적 어투는 그대로 살렸다. 김동연 연출과 함께 극을 쓴 지이선 작가는 공감 가는 햄릿을 만들고자 노력하면서도 원작이 던지는 메시지 자체는 오롯이 살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날 시연에서도 사극투 어미와 만연체가 군데군데 도드라졌다. 하지만 긴 호흡의 문장도 유려하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안정적 연기 덕분에 흐름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햄릿이 갖고 있는 문장들이 주는 강력한 힘은 지금도 분명히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전체적인 독백이나 대사의 디테일이 아직도 가슴을 울컥하게 할 때가 있어요. 특히 극중에서 연극에 대해 설명하는 “거짓이란 미끼로 진실이란 잉어를 낚는 것”이란 대사가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어요. 이번 작품은 햄릿을 재해석해 보여드리지만, 원작 속 문장들의 구조와 단단함을 지켜낸다면 관객들도 충분히 고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지이선 작가)
 

데뷔 15년만에 연극에 도전하는 김강우는 그동안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줬던 연기와는 확연히 다른 발성과 몸짓으로 무대에 섰다. 연인 오필리어의 죽음 앞에서 이성을 잃고 울부짖는 장면이나, 자신의 어머니를 협박하는 광기어린 눈빛에서 남다른 에너지와 각오가 느껴졌다.

 

"저는 공연계에서는 신인이거든요. 여기 계신 모든 배우가 저한테는 선배고요, 여기 어린 햄릿들도 다 선배예요.(웃음) 신인의 자세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작품을 해나가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예전의 기억들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하나하나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김강우)
 

햄릿의 내적갈등을 세밀하게 그려내 햄릿이 왜 ‘죽느냐 사느냐’로 고민하는지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연극 <햄릿-더 플레이>는 오는 10월 16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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