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에 빠진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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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이류대학’을 나왔지만, 회사의 이미지 제고정책으로 운 좋게 대기업에 입사한 남자가 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미생’이다. 동료들은 그를 무시하고, 친구들은 “좋은 데 들어갔으니 돈 좀 빌려달라”며 괴롭힌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압박 속에서도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던 그에게 또 다시 불운이 닥친다. 어느 날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스노우볼을 들고 그녀 집 앞에서 기다리다 강도를 만나고, 몸싸움 끝에 칼에 찔린 것이다. 당황한 강도는 그와 여자친구를 맨홀 뚜껑 아래로 던져버리고, 남자는 어둠 속에서 ‘늑대’와 맞닥뜨린다.

<퍼즐><영웅을 기다리며><우먼인블랙> 등을 공연했던 파파프로덕션이 새로운 창작뮤지컬 <더맨인더홀>을 내달 선보인다. 말 그대로 '홀'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다. 파파프로덕션 대표이자 <영웅을 기다리며><최치원>등을 직접 쓰고 연출했던 이현규가 3년 전 구상해 대본을 썼고, <빨래><잃어버린 얼굴 1895>의 민찬홍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었다.
 
지난 17일 방문한 <더맨인더홀>의 연습실에서는 먼저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기자를 맞이했다. 이 공연에는 네 명의 배우와 피아니스트가 등장한다. 주인공 하루(임강성·김영철)와 그가 맨홀 속에서 만난 늑대(김찬호·고훈정), 강도를 쫓는 형사(김형묵·안홍진)와 하루의 여자친구 연아(유연·이은율), 그리고 피아니스트 오성민·곽혜근이다. 피아니스트는 극 내내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이현규 연출은 3년 전 처음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전했다. 평소 사회성과 야생성이라는 상반된 특성에 관심이 많았고, 길을 걷다 우연히 보게 된 맨홀에서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그 결과 어떻게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써 자신을 억누르는 하루와 아직 야생성을 잃지 않은 늑대라는 두 인물이 탄생했다.
 
하루와 늑대의 이야기는 사회에 완전히 순응하는 삶과 야생의 삶 중 과연 어떤 것이 옳은가, 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질 예정이다. 늑대는 흔히 거칠고 공격적인 동물로 여겨지지만, 극 중 늑대는 그런 통념을 깨뜨리는 인물이다. 이현규 연출은 “늑대가 평생 한 마리만 사랑한다든가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다. 그런 의외의 모습을 넣기 위해 늑대의 가사에 순수하고 감성적인 시어를 담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17일 엿본 연습실에서는 김찬호·고훈정이 연기하는 늑대의 노래에 은유적인 가사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하루는 늑대를 경계하며 달아나려 하지만, 부상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늑대는 그런 하루에게 달의 여신에 대한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다가간다. 각박한 일상에 지친 하루가 맨홀 아래 어둡고 낯선 공간에서 늑대의 아름다운 소리에 오히려 위로받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독특한 설정이다.
 

음악은 때로는 부드럽고 구슬프게, 때로는 빠르게 펼쳐졌다. 이 역시 맨홀 위/아래 공간의 서로 다른 정서를 담고 있다. <쓰릴미><리타>에 이어 이번 공연에 출연하는 오성민 피아니스트는 “음악이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늑대나 달, 혹은 싸우는 장면 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된 선 안에서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들을수록 깊이가 있어서 연주를 할 때도 한번 더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피아노를 치게 된다.”고.
 
무대는 맨홀 아래 판타지적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조명을 최소화하고 깊이감이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무대 한 켠에서 비쳐 들어오는 달빛과 그 밑에서 달빛을 반사하는 호수 등이 무대를 채울 예정. 
 

이날 연습실에서는 상징적인 가사들과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본공연에 대한 궁금증을 키웠다. 이에 이현규 연출은 ‘한 남자가 겪은 안타까운 비극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이야기’라는 말로 작품을 압축해서 소개했다. 초자아와 자아, 본능에 대한 프로이트의 심리 이론도 작품에 녹아 들어 있다고. 공연은 9월 9일부부터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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