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삶을 굴러가게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연민” ‘베니스의 상인’ 박근형 연출
- 2019.05.21
- 박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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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등을 통해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자리매김한 박근형 연출이 이번에는 뮤지컬 무대를 이끈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오는 28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선보이는 ‘베니스의 상인’으로, 셰익스피어가 남긴 고전 명작을 박근형이 각색/연출하고 김성수 음악감독, 홍유선 안무가, 오필영 무대디자이너 등이 참여하는 작품이다. 박근형 연출은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건넬 것인지, 14일 만나 물었다.
Q 원래 대본의 상당 부분을 연습실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가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그렇게 하긴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찾아보니 ‘위대한 캣츠비’ 이후 약 11년 만에 하시는 뮤지컬이던데요.
여러 파트가 협업해야 하니까 제가 동료들과 하던 중구난방식으로는 할 수가 없죠(웃음). 대본을 작년 말에 정리해서 극단 단원들과 음악 선생님한테 보여줬어요. 실제 연습은 2달 조금 넘는데, 준비과정은 작년 겨울부터니까 꽤 된 셈이죠. 한진섭 단장(서울시뮤지컬단)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이것저것 조율해주시고 제가 기댈 곳을 마련해주세요.
Q 원작이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인데, 어떤 방향으로 각색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든, 우리 나라 작가의 작품이든, 그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잖아요. (작품과 관객 사이에) 이질적인 정서가 있으면 안 돼요. 2019년을 살고 있는 관객들이 봐도, 또 셰익스피어 시대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이 봐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리고 과연 ‘베니스의 상인’에서 말하는 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질문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썼어요.
저는 샤일록이라는 사람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잘못한 게 없다고 봐요. 자신이 살면서 당했던 차별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나름의 정당성은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일록이 악인처럼 취급받고 모든 재산을 빼앗기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샤일록이 좀 불쌍해요. 물론 도덕적으로 볼 때 샤일록은 하자가 있는 사람이죠. 몰인정하기도 하고.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가진 것이 다 사라져 버릴 때 그가 느끼는 상실감을 관객들이 이해해줬으면 해요. 그런 부분을 좀 더 부각하고 싶었어요.
Q 김성수 음악감독과의 작업도 기대됩니다.
어마어마한 분이시더라고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천재 아닌 사람이 없긴 하지만, 재주가 어마어마하게 뛰어나더라고요. 그 머릿속은 알 수가 없지만, 뭔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나 봐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곡이 한 방에 나와요. ‘이 장면은 어떻게 넘어가지’하고 고민할 때 감독님이 가져온 음악을 들으면 해결될 때가 많아요. 음악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대본은 셰익스피어가 이미 써 놨고, 저야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을지 생각해서 그걸 좀 쉽게 압축하는 거고, 감동은 음악감독님이 음악으로 주시니까 전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죠.
Q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작업은 어떠신가요?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배우가 최고예요. 배우가 가장 위대하죠. 어떤 배우는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표현을 생각해내요. 그러면 제가 할 일은 ‘아, 좋습니다’하는 거죠(웃음). (김)수용 씨 같은 경우는 대본을 보면서 자주 그래요. ‘이 대사와 이 대사의 순서를 바꾸면 더 논리적이고 감정 표현이 좋지 않을까요?’라고. 그런데 그렇게 해보면 정말 배우 말이 맞아요. 수용 씨가 그런 걸 많이 찾아내요. 대본이 미진한 부분들,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을 잘 찾아내서 좋은 아이디어를 건의해주면 저야 너무 좋죠. 제가 한심하니까 배우들이 많이 도와주는 거죠(웃음).
Q 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여러 부당한 일들을 겪으셨습니다. 당시 심경이 어떠셨나요.
동료들한테 미안했죠. 동료들이 나 때문에 공연이나 다른 활동에서 제약을 받았으니까. 저야 지원을 받으면 좋긴 하지만, 처음 (연극)할 때도 지원 없이 했으니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지, 사실 그런 징후는 그 전부터 있었어요. 제 선생님들, 선배님들 중에도 여러 힘든 탄압을 이겨 내신 분들이 많죠. 저야 뭐 미술이나 문학하는 분들에 비하면 뭐…‘어 나한테도? 그래 알았어’ 정도지, 뭐 그랬어요.
Q 1986년 극단76에 들어가셨으니까 연극을 하신 지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처음에 연극이 왜 좋으셨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이 좋아서 극단을 다녔어요. 엄밀히 말해 1982년에 극단 생활을 시작했죠. 연극이 왜 좋았냐면, 저는 연극이 집을 나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하고, 여인숙 같은 데서 선배들 밥 해주고 빨래하는 그런 건 줄 알았어요. 저게 내 직업이다, 떠돌아다니기 위해선 저 일을 해야겠다 했어요. 근데 막상 했더니 지방 공연이 별로 없더라고요(웃음). 연극이 뭔지도 몰랐죠.
역사에 대한 관심이 좀 있었어요. 제가 처음 쓴 게 ‘아스피린’ 이었는데, 그건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과 지금을 비교해보다가 쓴 거에요. 동학혁명 100주년이라는데,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니 크게 다르지 않구나, 미완의 혁명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구나,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썼죠. 역사가 어쨌든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쪽의 이야기를 계속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역사를 그대로 다루면 지루하니까, 어딘가 비틀거나 무언가를 더해서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계속 관심 갖고 썼죠.
또 하나는 제가 죄지은 것에 대한 얘기에요. 좀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내가 산다는 것은 결국 어머니와 가족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온 것이구나, 인간의 삶이라는 게 가족의 가족의 희생을 통해서 이뤄지는 거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도 나는 그걸 잊고 내가 잘나서 라고 생각했구나. 그런 자전적인 이야기, 가족에 대한 미안함,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하는 반성으로 쓴 것들이 있죠.
Q 그런 작품이 ‘청춘예찬’이나 ‘경숙이, 경숙아버지’겠네요. 실은 그 작품들을 보면서 연출님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상처받은 게 없어요. 저희 누나가 경숙이라서 ‘경숙이, 경숙아버지’거든요. 제가 고1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까지 아버지에 대해 궁금한 게 없었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누나와 어머니를 통해서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계속 듣고 퍼즐을 맞춰가면서 만들어낸 아버지가 ‘경숙이, 경숙아버지’에 많이 투영됐죠. 내가 상처를 받은 건 없고, 아버지께 많이 미안하죠. 아버지의 이야기를 새겨듣거나 마음의 손을 잡아드린 적이 없는 철부지 아들이었으니까.
Q 대사는 보통 어떻게 쓰시나요? 구수한 사투리나 생생한 일상 언어가 녹아 든 인상적인 대사들이 많았는데요.
귀가 좀 열려 있는 편이에요. 술집 같은 곳에 가서 술을 마셔도 옆의 이야기를 다 들어요. 그리고 괜히 미사여구를 많이 넣거나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해요. 만약 어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네가 좋아’라는 말 한 마디로 그 모든 사랑에 관한 수식어를 다 넘어설 수 있다고 봐요. 또 공연이라는 건 글이 아니라 ‘말’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문학성이 떨어지긴 하지만(웃음). 아무튼 어디 앉아서 뭘 써야지, 하고 작정하는 경우는 없어요. 그냥 생각나면 PC방 가서 좀 써놓고 저장해두고 그러죠.
시대가 변한 거죠.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러니까 ‘청춘예찬’이 명작이 아니라는 거에요. 명작은 시대가 변해도 계속해서 사랑받는 작품인데, ‘청춘예찬’은 잠깐 빛을 봤다가 그게 가짜라는 게 드러난 거죠(웃음). 연극은 계속 그렇게 변하는 거에요. 어쩔 수 없어요.
Q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요?
그럼요. 그렇게 가는 거고, 그렇게 가야죠. 우리는 그동안 너무 눌려 있고 왜곡돼 있던 게 심하잖아요. 가부장제도,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우리도 모르게 몸에 배여 있던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이 폭발하는 건데 너무 오랫동안 묵혀 있던 게 터지니까 그 속도가 빠른 거죠. 너무 빠르지 않나 싶지만 어쩔 수 없죠. 진작부터 이렇게 오픈되고 개선되어야 할 것들이 뒤늦게 폭발하는 거니까.
Q 지금이 연극의 위기라고 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수 이전에도 그랬고, 어떤 시대든 계속 말세라고 하잖아요. 우린 다 말세에서 태어나서 말세에 죽어요(웃음). 비슷하죠. 제가 처음 연극을 할 때는 위기가 아니긴 했어요. 관객이 엄청 많았고, (연극) 포스터만 붙이고 다녀도 대단하게 봤어요. 근데 또 이렇게 위기라고 할 때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오고 그래요. 지금은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노래 잘 하는 배우도 정말 많아요. 제가 지금까지 연극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갇혔던 관습적인 연극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도 엄청 많고.
근데 제가 느끼기에는 휴머니즘이랄까, 그런 게 사라지는 게 진짜 연극의 위기 같아요. 제가 처음 연극을 했을 때는 남자든 여자든 선배이든 후배이든 연습 끝나면 그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싶었어요. 그 사람 집에 가서 같이 자고, 다음날 같이 오고, 선배들 얘기도 듣고, 그게 너무 좋았어요.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고, 사람들이 하나하나 다 보석 같았어요. 내가 밥을 안 먹었더라도 누굴 만나면 식사는 했는지 궁금하고 챙기고 싶고. 저는 일하려고 연극을 한 게 아니에요. 내 인생을 그 속에 넣고 싶었어요. 근데 지금은…일하러 만나고, 일하러 헤어지는 것 같아요.
Q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애정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있죠. 전 적은데(웃음) 어쨌든 이 연극계 풍토 안에는 그런 게 있다고 느꼈거든요. 아까 ‘청춘예찬’ 이야기를 했지만, 폭력의 문제를 떠나서 제가 ‘청춘예찬’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비천하게 살지’라고 생각하는 그 비천한 사람이 가진 작은 연민이었어요. 자기도 죽을 만큼 힘들면서도 그래도 조금씩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요. 사람이 매일 근사하게 살 수는 없잖아요. 미워하고, 욕심도 생기고, 그런 반복 같아요. 근데 그렇게 문제도 있고 못된 짓을 하면서도 간혹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잖아요. 그게 있어야 그래도 삶이 굴러가는 거잖아요.
근데 연극의 위기라는 건 그런 게 없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관계, 일, 내가 왜 그래야 해, 그걸 서로 투사하는 순간 그냥 다 일이 되는 거죠. 그렇게 해도 되지만, 본인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냐는 거에요. 물론 유명해지겠죠. 돈도 생기겠죠. 근데 재미가 있느냐는 거에요. 그 재미가 어떤 재미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저도 그렇게는 잘 못하고 있지만.
Q 서로 손익을 먼저 따지고 계산하는 것이 지배적인 감성이 되어간다고 보시는 거지요?
그게 당연하기도 해요. 워낙 그 전에 못된 제작자도 많았고, 열정페이니 뭐니 하며 못된 짓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정당하게 일하고 정당한 페이를 지급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거고, 그런 시스템이 엄격히 갖춰져야 하는 것도 당연한 거에요. 근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 어떤 것 있잖아요. 그 어떤 (인간적인) 것이요.
Q 앞으로는 어떤 화두를 작품에 담아내실지 궁금합니다. ‘베니스의 상인’ 이후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요즘 머릿속으로 준비하는 게 있어요. 7월에 공연을 올릴 건데, 김훈 선생의 책을 읽다가 어느 문장에서 힌트를 얻어서 제목을 지었어요. ‘여름은 덥고 겨울은 길다’ 라는 작품인데, 지금 머릿속으로만 연습하고 있어요. 공연 올라가면 동료들이랑 같이 해야죠.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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