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후 인터뷰 “꿈꾸듯이 연기하고 꿈꾸듯이 생각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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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에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까지도 있는 요즘. 그럼에도 유독 더 눈에 띄는 배우들이 있다. 뮤지컬 배우 장지후도 그런 배우 중 하나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연기력과 풍부한 성량, 큰 키와 다부진 체격까지 갖추며 2018년 ‘마마 돈 크라이’, ‘노트르담 드 파리’, ‘천사에 관하여’, ‘더 데빌’, ‘호프’ 그리고 지금 ‘킹아더’와 다시 공연되는 '호프'까지 무대에 오르고 있다.  대·중·소극장의 라이선스, 창작 등 다양한 작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알린 배우 장지후의 이야기가 궁금해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랜슬롯의 두꺼운 갑옷과 K의 원고 더미를 훌훌 벗어 던진 장지후는 ‘반전’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 아침에 반짝 뜬 스타가 아니라 꿈을 위해 기준을 세우고 노력하는 배우였다. 앞으로의 활약이 더 기대되는 장지후의 이야기를 전한다.
 
 
Q 2017년 뮤지컬 ‘벤허’ 이후 2018년 종횡무진으로 활동했다. 플레이디비에서 너무 늦게 찾아온 게 아닌가 싶다. 데뷔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관심 가져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이렇게 작품을 연달아 한 게 오래 안 됐다. 운이 좋았다. ‘벤허’에서 앙상블로 참여하면서 열심히 춤을 췄다. (웃음)

데뷔는 2010년 군 뮤지컬 ‘생명의 항해’로 했다. 지금 공연되고 있는 ‘신흥무관학교’처럼 군에서 제작한 작품이었다. 같은 부대 행정 계원이 오디션 소식을 알려줘서 어렵게 휴가 받아서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다. 오디션에 합격한 군인 배우들로 뮤지컬 중대를 만들었다. 거기에 중대장님도 있고, 부대장님도 있었다. 뮤지컬 중대에 소속되어 열 달 정도 전국을 돌았다. 일병이었을 때 작품에 참여했는데 본 자대로 복귀했을 때는 병장이었다. 돌이켜보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Q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은 언제 했었나. 
학창 시절에는 운동을 했다. 발육상태가 너무 좋으니까 운동부에서 탐을 냈다. 얼떨결에 운동을 시작했지만,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여러 가지 사정상 중간에 그만뒀다. 방황도 심했고 세상이 온통 깜깜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취직해서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스무 살에 취업했다. 무대 제작소였다. 가수들 콘서트와 기업 야외 행사 임시 벽을 직접 세우고 망치질을 하며 무대 옆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걸 지켜봤다. 그때 공장 한편에 방 얻어서 다른 직원들과 같이 생활했었다. 어린 나이에 집에서 나와서 생활하고 일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는데 그때 엄마가 아들 취직했다고 엄청나게 좋아하셔서, 많이 참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너무 참을 수 없어서 야밤에 집으로 도망쳤다. 엄마가 너무 놀랐는데 그때 처음으로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무대 제작소에서 일하면서 ‘나도 내가 만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던 가수들처럼 주목받고 싶고, 나의 끼와 재능을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자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나를 가로막았던 건 ‘난 형편이 안 되잖아’였다. 그런데 숙소에서 뛰쳐나온 그때 처음으로 속에 품고만 있던 생각을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내가 만약 지금 엄마가 속상하지 않게 내 꿈을 저버리면 당장은 효도겠지만, 나중에 ‘이게 과연 효도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집을 부렸다. “엄마 힘든 거 아는데, 빚을 내서라도 나 배우 하게 공부시켜 달라”고 했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시작해서 재수해서 대학교 갔고 중간에 군대 가서 ‘생명의 항해’도 하고 대학교 졸업도 하고 지금은 ‘킹아더’와 ‘호프’라는 작품을 하고 있다.
 
Q ‘킹아더’ 이야기를 해보자. 프랑스 뮤지컬은 지난해 ‘노트르담 드 파리’ 이후 두 번째다.
각자 매력적인 작품인데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사가 좀 더 시적이고 상징적인 게 많았다면, ‘킹아더’는 시를 적나라하게 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처음 '킹아더'를 만나는 관객들은 공연에 대한 약간의 면역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얘네 왜 그러지 하다 두 번, 세 번 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특히 랜슬롯를 설명하는 대사나 랜슬롯이 하는 대사 중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가 많다. '킹아더'가 1막 70분 공연인데, 랜슬롯은 53분쯤 등장한다. 계단을 내려오면 귀네비어 옆에 있는 앙상블이 렌슬롯을 향해 "잘 생겼다"고 수군대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연습할 때 연출님에게 그 환호성을 한두  군데만 빼달라고 했다. 얼굴이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너무 민망했기 때문이다. 지금 공연하면서는 분장도 하고 멋있는 의상도 입으니까 좀 적응이 됐다. (웃음)

Q 랜슬롯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용맹스러운 기사인데, 왕비와 사랑에 빠지는 게 스스로 설득이 됐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어려웠다. 무대에 등장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랜슬롯이 늦게 나온다. 또 작품 자체가 전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서사에 대해 아쉬움이 들었다. 한 인물의 서사는 그 캐릭터가 어떤 경험을 겪으면서 어떤 성격이 형성됐고, 어떤 사건에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막 중간에 귀네비어가 호수를 지나서 아더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귀네비어가 랜슬롯을 그냥 지나치게 한 번만 무대에 랜슬롯을 등장시켜 달라고 연출님에게 제안도 했었다. 스스로도 좀 더 랜슬롯의 개연성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랜슬롯이 왕비인지도 모르고 귀네비어를 만나는 그 장면에 모든 것이 담겨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정해진 룰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니 힘든 점이 있었다. 대사나 설정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고, 랜슬롯이 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서도 안 되기에 귀네비어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몸의 방향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뮤지컬 '킹아더' 한 장면(위)
뮤지컬 '호프' 한 장면(아래)
 
 
Q ‘킹아더’ 넘버들이 중독성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랜슬롯의 ‘깨어나’ 반응이 폭발적이다. 수능 금지곡이란 댓글도 있다.
알람으로 설정해 놓으면 더 좋다. (웃음) 그 곡에서 이렇게 큰 덩치로 춤까지 춘다. 앙상블이 거의 다 하는 곡이다. 그 넘버 부를 때 제일 속 시원하다. 그때 진짜로 랜슬롯의 마음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웃음) 가사에 랜슬롯의 마음이 다 표현되어 있다. “사랑만 좇는 바보야. 다 널 욕하고 비웃을 거야. 이제는 네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계속 다그치지만 결국에는 성배를 포기하고 귀네비어를 구하러 간다. 그게 바로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웃음)

Q 모든 연기가 경험에서 나오는 건 아니지만, ‘킹아더’의 랜슬롯이나 ‘호프’의 의인화된 원고 K는 생소할 수 있는 캐릭터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연기할 때는 어떻게 접근하는 편인가.
랜슬롯이나 K나 그전 작품에서 했던 클로팽, 루카, 드라큘라 백작 역 모두 나와 멀지 않다. 캐릭터에 접근할 때는 내가 기본 소스이기 때문에 캐릭터와 나의 접점을 찾아 극대화한다. 나에게는 발랄한 면도 있고 여러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

지인들이 공연을 보러 오면 하는 이야기가 “너는 무대에서 그냥 너로 있다”라고 하는데 그게 내가 추구하는 연기관이다. 다른 인물이 되는 건 나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고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 잘 모르는 것은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변을 많이 관찰하고 상상한다. 혼자서 상상해본 것을 연습실에서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면 창피할 때도 있고, 깨달음을 얻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 용기를 내서 상상했던 것을 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Q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하는 것은.
자주 바뀌는데 요즘은 현악기에 꽂혔다. 첼로에 푹 빠져 있다. 악기를 다루는 것은 아니고 음반을 찾아 듣고 있다. 무반주 첼로 솔로곡들을. 아마도 지금 '호프'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호프’에 현악기가 주로 나온다. 첼로는 악기지만 음역대가 좀 더 사람 같은 소리를 낸다. 그래서 연주를 듣고 있으면 뭔가 상상하면서 들을 수 있다.

첼로 전에는 정적인 것을 좋아했다.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예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청소도 하고 커피 한 잔도 내리고 좋은 음악을 준비한다. 예쁜 것, 좋은 날씨, 좋은 말 하는 사람들, 좋은 행동. 이런 게 나에게 힐링이 된다. 또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Q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기회가 되면 뮤지컬 ‘레미제라블’ 하고 싶다. 원래도 좋아했던 작품인데,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갈라 콘서트 형식이었다. 오프닝부터 너무 웅장해서 감명받았다. 평소에 클래식한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레미제라블’은 배역들도 하나같이 너무 멋있다. 앙졸라, 자베르, 장발장까지 하고 싶은 역할도 많다. 열심히 꿈꾸고 있다.
 
Q 배우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순간.
(한참을 생각하고) 작년 이맘때 ‘마마 돈크라이’라는 작품을 했었다. 어느 날인가 공연 끝나고 퇴근하려고 극장 문을 열고 나왔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은 거다. 내가 나오자마자 카메라가 위로 올라가면서 '다다다' 셔터 소리가 엄청났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이 기다리는 사람이 난가? 속으로 생각하며, "날 알아요?" 도리어 되물어보기도 했다. 정말 행복한 마음과 사람들의 관심에 덜컥 겁도 나고 그렇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너무 황홀한 순간이었다.
 
Q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꿈속에 사는 배우가 되고 싶다. 현실이랑은 조금 괴리감이 느껴질지언정 배우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꾸듯이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는 무대를 보고 있으면 나도 같이 꿈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인간 장지후는 조금 서툴고 모자라고 어리석고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무대 위의 배우 장지후는 언제나 꿈을 꾸는 사람이면 좋겠다. 꿈꾸듯이 연기하고 꿈꾸듯이 생각하고 내가 꾸는 꿈을 객석에 앉아서 보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말이다.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유명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너무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다. 그냥 조금 모자란 듯이 배우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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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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