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 연습 보고 기자가 3번 놀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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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중인 작품의 연습실을 방문하는 날은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정성스레 캐릭터와 장면을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지난 22일 방문한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 연습실도 제작진과 배우들의 뜨거운 열정과 뚝심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연습을 보고 난 후 3번 놀랐다. 이미 부산에서 공연을 먼저 올렸다는 것과 완성도 있는 창작 뮤지컬, 그리고 묵직한 감동까지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 다니엘 역 김다현(위) / 배질 역 이경수(아래)
 

1970년대 광부들의 이야기
"지금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1976 할란카운티’는 대체 어떤 작품일까? 1970년대 미국 노동 운동의 이정표가 되었던 미국 할란카운티 탄광촌의 실화를 참고해 유병은 연출이 대본을 썼다. 이날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연습은 할란카운티 광부들의 투쟁과 흑인 노예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펼쳐졌다.
 
줄거리는 이렇다. 노예 제도가 공식적으로 페지됐지만 여전히 노예가 남아 있던 1976년 미국 켄터키주. 자신을 위해 평생 부당한 대우를 받는 흑인 노예 라일리가 노예 시장으로 팔려 갈 위기에 처하자 백인 다니엘은 라일리와 함께 뉴욕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둘은 뉴욕으로 이동하던 중 억울한 죽음을 당한 할란 카운티 노조위원장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할란카운티의 광부들을 찾아간다. 할란카운티 광부들은 회사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회사와 대립하는 중이다.
 
이 작품에 특별한 주인공은 없지만, 보는 이에 따라 내가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지 등장인물에 대입할 수 있게 각각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연습을 보는 내내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질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저마다 갈등의 순간을 맞는다. 다니엘은 자신 때문에 평생 고생한 노예 라일리를 위해서 앞장서지만 할란카운티 문제에 있어서는 주저한다. 할란 카운티 마을 사람들은 회사의 부당함에 함께 뜻을 모으지만, 자신들을 도우러 온 라일리에게 흑인이라는 이유로 편견을 갖는다.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배질은 한편으로는 같은 광부인 노조 광부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이처럼 각자 갈등의 순간에 놓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이득보다는 타인과 우리를 생각하며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 패터슨 역 강성진, 배질 역 이경수, 토니 보일 역 원종환(위) / 다니엘 역 조상웅(아래)
 
노래 한 곡 덕분에 탄생한 창작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에는 감동이 있다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에는 대극장 뮤지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들의 로맨스, 브로맨스, 화려한 무대 장치는 없다. 대신 전체 배우들이 함께 하는 합창곡, 작은 배역까지 자신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솔로곡, 마음을 두드리는 감동이 있다.
 
이 작품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유병은 연출은 “2017년 초 광화문 촛불 시위에 나갔는데 그곳에서 민중가요 'Which side are you on'이라는 노래를 듣게 됐다. 이 노래는 1939년 할란카운티의 노조위원장이었던 광부의 아내가 작곡한 노래로 미국의 밥 딜런과 한국의 김광석, 김민기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 곡이다.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아서 자료를 찾아 보다가 할란 카운티 광부들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할란 카운티와 광부들의 이야기는 지명도 사건도 생소하다. 연출로서 공연 타이틀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까? 이에 대해 유 연출은 “1970년대 광부들의 이야기가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뮤지컬을 하는 사람으로서 탄핵 정국과 촛불 시위를 보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할란카운티의 이야기를 가지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뮤지컬을 통해서 '정의로움'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게 우리 이야기를 직접 하는 것보다 더 거부감이 없을 것 같고, 관객들이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976년은 할란카운티 광부들이 파업에서 승리한 해이다. 상업극으로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되겠지만 컨텐츠 자체로 승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목도 이렇게 밀어 붙었다”라고 밝혔다.
 
▲ 다니엘 역 서승원(위) / 이경수, 김다현(아래)

유병은 연출은 공연하면서 만났던 강진명 작곡가와 2년여 동안 연습실을 빌려 동고동락하며 '1976 할란카운티'를 만들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에 공감한 실력 있는 배우들이 서울에서 진행한 비공식 리딩 공연과 부산 쇼케이스, 부산 공연에 함께 해줬고 서울 공연에도 함께할 수 있었다고.

부산 공연에 올랐던 조상웅, 서승원, 이하경, 강성진을 비롯해 이번 서울 공연에는 김다현, 이경수, 이지숙, 윤석원, 원종환, 왕시명 등 새로운 배우들이 합류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유 연출은 “혼돈의 시대에는 멋진 영웅들이 많다. 그 영웅들의 이야기는 평소에 많이 접하셨을 거다. 우리 작품에는 그런 특별한 주인공은 없다. 대신 모두가 주인공이다. 저희 노래 중에 '작은 힘들이 모여 위대한 함성을 만든다'는 가사가 있다. 촛불이 모여서 빛을 만든 것처럼 승리의 원동력은 영웅이 아니라 극 중 인물들처럼 각자 위치에서 맡은 바 역할을 해나가는 평범한 개개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덧붙여 “정말로 관객들이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가서 한 번쯤은 나는 어디 편에 서 있나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다음날 되면 까먹을 수 있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그런 생각을 한다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굉장히 희망적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 는 오는 4월 2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해 5월 5일까지 공연된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주식회사 이터널저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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