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원 "'남자 냄새' 풍기는 배우가 될 거에요"
- 2016.08.08
- 박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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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외로 그는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진지했다. “남자 냄새 풍기는 배우가 될 거에요.”라고 말할 때 그가 지은 수줍은 미소는 풋풋하면서도 신중한 열의를 느끼게 했다. 이미 많은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섰는데도 여전히 단단한 긴장감을 품은 배우라니, 신선하고 반가웠다. 그의 다음 무대가, 그리고 서른 살 무렵 그의 모습이 사뭇 궁금해진 이유다.
Q <그날들>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초연 때 <그날들>을 봤어요. (오)만석, (최)재웅이 형 공연을요. 일단 제가 김광석 노래를 많이 좋아해서 기대하고 보러 갔는데, 공연이 기대 이상이었어요. 노래와 이야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울려지더라고요. 드라마도 너무 좋았고. 그래서 한번쯤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이번에 운 좋게 참여하게 돼서 영광이죠.
Q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 새롭게 합류하면서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이고, 스텝 분들이나 배우 분들 중에도 이미 서로 잘 아시는 분들이 많아서 부담감도 컸죠. 그분들과 어떻게 하면 다른 색깔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도 됐고요. 그런데 처음보다 지금은 그 부담감은 많이 풀린 것 같아요. 저만의 무영을 잘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또 다른 부담감은 노래가 너무 좋은데 어떻게 음악을 잘 살릴 수 있을까였어요.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웃음).
Q 평소 즐겨 들었던 김광석의 노래가 있나요?
일단 제가 (공연에서) 부르는 ‘사랑했지만’을 되게 좋아했어요. ‘그날들’이나 ‘먼지가 되어’도 좋아했고요. 최근에는 가수들이 옛날 노래를 많이 편곡해서 부르잖아요. 그래서 많이 접하기도 했고, 김광석을 원래 좋아하기도 했고요. 전 노래방 가서도 최신가요보다는 옛날 노래를 많이 부르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지금 너무 좋아요.
Q 극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요.
마지막에 정학이 상상 속에서 무영과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정학이 무영에게 “넌 그대로네, 나만 늙었네. 미안하다, 나만 그런 줄도 모르고…”라고 말을 건네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되게 짠하더라고요. 선배님들이 워낙 연기를 잘 하셔서 그 눈빛만 봐도 슬픈 게 너무 잘 드러나거든요. 가장 마음이 짠하고 와 닿았어요.
무영은 정말 만화 속에 나오는 캐릭터 같잖아요. 모든 게 완벽하고(웃음). (기자: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나요?) 비슷한 부분을 꼽는다면 자유분방한 모습 정도? 제가 원칙주의자나 딱딱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아직은 좀 어린 나이기도 해서 그런 자유로움이 좀 비슷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영이라는 인물을 어디서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완벽한, 만화에서 나온 것 같은 캐릭터라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찾아보려고 해도 잘 없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어려웠는데, 지금은 제 안에서 무영의 모습을 찾고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다운 무영, 제가 제 색깔로 표현할 수 있는 무영을 그리려고 해요.
Q 무영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만약 무영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나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아직 그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어요(웃음). 제 목숨을 걸만큼 사랑하는 사람은요. 근데 무영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본에는 없지만 제가 혼자 만들어본 무영의 전사가 있는데, 무영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잖아요. 어쩌면 자살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극중 ‘그녀’가 창문에서 떨어질 뻔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무영이 제일 크게 화를 내거든요. “지금 뭐하는 겁니까? 자살 시도하는 겁니까!” 하면서 소리를 질러요. 어쩌면 과거 엄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게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경호원이 된 이유도 엄마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무영이라는 인물이 정말 판타지적인 인물이라서 이런 것들을 제가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표현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전사를 많이 채워 넣으려고 노력했어요. 극중 무영과 ‘그녀’가 함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공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도 연기하기가 더 편해졌죠.
Q 오종혁, 지창욱, 이홍기 배우와 함께 무영 역을 맡게 됐어요. 네 배우가 각기 표현해내는 캐릭터의 느낌이 어떻게 다를까요.
일단 (지)창욱, (오)종혁 형은 <그날들>에 많이 출연했었기 때문에 능숙하고 여유로워요. 창욱 형은 원래 성격도 그렇고, 누가 봐도 무영에 가까운 사람 같아요. 남성스러운 모습도 있지만 장난기도 많거든요. 종혁이 형은 원래 장난기도 많고 귀여운 모습도 있어서 무영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홍기 형도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거든요. 세 분 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저의 무영이 어떤지는 제가 직접 이야기하기 그렇지만(웃음) 네 명 다 각자 색깔이 달라서 공연 보실 때도 골라보시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직장인들도 힘들 때마다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잖아요. 배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힘들 때마다 그런 고민을 하기도 하죠. 근데 저는 ‘이 일이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일찍부터 이 쪽으로 길을 정했고, 제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은 연기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또래 친구들 중에 직장인도 많고 아직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은데, 저를 좀 부러워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에 미쳐서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고.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똑같은 일만 하는데, 저희는 한 작품이 끝나면 또 다른 작품을 하면서 다른 걸 배우고 새로운 일을 하니까 지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근데 정말 그렇긴 하거든요. ‘아, 좀 힘들다’ 싶을 때 또 다른 사람들과 만나 친해지고, 새로운 자극을 받고, 새로운 캐릭터를 연구하다 보면 지루해질 틈이 없어요. 그런 재미 때문에 배우라는 직업이 매력적이지 않나 싶어요.
Q 배우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공연의 경우엔 연습기간이 길고 정말 힘들어요. 배우들이 다 예민해지는 때이기도 하고. 그런 시기를 겪고 나서 드디어 공연을 올리고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을 때가 역시 가장 뿌듯하죠. 한달 반, 길게는 두 달 정도 연습을 하고 나서 좋은 피드백이 오면 성취감이나 뿌듯함이 정말 커요. 좋은 공연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고. 그 순간을 위해서 공연을 하는 것 같아요.
Q <헤드윅> 캐스팅 당시 큰 화제가 됐어요. 그 작품은 배우로서 어떤 경험이었나요.
애증 관계라고 할까?(웃음) 가장 힘들게 연습을 했고, 제가 바랐던 역할 중에서도 가장 큰 역할, 큰 무대였고, 또 그때는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였고요. 엄청난 노력을 했고, 그만큼 많은 스트레스도 받았어요. 힘들었던 만큼 얻은 것이 많아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죠. 또 그 공연을 하고 나서 좋은 일도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다른 데 가서 얘기할 때도 ‘헤드윅이 내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 같은 작품’이라고 많이 얘기하고 다녀요.
Q <헤드윅> 이후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다 지금 2년 만에 뮤지컬(<베어 더 뮤지컬>)을 하고 있잖아요. 뮤지컬 무대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아무래도 고향 같은 곳이죠. 제 꿈도 원래 뮤지컬 배우였고, 제 이름을 알린 곳도 뮤지컬 무대였고요. 방송 쪽으로 나가게 된 것도 뮤지컬 때문에 나가게 된 거니까. 제가 뭘 하든 다시 돌아올 곳이고, 다른 분들의 공연을 볼 때마다 나도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올해 <히스토리 보이즈>를 할 때부터 정말 행복했어요. 일단 배우들이랑 같이 연습하는 작업이 너무 행복하거든요. 관객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도 좋고. 지금은 <그날들> 연습까지 바쁘게 연달아 하고 있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행복하게 하고 있어요.
Q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일단 제가 항상 늘 찾는 건 ‘어렵겠다, 이거 하면 고생하겠다’ 싶은 작품, 도전정신이 생기는 작품들이에요. <헤드윅>같은 작품이나 성소수자 역할,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경호원 역할(<그날들>)처럼 색다르고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을 많이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까지 제가 했던 역할을 보면 평범한 역할이 없었던 것 같아요.
Q 올해도 벌써 8월이 됐어요. 일 말고 올해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나요?
전 쉴 때 집에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남들은 레저나 스포츠 같은 활동적인 것들도 많이 하는데, 전 축구는 좋아하지만 그런 건 안 해봤어요. 그래서 그런 걸 해보고 싶고, 악기도 배우고 싶어요. 올해 말부터 취미 하나는 만들고 싶어요. 요리도 배우고 싶고. 집에서 밥을 해먹는 걸 좋아해서 간단한 볶음밥이나 찌개 같은 건 꼭 해서 먹거든요. 나중에 한번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요.
Q 서른 살쯤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이랑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아요.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남성스럽고 깊이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빨리 서른 살을 지나고 싶어요. 지금은 애매한 나이라서…제가 외형적으로 좀 앳되어 보이고 곱상해 보이는 선이 있는데, 빨리 서른 살이 지나서 더 남성스러운 모습을 갖고 싶거든요. 그런 역할도 많이 해보고 싶고. 좀 더 ‘남자 냄새’가 풍기는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웃음). 그래서 <그날들>의 무영이 저한테는 또 다른 도전이에요. 한번도 이런 경호원 역할, 각 잡힌 남자 역할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Q 손승원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세요.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늘 제일 먼저 하는 고민이 어떻게 같이 하는 배우들과 다른 나만의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에요. 그래서 이번에도 저만의 무영을 그리려고 많이 노력 중이고, 스스로도 과연 제가 무영을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처음으로 하는 남자답고 ‘각 잡힌’ 역할이기 때문에. 그 동안 보여드린 손승원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역할로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많이 보러 와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날들>이란 작품이 워낙 좋잖아요. 주크박스 뮤지컬 중에선 최고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도 좋고, 억지스럽지 않고, 음악도 너무 좋고요. 남녀노소 다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많이 보러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웃음).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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