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만나는 영화감독 이창동의 시선,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리뷰
- 2019.05.16
- 박인아 기자
- 6570views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이창동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인 1992년 발표한 단편소설로, 당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을 무대화하는 작업에는 지난해 연극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으로 ‘2018 올해의 연극 베스트3’를 수상한 윤성호 작가와 현재 공연 중인 ‘언체인’의 신유청 연출이 참여했다.
주인공은 아내, 딸과 함께 이곳 아파트 단지에 갓 입주한 가장 준식이다. 유년기에 가난으로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급사 및 서무과 직원을 거쳐 교사가 된 그는 아홉 번 만에 당첨되어 분양받은 23평 아파트를 둘러보며 한껏 행복감에 부풀어 있다. 그런데 이때 수년간 만나지 못했던 그의 배다른 동생 민우가 준식의 집으로 찾아온다.
이렇게 형과는 전혀 다른 민우가 들어오면서 준식의 가정에는 서서히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감성을 지닌 청년 민우를 보면서 준식의 아내는 허위 위에 쌓아 올려진 자신의 삶과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그런 아내의 변화를 감지한 준식 역시 혼란에 빠진다.
이같은 무대 활용은 극의 후반부까지 적절한 쓰임새로 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선명히 전달한다. 처음에는 준식과 아내에게 너무도 자랑스러운 공간이었던 아파트는 차차 이들에게 갑갑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급기야는 무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수족관처럼 구현해낸 조명과 사운드는 관객들로 하여금 준식의 모습 위에 그가 가져왔던 비닐봉지 속 죽은 금붕어들의 모습을 겹쳐보게 만든다.
과하지 않게 적절히 활용된 내레이션도 인상적이다. 소설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장들을 배우들이 곳곳에서 육성으로 전달하는데, 이는 극중 분위기와 각 인물들의 내면을 문학적 수사로 생생히 전달한다. 특히 준식이 아내와 오랜만에 정사를 치르거나 준식이 동료 교사들과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 등에서는 나레이션과 배우들의 연기가 어울려 노출 없이도 인물들의 달뜬 욕망과 무력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수년 만에 찾아온 동생 민우 때문에 위기에 놓인 준식은 극의 결말부에 이르러 자신의 새 아파트에서가 아닌, 녹천역 부근 똥 구덩이 위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직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 극은 준식을 동생에 비해 마냥 어리석고 비겁한 소시민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영화 ‘밀양’에서 그랬듯, 이창동 감독은 시류에 휩쓸려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부박한 심리를 꿰뚫어보면서도 바로 그런 현실 위에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거장의 치밀한 시선을 감각적인 무대 언어로 구현해낸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6월 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apce111에서 펼쳐진다. 준식 역 조형래, 준식의 아내 역 김신록, 민우 역 김우진을 비롯해 송희정, 하준호, 레지나, 우범진, 이지혜가 출연한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