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 얼룩진 천재의 삶...‘무용의 신’ 니진스키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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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아이였을 때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울고 있었다.”
유년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처참한 고통 속에서 신음했던 남자, 60년의 인생 동안 단 10년만 무대 위에 섰던 발레리노, 그러나 그 10년간의 활약을 통해 발레의 역사를 바꾼 독보적인 예술가. 러시아 출신의 천재 발레리노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삶을 재조명한 뮤지컬 신작 ‘니진스키’가 관객들의 기대 속에 개막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니진스키는 실제 어떤 인물이었는지, 뮤지컬에서는 어떻게 재탄생할지 미리 소개한다.
 
불행 속에서 피어난 천부적 재능
니진스키는 1890년 러시아 키예프(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태어났다. 무용수였던 니진스키의 부모는 자녀들이 아기였을 때부터 춤을 가르쳤다고 한다. 니진스키는 부모로부터 빼어난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그의 인생에는 유년기부터 큰 고통이 예고되어 있었다. 그의 형은 추락사고로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살았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에게 빠져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니진스키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서커스 단원으로 일했고, 니진스키는 가난과 외로움 속에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니진스키(1907)

불행 속에서도 니진스키는 일찍부터 남다른 재능을 드러냈다. 10세에 황실 발레학교에 입학한 그는 곧 신동으로 인정받았다. 믿고 따랐던 스승이 자살하고 그의 재능을 질투한 동기들 때문에 큰 부상을 입는 등 악재는 끊이지 않았으나, 니진스키는 졸업하자마자 황실 마린스키 극장의 수석 무용수로 발탁됐고, 한 귀족으로부터 재정적 후원도 받았다. 니진스키의 재능을 아꼈던 그 귀족은 얼마 후 그를 당대 최고의 공연기획자이자 미술평론가, 후원자였던 디아길레프에게 소개한다. 이 만남은 니진스키의 삶에 빛과 어둠을 모두 가져온 변곡점이 되었다.
 
▲ ‘세헤라자데’ 무대 위의 니진스키(1912)

디아길레프와의 만남과 ‘무용의 신’의 탄생 
안무가 미하엘 포킨, 예술감독 레온 박스트,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등 걸출한 예술가들과 함께 혁신적인 공연을 기획했던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를 자신의 발레단 ‘발레 뤼스’의 수석 무용수로 기용했다. 162cm의 키에 짧고 굵은 다리를 가진 니진스키는 결코 유리한 신체조건을 가진 무용수가 아니었지만, 천재적 재능과 치열한 연습으로 당시 발레리노로서는 드물게 발끝으로 서는 앵포엥트(en pointe, 발끝으로 서는 기술)를 할 수 있었고, 공중으로 도약해 오래 머무르는 발롱(Ballon) 등의 동작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세헤라자데’, ‘사육제’, ‘지젤’ 등 디아길레프가 이끌고 니진스키가 출연한 발레 뤼스의 공연은 유럽 전역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당시 파리 사람들은 니진스키를 ‘무용의 신’이라 불렀다.
 
▲직접 안무를 만든 ‘목신의 오후’ 무대 위의 니진스키 / 레온 박스트가 디자인한 ‘목신의 오후’ 포스터 

니진스키는 안무가로서도 천재성을 발휘했다. 그는 말라르메의 시를 바탕으로 드뷔시가 작곡한 ‘목신의 오후’ 등에서 안무를 만들었는데, 전통적인 발레와는 거리가 먼 역동적이고 파격적인 동작으로 발레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트라빈스키가 곡을 쓴 ‘봄의 제전’ 공연에서는 기존의 우아한 발레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들이 충격을 받아 소동을 일으킬 정도였다.

디아길레프와의 결별, 그리고 추락
“나는 그를 증오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면 어머니와 내가 굶어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나는 디아길레프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와 함께 살아야했다”

디아길레프는 분명 니진스키의 재능을 빛나게 해주었지만,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동성애자였던 디아길레프는 자신보다 18살 어린 니진스키를 연인으로 두고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괴로워했던 니진스키는 1913년 디아길레프가 따라가지 않았던 남미 공연 중 자신의 팬이었던 헝가리 귀족 여성 로몰라에게 청혼해 결혼을 한다.
 
▲디아길레프 / 결혼 후 아버지가 된 니진스키(1916)

니진스키의 결혼 소식을 듣고 분노한 디아길레프는 즉시 그를 발레단에서 해고했다. 그리고 니진스키가 다른 무대에도 설 수 없도록 철저히 막았다. 무대에서만 유일하게 자신을 빛낼 수 있었던 니진스키의 삶은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적국 러시아인이라는 이유로 헝가리의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니진스키는 1917년 한 자선공연에 출연한 뒤로 다시는 발레리노로서 대중 앞에 나서지 못했다. 유년기부터 우울증을 겪었던 그는 점차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했고, 1919년에는 약 6주간 폭발적으로 일기를 써 내려갔다.(그의 광증과 민감한 감수성이 생생히 담긴 이 일기는 그의 유일한 자전적 기록으로 세상에 남게 됐다.) 증세가 악화되자 더 이상 글조차 쓸 수 없게 된 니진스키는 완전히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후 30년간 정신병에 시달리다 1950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뮤지컬 ‘니진스키’에서 니진스키를 맡은 김찬호, 정동화, 정원영

뮤지컬 ‘니진스키’는 어떤 작품?
이달 28일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니진스키’는 지난해 4월 한예종 졸업공연을 통해 개발된 작품으로, 쇼플레이가 제작에 나서 1년간 수정 및 보완작업을 거쳐 정식 공연으로 선보인다. 니진스키가 뮤지컬 무대 위에서 어떻게 재탄생할 것인지, 성찬경 작곡가와 함께 이번 작품을 준비한 김정민 작가에게 서면 인터뷰를 통해 물었다.
 
‘니진스키’ 김정민 작가 인터뷰
Q 니진스키의 삶을 알아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니진스키는 60년 인생 중 30대 이후, 즉 30년 정도를 춤을 추지 않은 채 살았습니다. 보통 세기의 천재들, 특히 니진스키처럼 정신 질환을 가졌던 천재들은 요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무용수라는 직업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춤을 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30년이나 더 살게 했던 힘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 점이 니진스키의 삶이 다른 예술가들과 구분되는 지점이라 생각했습니다.

Q 이번 작품에서 니진스키라는 인물의 어떤 부분에 특히 주목하고자 했는지, 또 그의 이야기를 어떻게 뮤지컬로 풀어낼 것인지 궁금합니다.
니진스키의 예술관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렇고 작곡가도 그렇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니진스키를 보며 많은 부분 맞닿아있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춤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그려내고 싶은 세계 등... 이런 것들이 당연히 시대에 따라 그리고 그의 상황에 따라 달라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 작품 엔딩에 쓰인 <어디에나>라는 곡의 가사처럼, 결국 니진스키는 수많은 질곡의 과정 끝에 마치 해탈과도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저는 그의 젊었을 적 모습과 많이 닮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마지막에 깨달았던 ‘춤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싶다는 마음으로 니진스키를 그려냈습니다. 

니진스키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풀어낼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실존 인물’을 다루는 데서 오는 부담감, 두 번째는 ‘발레’라는 장르를 뮤지컬에서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의 경우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물들, 그와 치열하게 맞닿고 부딪히고 사랑했던 인물들을 꼭 함께 이야기해야겠다는 결론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이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로몰라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완성되었습니다. 두 번째 문제의 경우 기술적으로 소극장에서 노래, 연기, 춤 모두를 보여주기에 무리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충분한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통해 연출님 및 여타 스텝 분들과 함께 다양한 방면으로 ‘춤’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뮤지컬 '니진스키'에서 디아길레프 역을 맡은 김종구, 안재영, 조성윤
 

Q 뮤지컬에서 니진스키와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세 인물의 관계는 어떻게 그려지나요. 
세 사람은 모두 자기의 영역이 확실한, 다른 종류의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자유로운 발레를 갈구하는 발레리노이자 안무가, 가장 뛰어난 심미안을 가진 제작자, 가장 완벽한 음악을 추구하는 작곡가. 사실은 니진스키나 디아길레프보다도,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를 다루는 데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 셋, 그리고 '니진스키'의 여타 인물들이 발레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사실 저를 비롯한 수많은 창작자, 스텝, 배우들이 한 편의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공연을 만들어가며 음악 한 마디, 소품 하나, 대사 한 단어를 가지고도 서로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는 과정들을 거칩니다. 공연이라는 건 협업의 꽃과 같은 예술 장르이기에, 이 세 사람 사이에 수많은 이해관계와 인간적인 이해가 엮여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깊은 유대, 미묘한 엇나감, 짙은 갈등을 세 인물을 통해 풀어낼 예정입니다.
 


뮤지컬 ‘니진스키’는 이달 28일부터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참고 및 인용: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이덕희 옮김, 푸른숲, 2011)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더웨이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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